하늬바람과 숯내

할 일이 없는 나는 거의 매일 자전거를 탄다. 오후 두시 쯤 집에서 나와 골목 이곳 저곳으로 핸들을 돌려보지만, 결국 한강변의 자전거 도로를 달리게 된다. 오후 두시에는 거의 늘 서쪽으로 부터 바람이 불어온다. 겨울, 봄, 여름, 가을없이 서쪽에서 부터 바람이 불었다. 겨울에는 중랑천을 따라 북풍이 내려왔지만, 된바람이 잠잠하면 한강의 바닥을 따라 하늬바람이 불었다. 봄이 오고 바람이 바뀌어 동풍이 불어오거나 왜바람이 불 때도, 자전거를 타면 서쪽에서 바람이 불었다.

중국으로 부터 불어온 하늬바람은 미세먼지를 잔뜩 머금고 서해를 건너 강화도와 북한의 개풍군 사이를 뚫고 김포의 북단을 흐르는 조강(祖江)에 다다른다. 여기에서 바람의 일부는 임진강을 따라 북쪽으로 진군하고 일부는 남쪽으로, 한강을 따라 분다. 김포 전류리에서 남동쪽으로 방향을 튼 바람은 한강의 뚝과 수면을 골로 삼아 낮은 포복으로 분다. 서강(서호)을 지나고 여의도를 지나 용산강(용산호)에 다다르면, 한강은 거의 직각에 가깝게 북동쪽으로 방향을 튼다. 바람 또한 방향을 틀어 북동쪽으로 향한다. 북동쪽으로 방향은 튼 바람은 동호인 두모포(옥수동)에 이르러 중랑천을 따라 하계, 중계, 상계를 지나 의정부에 이르거나, 동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한강을 따라 잠실, 너븐나루를 지나고 미사를 지나 팔당에 이른다. 바람이 팔당댐을 넘고 북한강과 남한강까지 이르는지 나는 모르겠다.

잠실철교를 건너 강의 남쪽 자전거 도로를 따라 달리다 반포대교를 건너 북쪽 강변 자전거도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거나, 북쪽의 자전거도로를 타고 반포대교를 건너 남쪽 자전거 도로를 따라 귀가하거나 둘 중 하나다.

두시에 집을 나선 나는 서쪽 멀리있는 반포대교에 다다를 때까지, 바람을 마주하고 페달을 밟는다. 바람이 심한 날은 기어를 두단이나 올려도 자전거는 무겁다. 16인치 작은 바퀴를 가진 자전거에 올라탄 나는, 로드바이크들에게 앞 길을 내어주며 거의 세시가 되어서야 반포대교에 도착한다. 반포대교를 건너 동쪽으로 방향을 튼 내 등을 하늬바람이 밀어주기를 바라지만, 시간은 이미 오후 세시. 내륙풍이 바닷 쪽으로 불기 시작한 즈음이다. 그래도 바람을 마주 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으로 자전거는 한남대교 밑을 지나고, 동호대교를 지나 중랑천이 합수하는 두뭇개(두모포)에 이른다. 중랑천을 건널 즈음 다리 위에는 중랑천으로 몰려드는 서풍의 기세를 느낄 수 있다.

서울숲 옆의 강변 자전거도로에 올라서면 아직도 서풍이 남아있다. 그 서풍에 몸을 싣고 집에 다다르면 세시삼십분. 반포대교까지 서쪽으로 가는 길은 50~60분이 소요되는 반면, 동쪽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30~40분이니 집 앞 골목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그 바람의 힘이란 대단한 것이다.

사족이지만, 남쪽 자전거길을 따라가다 보면 잠실운동장을 지나 탄천(숯내)을 만날 수 있다. 탄천을 건너다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강이던 개천이던 하구 쪽은 바닥이 얕아지고 유역(流域)이 넓어진다. 두물이 합수하는 지점은 물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Y자로 기울게 마련이다. 그래서 물이 합치는 지점의 땅은 깊은 예각을 그린다. 내가 본 합수머리 중 가장 각이 뭉뚝한 곳은 정선의 아우라지였다. 골지천과 송천은 거의 직각으로 만난다. 반면 경북 춘양에서 흘러내린 운곡개울과 분천에서 흘러내린 낙동개울이 합수하는 이나리는 개울이 마주하며 합할 듯 합할 듯 흘러내려 큰 틀에서 보자면 각이 날카롭지만, 두 개울이 구비구비 굽이치는 탓에 부드러운 만곡을 그리며 합한다.

탄천이 한강에 합하는 지점은 유역을 형성하지 못하여 좁고, 그리고 한강에 합수하는 지점이 한강이 흐르는 서쪽으로 향하여 기울어지지 않았다. T자로 한강의 옆구리를 푹 쑤시고 들며 탄천은 합류한다. 자연스럽지 않다.

이런 부자연스러움은 1971년에 시작된 잠실개발과 한강정비사업 탓이다. 개발 이전의 잠실과 잠실운동장 구간의 한강의 본류는 송파강으로 삼전나루가 있던 롯데월드에서 신천역을 지나 종합운동장 남쪽의 탄천 쪽으로 흘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탄천의 합수지점에는 잠실도, 부리도 등의 모래섬과 모래톱 그리고 그 사이로 샛강(신천강)이나 작은 개울과 강들이 엉켜있었다. 그러나 한강정비사업 이후 송파강과 잠실도는 매립되어 뭍이 되고, 뚝섬 아래에 있던 부리도 등은 준설되어 샛강과 합하여 지금의 한강이 된다. 그러다보니 탄천의 지금의 합수지점은 토목공사 끝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개천이다. 그러다 보니 모습이 옹졸하고, 한강에 합하는 모양이 느닷없다.

지금 중랑천과 한강이 합하는 지점 또한 토목공사가 한창인데 어떤 모습이 될 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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