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혼을 하고 미국으로 들어가겠다는 친구가 회사로 왔다. 나는 회사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친한 부장이 “저 회사 그만 두기로 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사정을 잘 알던 나는 “그럼 식구들 있는 미국으로 들어가시겠다는 말씀이네요?”
“그렇죠. 딸도 9월이면, 대학 들어갈 것이고, 회사를 다녀도 일이년 아니겠습니까? 이제 가서 아무 것이나 하면서 먹고 살아야 될 것 같습니다.”
나는 회사가 끝난 후, 친구가 잠시 일하는 술집으로 갔다.
“음 미국에 가서 음식점을 한다면, 뭘 좀 배워놓아야 할 것 같아서…“
손님 시중을 드느라 바쁜 녀석을 보면서, 혼자 소주 한 병을 깠고, 맥주를 거의 한 병 비운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중 나온 놈에게 말했다.
“가려면 날짜를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서 일을 처리해야지 괜히 어영부영해봤자, 돈 깨지고 미국가서 살기만 힘들어져… 가지 않으려면 안 간다고 결심을 하던지… 한달 두달 금새가는 것이 우리 나이 때 아니겠어?”
“그래 나도 결심을 확실히 해야 할 것 같아.”
지하철 6호선으로 내려갔다. 나는 승강장으로 다가갔고 부지불식 간에 승강장 너머, 선로로 내려서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언뜻 놀라며, 끼우뚱 승강장 끝에 간신히 멈춰 섰다. 아마 좀 취했던 모양이고, 동묘역의 선로는 시멘트 침목에 올려져 있지 않고, 그냥 평탄한 바닥에 올려져 있어 험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탓에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바닥까지 내려서려고 했던 모양이다.
지하철을 타자, 그 탓에 정신이 말짱했다.
그러나 우리의 시간이 언제인지 어지러웠다.
이혼을 할 수 밖에 없는 절박함과 그냥 숨쉬기에도 버거운 나이에 말도 모르는 타국으로 떠미는 세상이 잘못인지, 아니면 녀석의 삶이 그만큼 모자르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지하철의 형광등블에 비추어본 나의 시계바늘 또한 이미 늦은 오후를 가르키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나이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처절하게도 할 일이 없었다. 그만큼 회사의 부속품으로 짜 맞추어져 버린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내에게 두 사람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아내는 조용히 내 말을 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여보, 꼬맹이가 대학 들어가면 당신 정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