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시절 -10

사실 혼돈과 무기력 속에서 이 글을 완성할 수 있을 지 의문을 가진 채 계속 쓰고 있다. 며칠 동안 이 글을 열어보고 또 닫고 하면서 괜스레 시작했다는 생각에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 인생이 과연 다시 돌아다 볼 가치가 있느냐 하는 의문과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니> 하는 잠언의 첫 구절이 교차되면서 나는 무위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내 인생이 가치가 없다면 타인의 생활에서 가치를 구할 것인가?

중세의 사제인 엑크하르트는 암울한 성당에서 강론을 하다가 “신은 바로 나이다.” 라고 함으로써 파문을 당했다.

나의 부재는 온 우주와 신의 부재를 뜻하며, 내가 여기 있음으로 해서 신과 우주가 존재한다.

즉 신이 나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내가 신을 존재케 했다는 사실을 엑크하르트는 알았고, 외쳤던 것이다. 결국 모든 존재의 의미와 가치는 나에게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보다도 중요한 것은, 불행하게도 하늘을 나는 것에 나는 실패를 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사실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터무니없고 황당하기는 해도, 나에겐 몹시 중요한 일이다. 하늘을 나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포기한다는 뜻과 동일하며, 세속에 물들어버린다는 뜻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난다는 것은 내가 <초인>으로 거듭난다는 하나의 반증이었다.

그러나 내가 난다는 것을 포기(실패)한 것은 난다는 것보다 더 큰 목적과 의미 속에 무차별적으로 복종되었고, 나는 이미 날아 다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욕망을 다른 것으로 환유(대치)해 버렸는 지도 모른다.

인생의 목표를 나는 것에 방향을 잡은 것이 애당초 잘못된 셈이다.

물리학적인 측면에서나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인간이 날 수 없다는 것을 부인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미친 것이다. 물리학적인 측면에서 반중력장(antigravity)을 형성(주)한다거나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양력을 발생시킬 수 있는 얼개(날개)를 만든다는 것도 아니었다.

날기 위해서는 분명 서양적 합리주의에 입각한 과학적 방법으로는 도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과학적 방법은 계량화와 분석에 입각한 사고방식을 기초로 하고 있는 만큼, 사고방식의 한 부분은 될 수 있으나, 가능한 사고의 전체가 될 수는 없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찾았고, 누군가가 난다면 동화나 전설이 현실화되면서 인간의 한계를 무한대까지 넓힐 수 있다는 원대한 비젼을 가졌던 것이다.

오랫동안 나(飛)는 이론과 방식이라는 테크니컬한 부문에만 치중해 왔었다. 나이가 들면서 인간이 날 수 없다는 것은, 물리적인 측면보다 정신의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정신의 문제가 극복되면, 더 이상 힘들게 날아다닌다는 외면적인 측면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 또 다른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될 때, 과연 행복해질 것인가 아니면 불행의 하염없는 연장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떠나서, 인생이라는 시간의 희소성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며 한정된 삶조차 살기가 이토록 처참한 데, 무한하고 무의미한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불로장생의 전제조건은 무한한 삶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정신적 진화가 전제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인간이 난다는 것 또한 물리적 한계를 초월하는 것인 만큼 물리적 감성영역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야만 하며, 이때 정신이 시공간을 초월한 장의 경험을 감내할 수 있느냐인 것이다.

날 수 있다면 엉성한 인간의 뇌는 초월적 경험을 감내하지 못하여 걸레조각처럼 너덜거릴 것이다. 그래서 신은 인간이 미쳐 날뛰지 않도록, 육신과 정신에 한계를 부여한 것이다.

정신적인 진화를 통하여 모든 초월적 경험을 감수하고 무한한 삶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라면, 무엇 때문에 불필요한 몸을 움직여 하늘을 날고 무한한 삶을 갈구할 것인가?

그때는 육탈(肉脫)을 하여 태허(太虛) 속에서 즐기지, 뭣 땜시 구차한 육신에 기댈 것인가?

이것이 인간이 지닌 비극적인 삶의 구조요, 한계인 것이다.

즉 하늘을 나는 것을 실패한 것이 아니라, 결국 날기를 포기한 것이다.

이 정도로 네다바이를 칠 수 있는 것은, 당시 상당한 수준까지 나는 것에 대해서 정교한 연구를 했고, 고민했다는 반증이 될 것이다.


주) 과학의 진보에 따라 2312년에 반중력 장치를 개발했고, 본격 상용화된 이후인 2374년 반중력 장치에 공급되던 전력 장치의 고장으로 반중력이 사라져 N.노보스란 사람이 최초로 추락사한 사건이 발생함. 

별첨) 나는 것과 비슷한 하나의 예를 들어본다면, 1995년경에 호주의 한 연구소에서 <염력증폭기>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 나는 염력증폭기의 효능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그 염력증폭기의 아이디어는 생각보다 몹시 간단한 것이었다.

보통 사람에게도 초능력자와 같은 염력이 있는 데, 보통 사람의 염력에는 파워(氣)가 부족한 만큼 발현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사람들의 염력을 적외선 등으로 발신하는 발송 장치를 이마에 두르고, 기계 등에는 수신장치를 달면 되는 것이다.

그 머리밴드를 두르고 집 안의 가전기계 등에 수신장치를 달면, ‘불 켜져라!”하고 생각하면 형광등이 반짝 켜지거나, ‘아 덥다, 선풍기 켜져라!”하면 선풍기가 도는 것이다.

연구소에서 리모콘 장난감 자동차 경주를 시범 삼아 보여 주었는 데, 한 사람은 리모콘으로, 연구소 직원은 염력증폭기로 경주를 했다. 그 경주에서 염력증폭기로 조종한 장난감 자동차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결승 골을 통과해 버렸다.

그 후 그 <염력증폭기>가 곧바로 상업화될 줄 알았다. 그러나 몇 년이 흘러도 상업화되지 않았다.

아마 염력증폭기라는 것이 황우석의 그것처럼 사기이거나, <염력 psychokinesis>이라는 것이 허구이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나의 생각은 좀 다르다.

인간의 정신이라는 것의 문제,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한다. 사념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며, 늘 엉뚱한 자극과 사념의 연속 상에서 기포처럼 뽀글거리는 것이 아닌가? 만약 염력증폭기를 달고 자동차 운전을 하는 데, 왠 놈이 날렵하게 내 차를 추월한다면 “저 SSGG 확 박아버려?”라고 생각할 것이고, 그만 그 차를 와장창 박아버린다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육체의 한계를 이야기하지만 진짜 문제는 바로 정신의 뒤틀림에 있는 것이다.

This Post Has 6 Comments

  1. 여인

    맨 위는 잠언이 아니라, 전도서이다.

    1. 여인

      나는 법에 대한 약간의 사용설명서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연구한 바로는 나는 것에는 약간 혹은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2. lamp; 은

    얼마전 마가진님 댁에서 앞으로 나왔으면하는 발명품으로 무중력장치라고 답하셨던 이유가 이 글속에 있는 거지요?

    풀어야 할 숙제가 있는데 숙제를 하지도 않았으니, 또는 해야할 숙제가 무엇인지도 모르니 실패도 포기도 없는 것이겠죠?

    1. 旅인

      반중력 장치가 발명되면 부동산투기가 줄어들게 될 것 같아서 말이지요.^^

      예! 대충 숙제를 만들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숙제를 풀고 밖으로 나가야 할터이지요?

  3. 旅인

    샤 론 09.05.15. 18:13
    헛되다라는 말씀은 전도서에 많이 나오는 말씀이지요…헛된 것을 생각하다보면 산다는 자체가 무의미 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그저 보통사람처럼 살면 잘 사는 거거니 …무엇인가가 되고 싶어도 결국 누군가 했거나 하고 있는 것이니 새로울 것도 없고…참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도대체 할 것이 하나도 없더이다…여인님 글을 보고 세상과 똑같이 살아가는 것에 의 문을 품었던 한 때를 생각합니다..ㅎㅎ
    ┗ 旅인 09.05.15. 20:08
    앗! 맞다. 전도서… 하지만 틀린대로 두겠습니다. (혹시 압니까 잠언에도 나올지^^) 그런데 보통사람들처럼 살아가기도 힘들어서 내가 이렇게 힘드는데 저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살아가는 걸까 하고 의문을 가질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 샤 론 09.05.16. 07:56
    그저 사는 거겠지요..그럭저럭..^^
    ┗ 旅인 09.05.16. 21:51
    신나고 즐거워 미치겠는 삶은 없겠죠?
    ┗ 샤 론 09.05.16. 22:13
    잠깐은 되더이다..한 몇시간 정도는…그러나 계속 신나지는 않는 것 같아요.경험상…신나고 싶으세요?..세상 짐 다 짊어지고는 결코 신날 수 없지요..여인님은 나라 걱정을 많이하시는 분이니 생각이 많아서 저 같은 사람보다 훨씬 힘드실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 旅인 09.05.16. 22:26
    전 나라 걱정 그런 것 안합니다. 제 밥그릇만 챙기는 그런 사람입니다.

    산골아이 09.05.16. 00:22
    정신의 뒤틀림에 끄덕끄덕….
    ┗ 旅인 09.05.16. 21:50
    아마 맞을 겁니다. 초월을 정신이 감당한다면 육신은 초월을 맞이할 겁니다.

    다리우스 09.05.16. 07:33
    중세의 파문당한 사제 엨크하르트에게서 감명 받습니다.^^
    ┗ 旅인 09.05.16. 21:50
    에크하르트! 멋있는 이름이지요?

    旅인 09.05.16. 21:51
    참고로 염력증폭기는 실제 일입니다.
    ┗ 엘프 09.06.03. 17:32
    즉슨,(주)는 실제 일이 아닌 네다바이겠네요..^^ 갑자기 단기를 쓰시거나 하지는 않으셨을테니까요. ㅋㅋ
    ┗ 旅인 09.06.03. 23:01
    주)는 아무래도 실제는 아니겠죠? 하지만 미국의 미래 프로젝트 리스트를 보면 반중력장치는 2300년대에 개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바탕으로 그런 일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라비에벨 09.05.18. 17:15
    염력 증폭기에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많이 생각 좀 해봐야겠어요…염력증폭기 간단히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旅인 09.05.18. 20:56
    예! 아이디어를 상업화까지 쭉 밀고 가시기를…

    유리알 유희 09.05.20. 13:40
    다행입니다. 마침 에크하르트를 떠올릴 수 잇어서요. 그때부터 사유하는 생을 사셨군요. 저는 늘 성적걱정, 만원버스에서 앉아 갈 수 있는 행운이나 기대하거나 다이아몬드 명찰의 남학생이 혹 가방이나 받아 주지 않으려나. 하는 대단한 염려를 하느라 참으로 엿같은 고딩시절을 보내 버리고 말았답니다. ㅜㅜ
    ┗ 旅인 09.05.20. 14:16
    이상하게 저는 버스나 지하철 고생을 별로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서울에서 삼사십분 길이면 먼 길인데 대충 걸어다녔고, 지하철도 1호선은 타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잠깐 버스를 탄 기간(중학교 1학년)도 있는데 그때는 버스 안 엔진덮개 같은 데 책가방을 올려놓았던 터라, 그런 걱정은 없었고 성적걱정은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한두번 정도 만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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