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음악들

RadioBlog에 엄청난 수의 음악을 올려놓았다. 자세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57곡인 것 같다. 한곡이 대략 4분이라고 치면 57 X 4 = 228분, 약 3시간 48분 분량이다.

천성적으로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 피아노를 기막히게 치는 친구를 만났고, 사실 음악보다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피아노를 치는 놈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놈은 나에게 나처럼 진지하게 음악을 들어주는 놈을 처음 만났으며, 같이 음악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검정콩을 싫어하는 만큼, 검정콩나물 대가리도 나는 싫어했다.

놈은 나를 자신의 집에 끌고가 전축 위에 클래식 음반을 걸어놓고 들으라고 강요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작곡한 소나타를 쳐 주곤 했다.

나는 클래식 음반보다는 친구가 작곡한 소나타가 훨씬 좋았다. 그것은 40분을 넘는 레코드 판보다는 짧았을 뿐 아니라, 놈과 나만이 아는 은밀한 소나타라는 점에서, 친구의 천재성에 늘 탄복했던 것이다.

친구 덕분에 클래식에 대하여 조금 알게 된 고 2 때, 무슨 바람이 드셨는 지 아버지께서 낡은 진공관 전축과 일본에서 제작된 라이센스판 클래식 전질을 사오셨다.

집 안 식구들은 하루 이틀 판을 얹어놓고 듣더니, “교양은 무슨…” 하면서 다시 TV로 복귀를 했고, 그 진공관 전축을 듣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나는 20~40번 돌리면 거덜이 나 버리는 라이센스판들이 걸레쪽이 되도록 들었다.

그리고 대학 2학년이 되자 더 이상 판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지글거렸으며, 진공관이 나가버렸다. 그래서 전축을 내다버리고 음악이 없이 살았다.

아마 그 시점부터 오디오라는 말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나의 최초의 오디오는 마란쯔였다. 그러나 워낙 값싼 보급기라서 청계천 세운상가에 내다 팔고, 산쓰이 인티앰프를 사고 AR 스피커를 사면서 오디오 다운 면모를 꾸릴 수 있었다. 그러면서 1970년대를 풍미했던 중고 마란쯔 리시버(40Kg이나 되는 거함)를 집에다 들여다 놓으면서 나는 결혼을 했고, 다시 앰프를 쿼드로 바꿨다.

오디오를 즐기기 위해서는 앰프보다는 소스에 투자를 많이 해야 하며, 스피커등의 Output에 돈을 많이 들여야 한다고 한다.

당시의 돈으로 40만원을 주고 산 낡아빠진 AR 스피커를 보면 사람들은 ‘이런 걸레는 얼마나 하냐?”고 물었지만, 나는 한번도 후회를 한 적은 없다.

그러나 돈이 없어서 튜너 하나 변변한 것을 살 수가 없었고, 턴테이블은 데논 정도에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소스(음원)가 되는 레코트판을 사들이는 것은 만만치가 않았다.

지금 CD가 한장에 1만 2천원 정도한다면, 당시  LP판은 오리지널은 염두에 둘 수도 없고 라이센스 한장에 8천원씩 했으니, 한달에 몇장을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듣는 음악의 편성은 유행에 민감하지 않으면서도 늘 들을 수 있는 클래식이나, 세미클래식의 변경에 있던 음악, 특히 신디사이저 계통에 집중되었다.

그러다가 집을 사게 되었고, 돈이 모자라 집의 오디오를 청계천에 내다팔아 돈을 일부 마련했다. 그때 AR 스피커만은 남겨두고 싶었으나, 오디오는 쓰지 않으면 금새 삭아내리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것도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십년이 지난 후, 홍콩에서 오디오를 샀을 때, 이미 아날로그 시대는 끝났고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어 5채널 어쩌고 저쩌고 하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최첨단이라고 할 수 있는 5채널 앰프내장형 스피커의 보스를 샀다.

오랜 오디오 경력으로 오디오 셋팅이나 오디오 조합에서 상당한 능력을 구비하고 있어서 나보다 두세배의 돈을 들인 이웃들이 우리 집에 와서 음악을 들으면, “어째 이 집 오디오는 살아있는 소리가 나오는 것 같아?”라고 말했지만, 어딘가 이놈의 디지털이라는 것이 리모콘으로 오도방정, 껐다 켰다 하면서 소리 면에서도 깊이가 없고, 아날로그 때처럼 정이 가지 않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미 오디오는 사 놓았으니 CD를 산다하면서, 다시 클래식에 귀착되었고, 오페라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아마 사람 목소리가 들어간 음악에 관심을 갖기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클래식을 듣는다는 것은 이제 귀찮은 일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그래서 나의 현재의 음악의 취향은 크로스오버 쪽에 머문다. 팝과 오페라의 크로스오버인 팝페라, 그리고 클래식과 째즈의 크로스오버인 뉴에이지 계열의 음악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홍콩에서 서울로 돌아와 예전에 쓰던 쿼드를 중고시장에서 샀지만, AR 스피커는 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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