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시절 -05

어머니는 서울대는 나를 위해서 국가가 세운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내가 못 들어간다면 국가재정을 위해서라도 없애야 하는 곳이 서울대였다.

정작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것을 꿈꾸고 있었다. 이 재미없고 덧없는 속세에서 자유를 찾기 위해서는 꼭 날아야만 했다. 고등학교 이학년 말까지 날아다니기 위한 모든 지식을 마스터한다. 놈들이 대학을 가기 위해 머리에 쥐나도록 공부하는 고삼의 오월(밑의 주석 참조)의 어느 날, 조용한 수업시간 중에 “잘 있어라. 이 멍청한 놈들아!”하고 앉았던 자리에서 표표히 날아올라 창 밖으로, 아니면 멋있게 벽을 뚫고 사라진다.

남아있던 놈들은 이 광경을 보고 지겨운 공부를 포기하고, 날겠다고 지랄발광을 하다가 결국 대학 입시를 조져버린다는 것까지 뚜렷하게 나의 계획 속에 잡혀 있었다.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도사를 찾아 입산(가출)한다는 차선책까지 마련한 상태였다.

이미 도덕경, 남화진경(莊子)에 사서삼경까지, 위대하여 날아다녔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책이란 책은 다 끌어다 모아 놓았다. 물론 읽지는 않았지만, 만반의 준비는 갖춰져 있었다.

그래서 속세에 물들은 어리석은 놈들과는 상종도 않기로 했다. 학과시간 중 몽상과 딴짓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자리(두번째 줄 가장자리)는 이미 차지했고, 누가 도시락 반찬을 빼앗아 먹어도 아무 소리도 안하고, 남들이 이야기를 하면 그냥 죽치고 듣기로 했기에 어떻게 보면 빙충맞았고 놈들이 신경쓰기에는 나는 너무 작았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지낼 수 있는 모든 여건이 갖추어진 것에 만족했으며, 도를 닦는 일에 전념코자 했다.

첫 월말고사를 치르고 나자, 그만 계획에 차질이 발생했다.

일등에서 십등까지 재수출신이 도맡아 했는데, 그만 내가 이등을 했다.

재수 출신들은 정말 흉악한 놈들이었다. 놈들은 내가 중삼 교과서를 보고 있을 때, 경기 등에 들어가기 위하여 중학교 때 ‘안현필의 영어실력기초’를 마스터하고, 재수 때 삼위일체를 잡지 읽듯 읽고, 공통수학의 정석을 풀었다고 한다. 놈들 속에서 이등을 한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그 놈의 공부라는 것이 무엇인지… 평소 내게 개코도 관심없던 뒷줄 재수 출신들이 시험 성적이 발표되자, 나를 찾아 왔다. 조그만 놈이 반에서 이등을 했다는 것에 놈들은 상당히 당황했고. 놈들은 주위를 돌면서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은밀하게 숨어있던 나는 성적 때문에 그만 놈들에게 발각이 되었고, 본의 아니게 공부 좀 한다는 <재수파>들과 놀아나게 되었다. 반면 공부도 못하는 오팔 개띠는 이른바 <애들은 가라 파>에 끼게 되었다.

남학교에서는 같은 건물 안에 학년 사이에 벌어질 수도 있는 선후배 간 다툼 때문에, 일학년과 이학년, 이학년과 삼학년을 함께 두는 것이 아님에도, 학교의 팽창과정에서 불행하게도 우리 반은 이학년이 쓰는 형편없이 지어진 교사의 일층 한켠에 놓여 있었다.

복도에서 떠들거나 놀면, 이학년 놈들은 “뺑뺑이들은 선배도 몰라본다.”고 구박을 했고, 우리는 “공부도 못한 이류고 동계진학들이 선배라고 지랄한다.”고 투덜거렸다.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되어 우리들은 서로 서먹한 사이였고, 친구를 하나 둘씩 사귀기 시작했는 데, 우리의 더딘 우정을 가속화시키는 사건이 벌어졌다.

어느 날, 우리 반 삼수 출신 하나가 복도에서 인사를 안 한다고 이학년에게 맞았다.

불현듯 삼수가 동생뻘 되는 놈에게 맞았다는 생각을 했고, 눈이 뒤집어져 지엄하신 선배, 이학년을 “너 좀만한 새끼 이리 와 봐!”라고 불러 세운 후, 두들겨 패고 복도 바닥에 패대기를 쳐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다음 휴식시간에 눈두덩이가 시퍼런 놈 하나를 앞 장 세우고, 이학년 몇 놈이 교실로 들어섰다.

놈들은 교단으로 예의 삼수를 불러 세우고, 우리 눈앞에서 불문곡직 손찌검을 시작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방적인 폭력을 보면서도 우리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교실을 딴 곳으로 파가지 않는 한, 일학년 내내 고달파질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갑자기 뒷줄에서 “야이 X같은 새끼들아! 보자 하니 너무한 데~”했다.

그 소리가 끝나자 웅성웅성, “저 새끼들 조져버려!, 야 나가자!” 뒷줄의 재수파들이 한 놈씩 교단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우리도 소리쳤다. “죽여버려! 저 새끼들.”하고 나도 외치고 있었다. 사태가 심각한 것을 눈치 챈 이학년들은 이츨으로 내빼기 시작했다.

우리는 도망가는 선배들을 잡아 (우리가 좋아하는) 코너에 몰아놓고, 알량한 선배라고 후배를 괴롭히는 등의 짓을 않겠다는 사과를 받고 훈방조치를 했다.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한 것은 오산이었다. 점심시간을 빌어 이학년 한 반 전체가 우리 반으로 몰려왔다. 우리 반은 전체가 죽기 아니면 까무러 치기다로 대걸레 빗자루 쓰레받이 할 것 없이 들고 나가 방어전선을 펼치게 되었다. 바로 옆 반 1학년 1반은 문을 꽉 걸어잠그고 아예 나와 볼 염두도 못내고 있었다.

이 소식이 급기야 교무실로 전해지면서 선생들이 왔다. 사태는 마무리되는 듯 했다. 담임이 왔고, 싸운 놈들을 불러내어 엉덩이에 무두방망이질을 한 후, 애들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담임은 말도 안 되는 일장 훈시를 했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는 가 했더니, 우리 남주가 하시는 말씀,

“일단 싸웠으면 이겨야지! 졌다는 소리만 들렸다 하면 그때는 곡소리 나는 줄 알어. 종례 끝!”

우리는 황당했다. 선생이라는 작자가 제자들을 꼬드겨 싸움질을 시키다니???하고 고개를 꺄우뚱하며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교무실에서 싸움의 책임론이 거론되었다. 후배가 선배를 때렸다는 것은 위계질서의 문제다. 그렇다고 학교 내의 구타행위를 용인해야 하냐? 그리고 한 두놈의 문제라면, 징계를 통해서 사태의 수습이 가능한데, 학급 대 학급의 문제로 비화되었고 이 일이 알려진다면, 상 하급생 사이에 충돌이 잦아질 것이고 면학분위기를 해치게 될 것인 바, 더 이상의 충돌이 없도록 담임들이 책임진다는 선에서 덮기로 했다.

하지만 국지전은 계속되었다. <애들은 가라 파>들은 다시 책상으로 돌아왔지만, <재수파>들의 그들 만의 리그는 계속됐다.

몇 놈은 교무실에 끌려가고, 담임은 반성문을 쓰게 하겠다는 것을 담보로 놈들을 교실로 돌려보내곤 했다. 교무실에서 돌아온 <재수파>들은 자신들의 무용담을 떠들어대곤 했다.

“그 짜식 뻔치가 쎄더라구. 근데 내가 레프트가 있거든. 복부에 왼손이 들어오고 다시 어퍼가 올라오더군. 피했지. 그 순간 놈의 턱이 보였어. 조졌지.”
“그래서…?”
“벽으로 주춤 물러서더군. 그래서 놈의 복부를 원,투, 원,투 갈겼지. 그리고 어퍼로 피니쉬 블로우. 그걸로 끝이야.”

우리는 전선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일부 젊은 선생들은 하급생이 상급생과 피 터지게 싸우는 사태를 즐겼다.

암울한 유신체제 속에서, 선배라는 알량한 권력에 대항하여 약자로써 투쟁하고 있는 우리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급기야 국어선생은 어느 저항시인의 시를 우리에게 읊어주기도 했다.

우리의 투쟁이 자랑스러웠지만, 친구들이 복도에서 두려운 마음을 억누르고 싸우고 있음에도 나는 책상 만 지키고 있다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또 한편으로 조용한 나의 세계가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안스러워 했다.

비겁이 싫어서 싸우러 가는 놈들 뒤에 종종 붙어 나도 싸우겠다고 하면, 놈들은 나의 실내화 꼭지에서 머리끝까지 한 번 훑어보고는, “쥐씨알 만한 놈이 웃기고 있네. 다치니까 구석에서 숨어 구경이나 해! 넌 우리의 마스코트니까…”라며, 놈들은 가슴을 펴고, 독립운동을 하러 가는 것처럼 싸우러 갔다.

개나리 꽃마저 진 완연한 봄날에, 이학년 대표가 반으로 와서 더 이상 싸우지 말자고 함으로써 국지전마저 끝났고 마침내 평화가 왔다.

피 땀으로 자존심을 지킨 우리들이 자랑스러웠고, 동지의식으로 서로를 치열하게 사랑하게 되었다. 투쟁과 자유가 무엇이며, 평화가 무엇이고, 우정이 무엇인가를 아주 쬐끔 이해할 것도 같았다.

놈들이 나를 끌어안고 해방을 자축할 때, 나의 마음 속에는 기쁨을 함께 하기에는 뭔가 허전했다. 아무도 전사하지는 않았건만, 동료들이 죽어 묻힌 영광의 묘지 위에 나 홀로 서있는 것 같은 고적감이 몰려왔다.

※ 주석: 고삼 오월이 가장 열심히 공부할 때이기에 찬물을 끼얹기에 심술 상 효과가 가장 크다. 늦어서 시월 쯤에 날아가 버린다면 “여태까지 죽자고 공부한 터, 대학가서 날아보지 뭐!”하고 계속 공부를 할 우려가 있다.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다리우스 09.05.13. 17:04
    어머니는 서울대는 나를 위해서 국가가 세운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내가 못 들어간다면 국가재정을 위해서라도 없애야 하는 곳이 서울대였다. 푸하하하 용서하시길요, 초두부터 폭소가,,,흐흐흐 이런 통쾌한 표현은 처음입니다. ㅋㅋㅋ
    ┗ 旅인 09.05.13. 19:09
    고삼 2학기가 되니 포기하시더라고요.

    샤 론 09.05.13. 21:53
    여인님 ! 저의 고교시절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습니다..공부얘기만 빼면요..저희는 공부얘기는 아무도 안하니까요..ㅎㅎ리얼하니 정말 재미있습니다….
    ┗ 旅인 09.05.14. 10:46
    …… 앞으로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유리알 유희 09.05.14. 11:44
    하하하… 여인님을 위한 서울대라. ㅋㅋ하긴 저도 중학교 때 아주 잠깐요. ㅎㅎㅎ
    ┗ 旅인 09.05.14. 13:02
    저도 한때는 서울대는 버스타면 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버스보다 전철이 났다고 하더군요.^^

    러시아황녀 09.05.14. 11:44
    1~5까지 단숨에 읽었습니다. 소설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물론 재미있고요..계속 기다립니다..ㅎㅎㅎ
    ┗ 旅인 09.05.14. 13:03
    좀 양이 됩니다… 개들은 무지하게 짖어대거든요.

    산골아이 09.05.14. 12:09
    ㅎㅎㅎㅎ 리얼한 세계…… 지금도 교실의 앞줄에서 두 번째 인가요.. 여인님을 상상하면 등치가 크고 훨칠하게 잘 생긴 중년의 사나이… 다음 이야기 기대됩니다. 웃었더니 배고 고파지네요.
    ┗ 旅인 09.05.14. 13:01
    예전에 김건모 엄마가 건모가 책가방 들고 학교가는 것을 보면 저 큰 가방을 들고 학교가는 애가 그렇게 안스러워보였다고 하던데… 아마 제가 그 꼴이었을 겁니다.

    라비에벨 09.05.14. 15:20
    잘 정리해서 규동 대표에게 보내심이…^^ 친구의 한 장면이네요^^
    ┗ 旅인 09.05.14. 17:44
    사실 규동이 보다 다른 친구를 향한 참회록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보기보다 죄가 많은 놈입니다.

    truth 09.05.21. 09:10
    아…저는 여기서 일단은 읽기를 중단하겠습니다. 여인님글은 개인적으로 가장 훌륭하여 늘 문장마다숨쉬고 행동함이 그려지는편여서..아이고..힘듭니다. 남학생들의 고등학교생활은 무섭네요..잘 읽었습니다. 간좀 더 자라면 또 접해보겠습니다.ㅠ제가 오늘아파서 좀힘들다가 ,,그래서 더 강력하게 다가오는듯,,,^^;;
    ┗ 旅인 09.05.21. 11:46
    저도 당시에는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방장께선 옥체를 보중하셔야 합니다. 빨리 쾌차하시길…
    ┗ truth 09.05.21. 21:14
    감사합니다 여인님. 당시에 무서운것을 글로 얼마나 리얼리티하게표현하셨는지 저는 이제야 겁이나고 그래요..제가 워낙에 폭력적이거나 억울하거나 말안되는상황들 사태들을 힘겹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편여서요..제게 그럴 이유들이 있는거지요…ㅠ 암튼 감사 드립니다 늘..^^
    ┗ 旅인 09.05.22. 10:25
    남자고등학교에서 이 정도의 일들은 비일비재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하면서 세상에 조금씩 눈을 뜨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엘프 09.06.03. 15:47
    ㅋㅋㅋ 싸움구경, 불구경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요. 즐겼습니다~ 귀여운 것들, 나름 심각했었겠죠?^^
    ┗ 旅인 09.06.03. 23:02
    왜 제가 재수없이 1학년 2반이 되었을까 하고 고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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