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시절 -13

오팔년의 개들은 어떤 목표(특정 고등학교 입학)를 향하여 노력을 해 본 적도, 해 볼 필요도 없었다는 것이다. 단지 박지만(박통의 아들)이를 타다 보면 대학까지도 무난히 갈지도 모른다는 기대마저 있었다. 오륙년, 오칠년은 그래도 도전을 했고 실패라도 경험했지만, 오팔년에게는 도전도 없었고 실패도 없었다.

그래서 오팔년들은 어딘지 모르게 눈동자가 풀어져 있고 뭔가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뺑뺑이라는 도박판에서 골라 잡아 <꽝!>식으로 다녀야 할 학교를 골라잡았고, 만족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놈의 골라잡은 학교마저 스스로 <이류>라고 할 정도라면 알아볼 쪼, 삼류였던 것이다.

하긴 당시에 경기, 서울, 경복으로 간 뺑뺑이들은 선배들이 자기들을 인간 취급도 안하고, 선생들은 꼴통들이라고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며, 일류가 삼류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학교 교장 선생님께서는 꿈이 있었다. 어짜피 판은 새로 짜여졌고 아이들의 학력수준에는 차이가 없는 만큼 아이들을 조져대기만 하면 변두리의 삼류인지 이류인지 모를 학교를 일류에 올려놓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일제 군국주의 시절, 조선인 선생으로 황국에 충성을 다함으로써 본토로 돌아가는 일인들로 부터 “학교를 잠시 맡아달라”고 적산 학교를 불하받은 자로, 예비고사 합격율 전국 1위, 서울대 합격자수 최다를 꿈꾸며, 병영화된 학교를 더욱 병영화해 나가고 있었다.

우리의 머리를 스포츠 가리도 아닌 빡빡으로 통제하고, 연애와 담배는 퇴폐며, 삼선개헌을 지나 유신의 시절로 들어간 자유 대한에서 필요한 것은 공부에 대한 자유 외에는 없으며 거기에서 이탈하는 놈들에게는 가혹한 응징 만이 남는다고 했다.

나는 교무실을 드나들며, 얼마나 허무한 이유로 학생들이 따귀를 얻어맞게 되고, 졸업하기 위해서 학생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인격적 자질은 공자님 제자하고 호형호제하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았다. 아니 그보다도 더 해야했다. 담배를 피워도, 연애를 해도, 퇴학이고, 극장을 가면 정학, 심지어는 몽정을 해도 정학이라는 이 놈의 학교에서 무사히 졸업하기 위해서는 생각없이 그저 공부하는 길 밖에 없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공부라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아무튼 우리는 소속감이 결여되어 있었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세월 속에서 표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지내온 시절들은 때때로 전면적으로 부정되고 잊혀지거나 아뭇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거나 한다.

각종 행정공문의 대가리를 장식하던 <증산, 수출, 건설>은 잊혀진 구호가 되어버렸고, 광복 후 최대의 명문이라던 국민교육헌장은 너무 지겹도록 외웠기에 신물이 나 기억 속에서 퇴장되었다. 야간 통행금지는 전설처럼 변했고, 모 아니면 도라고 각 공화국이 수립되면 과거를 박박 지워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탄력적으로 대응해왔다. 모든 과거에 대한 부단한 부정은 결국 자신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부인이 되었다. 우리에게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활 속에서 그에 알맞은 변신 밖에 주어진 것이 없었다.

사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공부나 정신 세계를 풍요롭게 하는 것보다 이부가리로 통제되는 머리카락의 길이를 얼마만큼 까지 기를 수 있느냐, 구렛나루를 귀 밑 어디까지 내릴 수 있느냐, 아니면 바지자락의 폭을 얼마나 넓히면 선생한테 안 터지느냐 하는 문제가 절실했다.

사소함이야말로 자신의 자존심이었기에 중요했다. 버스표가 없어서 등교를 못했다는 놈이 폭이 넓은 교복바지를 새로 사 입고 와서 자랑하는 것을 보면, 절대적인 빈곤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폼(자존심)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었다.

그만큼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놈들처럼 머리카락 길이나 구렛나루, 바지자락의 폭 등에서도 절실함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나의 작은 키와 헐렁한 교복 등이 어디에서도 나의 자존심을 수호할 수 없도록 했다. 그래서 나는 그런 것에 대한 미련을 과감히 버렸고, 애착없는 나의 생활은 공허했다.

그러던 유월의 어느 날, 나의 짝인 보디가드가 학교를 그만 두겠다고 말했다.

“아니 왜?”

놈은 웃으면서 말했다.

“나 말이야… 걔를 사랑하나봐.”
“걔라면…, 그 개같은…?”

<년>이라는 말을 하려다, 말 실수를 했다 싶어 찔끔하며 말을 흐렸다.

“그래, 그년을… 내가 정말로 사랑하나봐.”
“그래서, 걔를 좋아하는 것하고 학교하고 무슨 상관인데?”
“걔는 고2 아니냐? 나는 고1이고. 그래서 검정고시 보려고 한다.”
“검정고시보면?”
“한 일년 죽자고 공부하는 거야. 그림도 그리고. 그러면 내후년에는 미대를 갈 수 있지 않겠냐?”
“그게 어디 쉽냐? 남들 삼년하는 것을 이년만에 한다는 것이…”
“그래도 한번 해 볼꺼야. 적어도 대학을 갈 땐, 걔하고 같은 학년 아니겠냐?”
“자신있어?”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뭘 못하겠냐?”
“사랑이 그렇게 중요하냐?”
“중요하지. 넌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그년의 머리결에서 나는 냄새와 콧등에 스치는 햇살, 그런 것이 어떤 지 너는 상상도 못할 거야.”
“그래도 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도 만나고 열심히 공부해서 아주 근사한 대학을 간다면, 한 학년 뒤쳐져도 괜찮을 것 같은 데…”
“넌 뭘 몰라. 그년이 대학을 들어갔는 데, 재수생도 아니고 고삼 교복에 빡빡 깎은 머리로 나타나면 걔가 날 만나줄 수 있겠냐?”
“집에서는 니가 자퇴하고, 검정고시 본다면 허락하겠냐?”
“우선 자퇴해 놓고 보는 거야. 할 수 없이 검정고시 학원엘 보내주겠지.”

놈이 제 정신이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내가 잘못이었다. 놈은 역시 왕또라이였다. 구제불능이었다.

나는 놈에게 그년과 오래 사귀고 싶다면 같이 자라고 했다. 그러다 아기라도 가지면 장가를 보내달라는 것이 학교를 그만 둔다고 하는 것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고 떳떳할 것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것은 보호해 주는 것이다. 나는 장가를 갈 때까지 걔를 보호해 줄거다.” 하고 놈은 결국 자퇴를 해 버렸다.

“넌 나의 친구다. 난 너를 잊지 못할거다. 자주 오마.”하고 떠나간 녀석은 그 해 가을, 사복을 하고 토요일 오후에 한번 나타난 후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짧은 학창시절을 함께 한 관계로 누구도 놈이 어떻게 되었는 지 몰랐다.

This Post Has 2 Comments

  1. 旅인

    라마 09.05.17. 19:27
    지금도 역시, 모두에게는 아니겠지만, 대다수에게는 “절대적인 빈곤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폼(자존심)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일 겁니다.
    ┗ 旅인 09.05.17. 22:05
    우리처럼 실속보다 폼을 중시하는 경우도 드물겠죠? 이 시대에 절약이라는 것은 환경등을 생각할 때 절대적인 미덕인데…

    샤 론 09.05.17. 21:19
    여자를 위한 결심…멋있습니다…어떤 상황이든 결과는 사랑을 위한 거니까요…
    ┗ 旅인 09.05.17. 22:06
    놈은 사랑을 이루었는지, 미술을 계속했는지???
    ┗ 샤 론 09.05.19. 08:43
    미술 계속 했는지 아직 모르시는 거예요?..어쩐지 그 분 후속 이야기가 궁금해지는데요..정말 멋진 결말이 났을지가…
    ┗ 旅인 09.05.19. 08:51
    헤어지고 난 후 어떻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같은 반 급우 중 누구도 놈의 근황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이 사라져 버렸지요.

    이슬 09.05.18. 01:01
    58년 개띠하면 항상 콧수염 김흥국님 모습이 먼저 생각이..ㅎㅎ 여인님 글을 쭉~ 읽으면서 친구 영화의 주인공들 모습이 문뜩 문뜩 떠오르곤 했어요. 올려주신 글 잘 읽었어요.^^
    ┗ 旅인 09.05.18. 08:59
    김흥국은 거의 비슷한 나이고… 조형기, 심형래 등이죠

    산골아이 09.05.19. 23:36
    소화도 안 되는 책을 읽으면서 우쭐해하던 청소년기… 하나의 우상을 마음속에 키우다가 부수던 낡은 시절… 다음 쪽으로 휘리릭~~~
    ┗ 旅인 09.05.20. 10:17
    소화가 안되는 이유는 번역에도 상당폭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성장소설을 쓴 헤르만 헤세의 책에서 조차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았으니…

    라비에벨 09.05.20. 08:37
    58 성아들은 정말 개떼처럼 왔다 갔다 했겠네요^^ 조금은 매력있는 그 친구분 근황이 참 궁금하네요…
    ┗ 旅인 09.05.20. 10:17
    친구는 자퇴를 하고 그 해 늦은 가을 한번 와 보고는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그 후 어찌 되었는지 전혀 모릅니다.

    유리알 유희 09.05.22. 10:16
    고딩의 입에서 나온 사랑의 변, 감동적입니다. 저는 그냥 가방 들고 결석없이 학교만 열심히 간 거 같아요. 여인님 글을 대하니 후회막심입니다. 책이라도 많이 볼 걸. ㅎㅎ
    ┗ 旅인 09.05.22. 13:46
    제대로 학교를 들어갔다면 고삼으로 나이도 꽤 든 편인데… 짜식이 순 순정파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친구겸 보디가드 하나 잃었습니다.

  2. 旅인

    이 친구의 이름은 ‘고세만’이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