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삼식이

요즘 포스트 작성도 어렵고 해서 치사하지만, 전에 네이버에 올렸던 글을 올립니다.

Mr. Blog의 질문
영화나 드라마에서 감명깊게 본, 나도 꼭 따라해보고 싶은 장면 있으세요?
블로그씨는 러브스토리에서 눈에서 뒹구는 장면을 따라해보고 싶어요.

삼순누나와 다시 한번 키스하고 싶다. ♡@♥@♡….

요즘 감명깊게 본 장면이 냄새나는 남자화장실에서 저 현진헌과 어떤 펑퍼짐한 여자가 입맞춤하는 장면이라고 하더군요. 그 장면이 재미있었다면 이해가 되지만 감동 먹었다니? 또 따라해보고 싶다고 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아~ 그 사람들 몰취미하고는…

그렇지만 제가 이 지경에 어떻게 이르게 되었는 지, 여러분께 변명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심리적인 상태가 그려질 수 없는 이차원의 브라운관에서 벌어지는 사건 만을 보아왔기 때문에, 그것도 저처럼 잘생긴 남자와 양푼에 고추장 듬뿍 밥비벼 먹으면 잘 어울릴 허리가 굵은 여자, 게다가 팔뚝 살이 양쪽으로 한근씩 두근이나 더 올라온, 특이하게도 <삼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연상녀와 벌어진 코믹한 사태에 대하여 감동을 먹었다면, 본인 만 즐기면 됐지 주인공의 내면 심리상태는 아무 것도 아니다 하는 시청자지상주의적이고도 가학적인 일면을 은연 중에 갖고 계시다고 말씀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아시겠지만 저는 몹시 순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고등학교 때 <희진>을 만난 후, 딴 여자에게 눈길 한번 돌려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오후 네시에 처음 만나 당일 저녁에 만리장성을 쌓고 다음 날 아침이면 쿠울하게 헤어지는 요즘 세상에 그딴 여자와 <계약연애>를 한다는 것을 보면 저 현진헌이라는 사람이 단순히 돈지랄하는 싸가지가 바가지인 <삼식>이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참! 삼식이라는 이름은 삼순이의 남자 친구라는 뜻 이외에도 <하루 세끼 꼬박 받아먹는 퇴직한 남편>의 뜻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유식하게 <우리 집 (一日)三食이!> 그러니까 삼식이란 여성의 권위 신장과 함께 나타난 남성하위시대를 대표하는 모욕적인 이름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반면 삼순이라는 이름은 얼마나 소박하고 포근한 이름입니까? 듣기만 해도 밭농사, 집안 일 가리지 않고 다 해낼 것만 같고, 아울러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야! 이거 큰일 났다. 인구가 준다 어쩐다>하고 난리 북새통을 놓는 이 얄팍한 양은 냄비 바닥과 같은 대한민국에서 새끼들 쑥쑥 잘나을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노무현 정부와 코드가 잘 맞는 MBC에서 신세대 여성상으로 <김삼순>을 내세운 셈입니다. 그녀는 자갈치 시장의 생존력(+욕쟁이)을 보유하고 있지만, 불란서에 유학한 파티쉐이자 엉덩이 싸이즈로 볼짝치면 자식 열쯤 나아도 허리가 주질러 앉는다거나 골다공증에 걸릴 염려가 없고, 짜잔한 것에 별로 스트레스 안받고, 자식 잘 기를 것 같을 뿐 아니라, 아 글쎄! 이 여자가 그 어렵다는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소설까지 읽을 수준의 교양을 갖추고 있더란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차세대 혁신 여성상으로 <김삼순>이라는 여자가 뜨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

그럼 이만 각설하고, 제가 왜? 하필이면! 지나가던 개도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 이름을 가진 그녀, 김삼순과 키스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는 지에 대해서 설명함으로써, 여러분께서 이와 같은 황당무개한 사태에 봉착하는 것을 사전 예방할 수만 있다면 크게 다행이라고 저 삼식이는 생각합니다.

저로 말하자면 잘 사는 놈과 못 사는 놈이 갈라져 있다고 생각하는 왕싸가지 부르조와 쯤 됩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안된다고들 하지만, 세상이 어디 그렇습니까? 그리고 못 사는 것들은 연애를 하더라도 격에 맞게 다방이나 호프집에서 하라 이겁니다. 없는 놈들이 비싼 호텔의 커피숖에 왔으면 조용히 데이트나 하고 가지 왜 여러사람 있는 데 싸우고 지랄들이냐 이거예요.

그러니까 그 날도 우리집 <나사장> 때문에 할 수 없이 호텔의 커피숖에서 인생의 목표를 결혼에다 올인을 하고 취미로 성형수술을 하는 여자를 만나고 있었습니다. 지겨웠죠. 그런데 제 뒤에 앉았던 연놈들의 대화가 몹시 흥미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대화로는 적격이었습니다. <넌 나를 사랑하기는 한거야?> 여자가 물었죠. 그러자 싸가지 없는 자식이 사랑하던 여자를 걷어차는 마당에 시이저를 칼로 찌른 부르터스가 로마시민들 앞에서 연설하듯 멋지게 <이러저렇게 사랑했었다> 라고 한 뒤, 큰 소리로 <나의 사랑은 여기까지 인 걸 어떡해>라고 말하더군요. 그걸 들은 할 일 없던 손님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제가 <저 여자 차여도 된통으로 차였다>고 생각하며 웃자, 자기에게 관심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눈치챈 선보던 여자가 <나쁜 짜식>하며 제게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매력이란 눈을 씼고 찾아볼 수 없던 속물에게 저도 그 여자처럼 차이고 만 셈이죠. 그러자 남자에게 채인 등신같은 여자가 미워지면서도, 그녀의 얼굴을 한번 쯤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여자를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 비칠비칠 남자화장실로 들어가더라구요. 그리고 화장실의 한쪽 구석에서 꺼이꺼이 우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따위 싸가지없는 남자에게 채였다고 울고 난리인 여자에 대한 심술로 <여기는 당신같은 여자가 와서 퍼질러 앉아 울라고 만든 남자화장실이 아니다>라고 말할 심산으로 노크를 했습니다. 안에서 울음소리와 웅얼거리는 말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고, 왈칵 여자의 얼굴이 튀어나왔습니다. 추악한 여자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름다워 보이고자 그린 마스카라가 눈물에 범벅이 되어 흘러내릴 때 얼마나 흉물스러운 것인지 그제서야 처음 알았습니다. 그 뿐 아니라 풀려진 블라우스 사이로 느슨하게 삐져나온 앞가슴, 이런 것이 사랑에 허물어진 여자의 최후의 모습이다 라고 그녀는 몸으로 말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뭐합니까? 아줌마 지금 수유 중입니까?>라는 엉뚱한 소리를 지껄이고 말았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가혹했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아마 그녀는 수치심에 떨며 실연의 괴로움에서 벗어났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그날 그녀에게서 버림받은 여자의 진실된 처절함을 보았습니다.

그 후 어찌어찌하다보니 제가 호텔에서 만났던 <버림녀>를 제 식당인 <보나뻬티>의 파티쉐, 쉬운 말로 <과자 만드는 여자>로 고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름이 <김삼순>이래요. 삼순이, 크크. 그런데 몸이 좀 불어서 그렇지, 입으로는 막말을 하지만 눈동자는 참으로 맑고 선하더라고요. 그런데 문제는 제가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단순히 <사장과 빵순이>라는 봉급을 매개로 한 무기적 결합에 기초했겠지만, 나의 뇌리에 꽂힌 그녀에게 유기화학적인 관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고, 그녀의 밑바닥을 본 저에게 그녀는 다가가기가 쉬웠습니다. 그래서 <나사장>의 관심도 돌릴 겸 <계약연애>같은 걸 했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불현듯 다가와 필로 꽂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그녀의 처절했던 그날의 모습과 그녀의 펑퍼짐한 자태, 이 새끼 저 새끼 막말을 해대는 품위, 마지막으로 삼순이라는 이름이 제가 그녀를 사랑하게 될 불행한 사태를 충분히 막아주리라는 계산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와 함께 하게 된 불가피한 시간들 속에서 내슝이 배제된 노처녀의 소박한 인생을 보았고, 주방에서 베이커리를 만드는 진지함과 사랑에 대한 순수한 열망을 보았습니다. 술에 취해 제 집의 침대에서 퍼져 잘 땐, 가관이었지만 가슴과 아랫배, 엉덩이 그런 것이 예술은 아니더라도 봐줄 만 하더라고요. 그리고 <보나뻬티>에서 함께 피아노를 치고 포도주를 마시다 그녀와 키스를 하게 되었을 때, 제 여자 친구인 희진과의 키스보다도 달콤할 수도 더 짜릿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고, 사랑은 머리 속에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 속에서 꿈틀대는 것임을 그제서야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그 등치를 갖고 제 품안에 퐁당 뛰어들어올 수 있다는 것은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그러니까 사랑에는 국경 뿐 만 아니라 싸이즈도 없다는 거죠.

물론 희진도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린 시절에 아무런 고통도 없는 가운데 유리로 만들어진 애잔하고 금가기 쉬운 것이라면 삼순이와의 사랑은 가슴 속에서 살냄새를 풍기며 다가오는 것이라는 걸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희진과의 사랑은 애잔하기에 곱게 보듬고 싶지만, 제 마음은 삼순에게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희진과의 사랑은 꿈이라면 삼순과의 사랑은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저를 용납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삼순의 푹신한 몸매가 큰 역할을 한다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지금 한라산의 꼭대기에서 우리의 삼순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왠 안개와 비가 이리 심한지, 지척을 분간할 수 없네요. 삼순 누나가 저기 오네요. 저 몸매를 이끌고 혼자 여기까지 올라오다니… 기적입니다. 그런데 걱정이 하나 있습니다. 저 말만한 여자를 끌고 해가 지기 전에 산 밑으로 내려갈 수 있을 지…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지? 뭐! 삼식이 이 눔의 새끼? 저 여자 욕 하나는 잘 해요. 우리 삼순이 누나는 욕 빼면 매력도 없지.

올라오면 껴안아 줘야지. 그리고 뽀뽀해 주어야지. 우리 삼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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