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시절 -06

<애들은 가라 파>에 있어야 했다.

오팔년 개띠는 개답게 살았어야 함에도 오륙년에서 개구멍으로 일년 빨리 들어 온 오구년까지 사년의 시공간이 혼효되는 싯점에 살고 있었다. 그때는 주민등록증(76년 최초 일괄발급)이 없었기에 몸이 아파 국민학교 때 일년 꿇는 바람에 오칠년이라며 떠들어도 까내 볼 민증도 없었다.

오팔년 <애들은 가라 파>에 섞여 있었더라면 두서와 같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을 지도 모른다.

선생들이 불량이라고 말할 때, 불량은 뭔가 사악한 것을 가리키는 것처럼 들리는 데, 그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애시당초 잘못 만든 불량품이 사람 아닌가? 제대로 만드셨다면 성경책을 읽고 교회를 갈 일은 애당초 없다.

그러니까설라무네 인간은 불량인 채 살아야 정상이지, 똥폼잡고 사는 놈치고 이중인격 아닌 놈이 없는 곳이 우주의 변경, 이 지구 아니던가?

그래서 애들이 불량한 거지, 불량하려고 년초에 계획 세우고 열심히 노력해서 불량한 것은 아니다. 선생들은 다 학교 다녀봤으면서도 이런 간단한 것도 모른다.

하긴 내가 선생이라도 눈까리를 히떡디비 뜨고 턱주가리를 내밀고 나를 쳐다보거나, 부모가 비싸게 주고 사준 교모를 눌러쓰고, 한쪽 손을 뒷주머니에 밀어 넣고 건들거리며 걷거나 하면 뒤통수를 패주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기는 하다.

인간이 완전하다면. 몽땅 똑같으니까 장유유서가 없어지고, 진짜 노소동락하는 사태로 접어들고, 예수나 석가 따위를 존경할 필요란 눈꼽만큼도 없다.

잘 생각해보면 예수, 석가야말로 불량한 인간 아닌가? 길게 말하면 숨가쁜 만큼 좌우지간 그렇다는 이야기다.

‘얘들이 왜 이럴까?’하고 한번 생각할 사이 없이 따귀를 갈기는 작태야 말로 완전한 어른들이 할 짓거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그어놓은 금을 넘으면 가만두지 않겠다. 그 철칙이 허물어지면 자신들의 권위체계가 지닌 허구성이 드러나게 되고, 더 이상 자신들이 설 곳이 없다는 것을 막연히 그들은 알고 있었다.

거리의 장발족이나 미니스커트를 그대로 놔두면, 젊은 놈들의 햇또(Head)가 제 멋대로 돌아갈 것이고, 그러면 유신 체제가 무너질 지도 모른다는 유치한 위구감이 박파쇼정권에 있었다면, 학원 내에서는 교복 칼라의 후크만 안 채워도 교권이 실추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또한 늘상 있어 왔던 것이다. 노상방뇨 하나 만으로도 유신체제에 대한 반항이 되는 세상에서, 교권이라는 권위체계가 어린 우리에게 중첩되면서 숨쉬는 것조차 불량이었고, 정상은 아무 것도 없었다.

선생들이 말하는 이른바 모범생이란, 제 학급의 동료들이 상급생과 싸우고, 교실 한쪽 구석에서 벌거벗은 여자 사진을 펼쳐 들고 여체의 신비감에 침을 흘리고 있어도, 홀로 돌아앉아 책상 위에 책을 올려놓고 단어를 외우는 그런 놈들이다.

놈들은 세상을 수학공식으로 풀어낼 수 있고, 잉글리쉬로 염라대왕과 네고를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 싸이코다. 세상이 썩어 문드러지고 건물이 폭싹 내려앉고 교각이 우지끈 두 동강이 나더라도, 자신의 일이 아니면 고개를 돌리고 자신의 목표(출세)를 향해 용맹 정진하는 싸가지가 하나도 없는 놈이거나, 지 엄마 아빠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멍청이 둘 중 하나다.

둘 다 어른이 되면, 그 따위로 살아온 만큼 세상의 단물만 빨아먹겠다는 이기적인 인간이 될 것이고, 놈들이 똘똘 뭉쳐 형성한 세계가 자동 빵 제도권이고 수구보수일 것이다. 그 세계는 물론 들끓는 가슴도, 인간에 대한 연민도, 시와 사랑도 없는 그야말로 돈과 권력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강자의 세상일 것이다.

상급생과 싸워 이겼다는 소문에 학내 폭력 서클에서 우리 반으로 헌팅을 나오고 했지만, 애들은 몽따다(국어사전: 일부러 모른 체하다)라는 자경조직을 만들어 대항했다. 복도를 활보하고 다니던 이학년들은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는 식으로 복도의 한쪽 끝으로 풀이 죽어 다소곳이 다녔다. 반면 약간의 소란이야말로 평화를 느끼는 첩경인 냥, 우리는 떠들고 다녔다.

어느 날인가 담임이 “고등학생이라면 어느 정도 컸고 우정을 가꾸어야 하는 만큼 니들 멋대로 자리를 돌아가며 앉으라”고 했다.

드디어 나는 지겨운 앞줄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전후 사정 가릴 것 없이 눈이 나빠서 학업에 지장이 있다는 놈과 자리를 바꿨고, 칠판과 까마득히 먼, 뒤에서 두번째 줄로 나 앉게 되었다. 나는 짝이 어떤 놈인지 확인도 않고 그 자리에 털썩 앉았다.

뒷줄에 앉아보니 앞줄과 느낌이 판이했다. 앞 줄에서는 고개를 바짝 쳐들고 칠판을 보아야 했기에 교단 위의 선생은 근엄했고, 칠판만 보였다.

뒷줄에 앉으니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말이 이해되었다.

교단과 선생과 칠판이 아스라이 멀리 눈 높이로 내려앉고, 교탁 위로 크고 근엄해 보였던 선생도 조그맣게 보였다. 뒷줄에 앉은 놈들이 선생한테 대드는 이유를, 앉아보니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딴청을 피우거나 조는 놈들을 다 볼 수 있었고, 인간의 허위에 찬 얼굴에 비하여 사람의 등이 얼마나 솔직한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다리우스 09.05.14. 15:06
    일년 꿇는 바람에 오칠년이라며 떠들어도 꺼내 볼 민증도 없었다. .. 이 문장에서 또 한번 감동 먹고 읽기 시작합니다. 아, 하하하 문장안에서는 이상하게 여인님의 유머러스한 부분이 압축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 旅인 09.05.14. 21:26
    당시에 우리 반에서 자신의 나이 사기가 빈발했고 재수출신인 척 폼잡다가 연줄 연줄로 걸려서 재수파에게 얻어터진 후 애들은 가라 파로 강등되고 하는 일이 꽤 있었습니다. 아마 오팔 개띠에게만 있던 특이한 현상일 겁니다.
    ┗ 다리우스 09.05.15. 00:29
    오팔, 사파이어도 아니고 암튼 주옥같이 빛나는 특이한 추억들이,,,ㅜ 많으셨군요,

    산골아이 09.05.14. 19:20
    드디어,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뒷자리에 앉으셨군요.
    ┗ 旅인 09.05.14. 21:27
    진짜 칠판이 아득하게 보이는 것이 졸리더라고요.

    유리알 유희 09.05.15. 11:19
    아, 그때 이미 사람의 등, 이 주는 표정을 보셨군요. 상당히 조숙하십니다. ㅋㅋㅋ. 여인님의 근엄한 모습과 익살스러운 문장들을 매치하느라 유희는 지금 많이 참고 있습니다. 자꾸 웃음보가 터져 나오는걸요. 뭐. ㅋㅋㅋ
    ┗ 旅인 09.05.15. 16:09
    당시 키 큰 놈들은 맨날 뒷자리에서 앉아 있으니 친구들의 등짝이 지겹기만 했겠지만 저한테는 새로운 장면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등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죠. 어떤 때는 이런 문체가 제 문체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라비에벨 09.05.18. 15:01
    그래서 선생님 모습이 그리 작게 보였구나!! 꼭 앞자리 앉은 얘들이 공부를 잘 했던 이유를 알것 같습니다.^^
    ┗ 旅인 09.05.18. 21:16
    라비에벨님은 고등학교 때도 지금처럼 훤칠하셨던 모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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