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시절 -14

우리는 58년이 어떠한 해였는지 모른다. 그것은 생애 최초의 기억보다 멀고, 누군가에게 들어도 알 수 없는 시점이었다. 그 해 겨울이 유난히 추웠거나 여름이 유난히 더웠는 지 몰라도, 한국전쟁이 끝났다는 자각과 안도 끝에 엄청난 수의 갓난 아이들이 태어난 해라고들 한다. 그러나 스쳐 지나온 그 세월에 잠재되어 있던 씨앗들이 커서 자라며 우리를 어떤 지점으로 인도해 왔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기도 했다.

최초의 기억을 지나 세상의 인식과 마주했을 때, 우리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배고픔과 나날이 허물어져 가는 삶의 모습이었다. 최소한의 생활을 꾸려가기 위한 일자리는 모자랐고, 살기 위하여 남의 돈이라도 끌어 써야 하는 그 나날들이, 늘 불안한 형태로 하루하루를 벼랑으로 몰았고 그것은 늘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친구의 집은 학교 옆, 굴뚝과 쓰레기통으로 좁다란 골목 길에 집들이 포개지는 나즈막한 언덕 위에 있었다. 친구의 집에서 보면 지붕과 옥상들이 어떤 질서도 없이 서로 어긋난 채 큰 길로 차곡차곡 무너져 내리고 그 위로 빨랫줄과 가난한 삶의 자국으로 너덜거리는 빨래가 바람에 휘날렸다. 또 그 사이로 전봇대와 전선줄이 처마와 함께 엉켜 있었다.

빨래와 전선줄이 흘러내리는 곳에 큰 길이 있고, 그 옆으로 등 하교를 하며 지나는 언덕 길이 있었다. 그 길 옆으로는 우리가 매미집(그러나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는 몰랐다)이라고 부르던 술집들이 샛길마다 자리잡고 있었다.

등교를 하는 아침이면 “술을 쳐 먹고 밤새도록 배를 탔으면, 술값은 고사하고 뱃삯은 내야 할 것이 아니냐?” “돈을 안 준다는 것이 아니지 않아? 어제 만리장성을 쌓았으면 서방님인데…, 서방에게 외상도 못해주느냐?” “뭐라고 이 ㅆㄲ #$*@^*&{}~” 라는 째진 대화와 함께 양푼들이 구르는 소리 등이 비루하게 새어 나오곤 했다. 그래서 학교로 가는 길은 늘 음울하고, 주정꾼들이 토해낸 분비물들과 함께 앞이 보이지 않는 변두리의 안개와 같은 것에 휩쌓이곤 했다. 그리고 그 길이 끝나는 곳에 시장과 온갖 오물들이 흘러내리는 개천이 있었고 바로 그 옆에 학교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침이면 언덕길을 따라 세상의 저 밑바닥으로 내려가곤 했던 것이다.

서울의 변두리에는 광장도 거리도 없고, 공원도 없이 단지 골목과 골목들이 쏟아져 나오는 길과 사거리, 그리고 서울이 끝나는 징표처럼 종점이 있었고, 연탄재가 섞인 흙에 물이 스며 늘 진흙탕과 같은 것으로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질척대고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오후의 햇빛을 맞으며 변두리의 저 밑바닥에서 언덕길을 따라 나는 다시 세상 위로 떠오르곤 했다. 매미집 골목에는 마른 먼지와 휴지에 섞여 햇빛이 뒹굴고 때론 <춘자네 집> 등의 촌스런 글씨가 쓰여진 종이를 덧붙인 유리로 된 미닫이문이 열려 있기도 했다. 천년동안 억눌려 있었던 것 같은 어둠 속에 화투패를 떼는 여자들을 보았다.

내가 그 안을 들여다 보면, 그녀들은 속살과 속옷이 보이는 것을 여밀 생각도 않고 뭐라고 소리치며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것은 히야까시였을 것이다. 때론 짙은 화장품과 함께 얼굴이 촛농처럼 흘러내리는 늙고 추한 여인이 멍하게 나를 쳐다보다가, 지루한 불독처럼 하품을 하기도 했다.

그러한 풍경은 역겨웠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 하루 밤을 지내면 인생의 모든 것과 여자의 모든 것을 알게 되고 어른이 되어 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늘 했다. 거기는 제 삼의 학교이자, 뼈와 살들이 신음처럼 소근대는 곳이니까.

그러나 감히 그 곳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고, 아쉬움을 간직한 채 두려움으로 그 곳을 지나곤 했다.

친구집의 옥상에서 수많은 빨래들을 헤아리며 다가오지 않은 세월에 대하여 우리는 이야기를 했다. 오후의 지리한 바람 속에 여자들의 속옷이 휘날리고 있었다. 빨간 빤쓰, 파란 빤쓰, 찢어진 빤쓰. 그 속옷들을 보면, 청마의 깃발이란 시가 생각났다. 그리고 부라자, 다 써버린 거시기의 풍선처럼 늘어진 스타킹(가난한 여인들은 그렇게 스타킹마저 찬물에 빨아 다시 신곤 했다)들을 보며 남자가 살지 않는 여인들의 고독한 방을 생각했다.

“우정이 뭐지?”
“절망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그렇게 절망논법을 썼었다.

“서로의 필요이지. 그 필요는 타인과의 관계보다 더 집요하며, 서로의 필요에 대하여 좀더 더 잘 안다는 차이는 있겠지.”
“니 말을 들으면, 니가 교만하고 방자하기가 그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재수없게 말하는 데는 도가 트였다니까. 그러나 솔직하다는 점은 인정할 만해.”
“우정이나 이런 것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그럴 듯하게 말할 수는 있겠지. 그러나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아무리 말을 잘한 들 그것이 우정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니까.”
“알았어. 니 똥 굵다 굵어.”

드디어 해가 서쪽으로 지기 시작했다.

서쪽 언덕의 판자집과 슬라브집, 그리고 옥상 위에 비니루로 지어진 가건물과 전선줄, 언덕 위에 있는 몇그루의 나무와 그 사이로 새둥지 등이 그림자로 까맣게 그을리기 시작했고 태양의 주황빛으로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태양이 지는 모습을 보면 더 이상 산다는 것이 무의미하고, 우리가 참 오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의 얼굴은 환희와 같은 표정으로 지는 햇빛에 붉게 얼굴이 물들었고, 그 빛은 조만간 폭발하여 어둠으로 깃들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친구에게 하고자 했던 말을 하지 못했다.

그것은…

“네 누나를 좋아한다.” 였다.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다리우스 09.05.18. 17:39
    헉, 네 누나를 좋아,,,(말 못이음표,,,)

    샤 론 09.05.18. 19:02
    여기 나온 친구가 13편에 나온 친구인가요?..13편에서 학교를 떠났다고 해서 약간 헷갈리고 있습니다….
    ┗ 旅인 09.05.18. 20:53
    아닙니다. 13편의 친구는 이름도 까먹었지만… 이 친구는 오랫동안 만났죠.
    ┗ 샤 론 09.05.19. 08:41
    아하 ! 또 다른 친구군요..그저 친구라 하시니 ..연상의 여인아 ~~ ..앗 이 노래가 아니던가요?

    산골아이 09.05.19. 23:48
    태양이 지는 모습을……….. 오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어…. 저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들곤 했어요. 쬐그만게 인생을 달관한 노인네처럼 자연을 바라보다가 괜히 눈물을 흘리기도 했구요.
    ┗ 旅인 09.05.20. 10:43
    그런데 지금은 얼만 살지도 않았는데…벌써! 이러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날은 날이 갈수록 막연하기만 합니다.
    ┗ 산골아이 09.05.20. 11:19
    저도 막막하긴 마찬가지랍니다.

    유리알 유희 09.05.22. 10:22
    58녕 개띠들이 스쳐 온 서울의 거리들이 드디어 고스란히 잡힙니다. 번화한 거리의 이면, 얼키고 설킨 골목길, 그리고 나뒹구는 연탄재의 시절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탁월한 묘사!
    ┗ 旅인 09.05.22. 14:18
    그 시절에 마누라없인 살아도 장화없이는 살지 못하겠더라 하는 이야기가 있었죠. 학교앞을 흐르던 그 개천을 생각하면, 먹던 밥이 올라올 정도로 지저분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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