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 대한 송가, 기탄잘리

시작하는 글

어느 맑은 가을 저녁, 여인과 소녀가 사원에서 신 크리슈나에게 꽃을 바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제 가슴에 넘치는 이 사랑은 어디에서 오나요?” 소녀가 물었습니다.
“사랑은 신 크리슈나로부터 온단다.”하며 여인은 꽃을 꺾어 소녀의 머리에 꽂아 주었습니다.
“크리슈나는 어떻게 생겼나요?” 소녀는 동그란 눈으로 물었습니다.
“그는 어디에나 있으며 때론 하늘과 같은 모습으로 어떤 때는 저잣거리의 걸인의 모습으로 나타난단다, 자 보렴! 저 하늘의 노을을……”

소녀는 가을 저녁의 가득한 빛을 받으며 침묵 속에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소녀는 자라서 아리따운 처녀가 되었습니다.

그 때 왕국에서는 왕자의 신부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소녀의 영혼이 깃든 듯한 눈과 구름 위를 걷는 듯하며 조용하고 청아한 음성 그리고 맑은 마음이 궁궐에 까지 소문이 났습니다. 왕자는 밤에 궁궐을 나와 소녀의 집으로 가서 소녀를 훔쳐보았습니다.

달빛 아래, 소녀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자태는 빛을 발하는 듯하였고 노랫소리는 작았으나 청아하기가 가을바람과 같고 찬가의 내용은 온 우주를 아우를 듯 했습니다.

왕자는 소녀를 보고 온 후 자신의 신부는 소녀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신하를 보내 왕자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자신이 있을 곳이 궁궐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왕자는 국왕에게 소녀를 신부로 맞이하도록 해 줄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소녀는 할 수 없이 궁궐로 들어갔습니다.

몇 년이 흘렀습니다. 왕자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왕비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에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궁궐에 들어온 소녀는 항상 크리슈나를 이야기했을 뿐이며 자신을 사랑하는 일 따위엔 아무 흥미가 없었습니다. 왕비에게 크리슈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간청하여도 왕비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크리슈나 뿐이며 다른 것에 대해서는 말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왕은 질투에 싸여 다시 크리슈나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면 궁궐에서 추방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왕비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오직 크리슈나 뿐이며 세상 모든 것에 크리슈나의 숨결이 잇닿아 있음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에 다른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랜 나날을 침묵 속에서 홀로 침실을 지켰습니다.

어느 날 왕이 왔습니다,

“왕비! 이제 침묵에서 나오시기를 바라오. 아니면 임금의 권위로 말할 것을 명하오.”

왕비는 한동안 침묵 속에 있다가 말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저어하며 말씀 드리옵니다. 크리슈나에 대하여 말하지 못하게 하옵시면 차라리 저를 죽음 속에 가두 오소서.”

왕은 분노에 치밀어 왕비를 궁궐에서 내쫓았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왕은 새 왕비를 얻어 왕자와 공주를 낳아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왕국은 굳건하고 백성은 배부르며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왕은 왕비를 내쫓은 것이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마저 세월이 흐르자 잊혀져 갔습니다.

어느 날 대신이 어전에 들었습니다.

“위대한 왕이시어! 세상은 편안하고 사시에 맞추어 꽃이 피고 백성은 배부르나이다. 이는 폐하의 홍복인 줄로 아옵니다.”

이렇게 말을 시작한 그는 왕국 내에 아름다운 노래가 넘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노래가 어디에서 나오는 지는 몰라도 아름다운 노래에 사람들이 취하여 서로 다투는 일이 없어졌고 신전에 몰려드는 백성의 믿음이 더욱 커졌으며, 시기와 모략과 반목이 줄었노라고 말했습니다.

왕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궁궐 밖으로 나갔습니다. 꽃들은 천자만홍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날씨는 맑았습니다. 들에는 곡식이 풍성하게 열렸으며, 백성들의 얼굴에는 근심이 없었습니다. 저녁이면 동리에는 사람들이 모여 비나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습니다.

노래는 하늘에 닿을 듯하였으며, 곡조는 망각의 세월 속에서 퍼 올린 아련함이 있었습니다. 노래는 나이든 왕의 가슴을 어루만졌으며 드디어 왕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왕은 노래를 들으며 하염없이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이며 신, 그리고 아름다움 등을 한번도 생각하지도 느껴보지도 못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이 너무도 덧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동네의 꼬마에게 물었습니다.

“아이야! 너는 그 노래를 어디에서 배웠니?”

꼬마는 저 쪽이라고 가리켰습니다. 왕은 꼬마의 손가락을 따라 멀리 멀리 방황하였습니다. 그는 파랑새를 찾는 어린아이마냥 들과 산 그리고 개울을 건너,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 노래가 시작하는 곳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마침내 그가 도착한 곳은 자신이 있는 궁궐을 둘러싼 성벽이었습니다. 한 노파가 돗자리 위에서 실을 잦고 있었습니다. 노파는 실을 잦다가 대지 위로 노을이 지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왕은 노파의 옆에 앉아 한동안 노래를 들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으며 자신이 잊었던 것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인생도 찬란한 왕궁의 권위도 아무 것도 아니며, 신께로 다가가는 봉헌과 사람에 대한 사랑 속에 흘러 듬이야말로 지복임을 알았으며, 거기에는 신 크리슈나가 있음을 이해했습니다.

왕이 물었습니다.

“아 가련한 노파여! 당신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그 노래는 어디에서 배웠는가?”

노파는 얼굴에 드리운 천을 걷고 왕에게 절을 하였습니다.

“대왕이시어! 저는 바로 저이며 저는 온 곳도 간 곳도 없나이다. 다만 크리슈나의 품 속에서 낳았고 그 속에 거하며 그에게로 흘러들 뿐 이나이다. 내 노래는 그가 채우시나이다.”

왕은 노파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 얼굴은 거치른 대지의 바람과 태양 빛에 바래고 주름지었으나 평화와 사랑이 가득하였으며 세월의 두터운 두께 밑에는 아름다움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왕은 노파의 얼굴을 오랫동안 들여다 본 후, 그녀가 오래 전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였음을 기억해냈습니다.

“아아! 나의 아내여, 나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내가 당신의 신에 대한 사랑을 너무도 가벼이 이해했오. 이제 나와 함께 궁궐로 돌아갑시다. 내가 당신을 위하여 크리슈나의 신전을 짖고 당신을 편케 하리다.”

“왕이시어! 이제 미천한 저를 이해하시는군요. 아내로서 당신을 사랑하였나이다. 그러나 크리슈나의 큰 사랑을 제가 어찌할 수는 없었나이다. 이제 제게 돌아갈 곳은 없나이다. 크리슈나는 신전이나 궁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에 계시나이다. 제가 있는 이 곳에 님이 계시나이다.”

왕궁의 호화로움과 편안함이 아내가 앉아 있는 돗자리보다 못함을 이해하고 왕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지 못하고 왕궁으로 돌아갔습니다.

노파는 궁궐로 돌아가는 왕을 보며, 다시 노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신은 나를 무한케 하셨으니 그것은 당신의 기쁨입니다. 이 연약한 그릇을 당신은 비우고 또 비우고 끊임없이 이 그릇을 새로운 생명으로 채우셨나이다…… “

이야기들

중고등학교를 지나면서 시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조금은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나로서는 시란 단지 단어를 상당히 경제적으로 쓰는 테크닠 정도로 보였으며 더 이상도 아니었다. 더욱이 한용운 시에서 님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대목에 이르러서 대한독립 어쩌구 저쩌구 하면 시란 대학입시나 국가 이데올로기를 위해서 준비된 무엇인가로 전락되며 인간의 감수성이 교묘한 이성의 술수에 농락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서글픔마저 들었다. 특히 남녀가 만난 자리에서 어느 누군가 시를 읊어대면 닭살 돋는 유치함과 함께 혐오스런 것으로 변모되는 것이다. 특히 교회의 대학생 야유회 때 성경책 사이에 끼워진 쪽지에 깨알 같은 글씨로 컨닝페이퍼식으로 싯귀를 적어놓았다가 여학생들 앞에서 읽을 즈음이면 믿음과 섹스의 간드러진 랑데부의 치모를 본 듯한 느낌마저 들곤 했다.

그만큼 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고, 시인이란 단지 언어를 연금해내는 테크니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4학년 때인가? 타고르가 쓴 산문을 읽고서 단순한 시인이 아니라는 짐작으로 타고르의 시를 읽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에 기탄잘리 이상의 시는 없으리라고 단정했다. 그 후 글을 읽지도 못하는 까비르의 노래가 수백년간 벵갈지역에서 전승되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진정한 시란 명상을 통한 맑은 영혼의 결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시를 통해서 세상의 모든 경전은 바로 시라는 것을 알았다.

시작하는 글에 써 놓은 동화는 석지현 스님의 책에서 잠시 보았던 이야기를 내 나름대로 구성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동화 자체가 기탄잘리의 전편을 하나의 드라마처럼 보여준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나는 을유문고에서 나온 문고판의 책을 열권 정도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영씨가 번역한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마음이 번잡하거나 할 때, 기탄잘리를 읽으면 하루 저녁이 편안해지고 마음이 착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책을 들고 다니다 누군가 마음에 들면 읽던 책을 그냥 주고 서점에 가서 또 사곤 했다. 기억이 가물하지만 시작하는 글에 쓴 동화(앞에 쓴 것보다 훨씬 압축되어 있었음)를 책 표지 안쪽에 단정하게 써서 사랑하던 여자에게 주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나에게는 그 책은 없다.

기탄잘리가 영국에서 출판되어 독자들이 접했을 때, 독자들은 타고르를 보고 진정한 크리스찬이며 신(여호와)에 대한 사랑을 이보다 더 아름답게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고 찬탄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타고르가 예수의 모습과 닮아있었기에 그들의 열광은 더했는지도 모른다.

타고르의 집안이 벵갈지방의 문예부흥의 중추역할을 했고, 서구의 선진교육을 받긴 했어도 그는 이천년의 역사를 지닌 브라만 집안의 혈통을 이어받은 사제다. 사원에서 타고르가 암송하는 시타는 아름다웠고 충분히 종교적이었으며 힌두교 사제로써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들(기독교인)이 그의 시를 통하여 신에 대한 사랑을 배웠다고 한다면 모든 종교가 지순한 경지에 이르면 차별성이 사라지고 만다는 만교회통 원융무애의 차원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기탄잘리가 위대한 사랑의 서사시로 자리잡는 데에는 타고르의 시성으로서의 천품과 사제로서의 종교적인 비젼에 덧붙여 벵갈지방을 떠다니는 유구한 인도인의 지성에 바탕을 둔 전통과 구전이 있다.

15세기에 까비르라는 사람이 벵갈지방에 태어났다. 그는 수도승과 과부의 야합으로 태어나 길거리에 버려졌으며 어느 회교도의 집 안에서 양육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는 굳이 어느 종교에 치우치지도 않았고 교육도 받지 못했다. 그는 물 긷는 일과 베 짜는 등 허드레 일로 생계를 이어갔는 데, 그는 베를 짜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의 노래는 하루 노동에 지친 저잣거리의 사람들을 위로해주었으며 그 아름다운 가사로 인하여 벵갈지방 전역으로 노래가 번져나갔다. 그래서 그를 문맹의 시인이라고 하며 삼사백년동안 벵갈지방에 그의 노래가 구전으로 떠돌고 있었으며, 타고르가 그의 노래를 채집하여 시로 엮었다. 따라서 까비르는 타고르의 시에 풍성한 자양분을 공급하였으며, 기탄잘리가 어쩌면 까비르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끝 맺는 말

기탄잘리(Gitanjali)는 신에게 바치는 노래라는 뜻이다. 인도는 베다의 산맥으로부터 우파니샤드의 대하를 지나 바가바드 기타의 대양으로 서사시가 흘러 드는 나라이다. 그 노래는 모두 다른 이름이긴 하여도 신에게 바치는 노래로 포괄적으로는 기탄잘리이다.

인도인들은 유구한 시간을 바라보면서 자신들의 경전이 돌에 쓰여져도 또 종이 위에 쓰여진다 해도 세월 속에 마멸되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경전을 성문화하지 않고 인간의 머리 속에 구전이라는 형태로 아로새겼다. 구전이라는 형태의 한계 상 암송할 수 있도록 모든 경전은 운문으로 만들어졌고 수천년 동안 노래되었다. 베다가 신에 대한 노래를 읊었고, 우파니샤드가 오의에 다가가는 지혜를 말하고 기타(특히 마하바라타)에서는 신에 합일하기 위한 수행(요가)을 노래했다. 그러나 타고르의 기탄잘리는 사랑을 노래한다.

기탄잘리는 혁명적인 사랑을 노래한다. 오랜 기다림과 사랑을 달라는 애절한 구애, 그리고 가학적일 정도의 고행, 님에 다가가기 위하여 땅바닥을 기는 행위, 자신의 모자람을 용서해달라는 갈구 등등… 기탄잘리 전편에 편집증적인 사랑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형태의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은 깨어져버린다. 가장 비참한 형태의 사랑의 이야기임에도 가장 아름다운 시로 떠오를 수 있음은 님에 대한 사랑으로 인하여 인간의 자만심과 이기심 등 에고가 타버리는 오체투지의 고행 위로 천자만홍 세상의 빛과 대지의 훈향이 뒤덮이고 님의 곡조와 생명력이 끊임없이 퍼부어짐으로 자신과 님의 합일에 이르는 단계에 이르며, 기탄잘리는 님도 신도 없는 사랑의 바다 속으로 침몰한다.

This Post Has 3 Comments

  1. 여인

    저도 Full Version의 유영씨 번역판을 구해서 다시 한번 읽고 싶습니다. 기탄잘리를 읽으면 만해의 <님의 침묵>이 얼마만큼 키탄잘리의 영향을 받았는지 금새 알 수 있지요.

    뱀씨 아저씨의 뒷다리: 전편응 읽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리는 데, 저는 늘 토요일 오후 해가 질 무렵 읽곤 했습니다. 다 읽고 나면 저녁이 정적 속으로 조용히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죠. 노을이라도 지면, 그 하루가 장엄하다는 것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뒷다리 두번째: 저는 님의 침묵을 국수주의적인 입장에서 이해하라는 그 강요가 싫었습니다. 기탄잘리를 쓴 때가 1909년이고, 1913년에 노벨문학상 수상, 님의 침묵을 지은 때가 1926년으로 설악산 신흥사라고 합니다. 그 전 어느 날 남편이 죽은 미모의 여성과 하룻 밤을 보내는데, 그가 여연화라고 합니다. 그가 그 하룻밤을 후회하며 쓴 시가 바로 님의 침묵이라고 하더군요.

  2. 旅인

    전갈자리 08.11.28. 10:38
    시인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경전은 없을 듯 합니다. 베다와 우파니샤드, 바가바드 기타로 노래되는 인도의 정신을 소개해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 旅인 08.11.28. 12:45
    인도의 정신과 사유는 너무도 다양하여 설명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은 저도 잘 모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까비르라는 시인의 노래 때문에 나나크에 의해 시크교가 창도될 정도이니, 그 다양성을 어찌 알겠습니까?
    ┗ 전갈자리 08.11.28. 17:33
    대표적인, 베다와 우파니샤드, 바가바드 기타에 대해서 아는대로 소개시켜주시지요.
    ┗ 旅인 08.11.29. 20:05
    잘모르고 또 방대하여 어떻게 설명을 하겠습니까?

    유리알 유희 08.11.28. 23:12
    궁금하여라. 그러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내일로 미룹니다. 글 올려 주신 여인님! 감사해요. ㅎㅎ

    꺽수 08.11.28. 23:21
    기탄잘리… 까비르… 잘배우고 갑니다.감사합니다.

    truth 08.11.29. 08:39
    비오는 고요한아침에 빛나는 진리를 아름답게 펼쳐주신글을 대하는 이순간이 참으로행복하다생각됩니다. 첫글내용들이 얼마나 잔잔하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지 쏙쏙빠져들었답니다.만교회통 원융무애 정말 그렇단생각을 다시한번더 갖게됩니다. 좋은글내용과의 만남을 나눠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旅인 08.11.29. 20:07
    좋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기탄잘리가 워낙 좋은 시라서 이야기도 좋겠지요.^^

    샤론 08.11.29. 08:41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그리고 설명도요..시는 참 좋은 도구가 아닌가 생각해요..사람의 마음을 표현하기에…여인님 오늘도 행복한 시간되세요..
    ┗ 旅인 08.11.29. 20:08
    그런데 아직도 시에 대해서 잘 모르니 안타깝기가 그지 없습니다. 오늘 날씨가 추워 바깥에 나갔다 꽁꽁 얼어들어왔습니다. 샤론님도 좋은 주말되십시요,

    유리알 유희 08.11.30. 21:11
    기탄잘리를 모태로 동화를 쓰신 분도 대단하고 그 동화와 기탄잘리를 토대로 이런 수필을 쓰신 여인님은 더욱더 대단하십니다. 기탄잘리를 저도 읽었지만 저는 정말 시치인지라 그냥 읽고 말았답니다. 생소한 까비르까지 잘 배우고 이만 내려 갑니다. 편안한 시간 되시길요.
    ┗ 旅인 08.11.30. 22:13
    석지현 스님의 글을 바탕으로 쓴 동화지만, 기탄잘리의 전편을 드라마처럼 펼쳐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시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토요일 오후와 같은 날에 그냥 소설 읽듯이 읽는 것도 좋았습니다. 유희님도 포근한 저녁되시길…

    자유인 08.11.30. 22:11
    여인님 글을 통하여..오체투지의 고행을 하며 카일라스 산까지도 간다는, 그들의 고행을 이해해 봅니다.^^
    ┗ 旅인 08.11.30. 22:15
    그 고행이 그들에게는 평생동안 바라던 행복이라는 역설이 늘 인간을 이해할 수 없도록 하지요.

    라마 08.11.30. 23:44
    “‘신을 질투하는 왕’은, 백성들 배부르고 등시원한(더운 인디아니까요^^) 태평성대가 왔으니, ‘신을 사랑하는 왕’이 되었으나, 백성들 굶주리고 탐관오리 날뛰는 불평환욕탕이 왔으면 그 왕은 어찌되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하기야 ‘질투’는 ‘사랑’의 결과이기도 하므로, 본시 그가 신을 사랑했다고도 볼 수 있겠으나, 그 질투가 사랑으로 복귀하는 계기가 (물론 당연히 깨달음의 순간이겠지만, 깨달음의 순간조차) 태평성대였다면, 평생을 불평환욕탕에서 살아가는 이들(수드라나 불가촉 천민?)의 사랑복귀는 또 언제 이루어질지… 그러니까 ‘현실적’으로 추락할 수 있는 이들, 더는 추락할 데가 없는 이들이 아닌 이들,

    라마 08.12.01. 06:13
    예컨대, 붓다나 저 왕이나 왕비처럼 ‘현실적’으로 마음껏 추락해버릴 수 있는 이들의 몫, ‘신에 대한 질투심’의 몫을 챙길 수 있는 용기와 권력을 지닌 이들이 다만 일푼이라도 사랑심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더 많은지…, 요컨대, “<현실적>으로 추락할 여지를 가진 이들이 <현실적>으로 애초부터 추락할 여지를 가지지 못한 이들보다는 <정신적>으로 깨달을 가능성을 일푼이나마 더 가졌을 가능성이 있지는 않을까?”라고 생각해봅니다.^^;
    ┗ 旅인 08.12.01. 08:28
    저도 깨달음이나 정신적인 유희라는 것은 부르조와적인 환상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곤 합니다. 밥 그릇이 깨졌는데, 깨달음이니 이데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때거리가 우선한 후에나 고민할 밖에요.^^

    에우리알레 08.12.01. 20:07
    왕은 그녀를 사랑 한것이 아니라 단지 좋아한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아름다운 악세사리나 옷을 탐하는 여인들 처럼요.
    ┗ 旅인 08.12.01. 21:16
    사랑과 좋아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명료하게 밝혀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늘 그 두가지의 차이를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사랑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탓인가 봅니다. 아마 왕은 그랬을 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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