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에 대하여…

그 비굴한 대다수의 동포들이 바로 민족과 국토와 언어를 보존한 힘이었다.

이 말은 김구 선생을 보좌하면서 항일 독립운동을 했고, 광복 후 귀국해 경향신문 문화부장·부국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에 처음으로 무협소설을 들여온 김광주(1910~73) 씨의 말이라고 한다.

김광주씨의 아들이 김훈이며, 아들은 병석에 누워있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일신을 위하여 비굴하게 일제에 굽신대며 이 땅에 살아남았던 동포들이 밉지 않더냐고 물었을 때, 저렇게 말했다고 한다.

김훈은 일제의 그늘이 지워져 가던 1948년에 태어났고 그의 글이 쓰여지는 때는 해방이 환갑을 지나던 시점이다. 그러니까 우리 땅의 사람들이 몽당연필에 침을 칠해가며 자유롭게 가갸거겨나냐너녀를  써내려가기 시작한 지, 60년이 다 되어가는 어느 시점(2004.3.27일)에 나는 그의 글을 접했다.

그의 글을 읽으며 처음으로 나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치를 떨었고, 살벌하게 벼려진 그의 글의 날이 무서웠다. 그의 글을 읽으며 치욕을 느꼈고, 치욕의 밑바닥에서 용기를 찾았으며, 마침내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나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세상의 더러움에 치가 떨렸고, 세상의 더러움을 말할 때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까워서 가슴이 아팠다. 저물어서 강가에 나가니, 내 마을의 늙은 강은 증오조차도 마침내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밥벌이의 지겨움, 책머리에)

주전파의 말은 실천 불가능한 정의였고,
주화파의 말은 실천 가능한 치욕이었다.

…전략

남한산성 서문의 치욕과 고통을 성찰하는 일은,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세상에서 그러나 죽을 수 없는 삶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마도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과 치욕이란 없는 모양이다. 모든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은 결국은 받아들여진다. 삶으로부터 치욕을 제거할 수는 없다. 삶과 죽음이 서로를 겨누며 목통을 조일 때 삶이 치욕이고 죽음이 광휘인 것도 아니고 그 반대도 아니다.

후략… (남한산성 기행 중에서 살 길과 죽을 길은 포개져 있다.)

김훈과 같은 작가가 이 땅에 태어나고, 한글로 쓰여진 글들이 머나먼 갯벌처럼 퇴적되기를 바란다. 그 글들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 말하는 법을 배울 것이며, 우리의 말들이 또 다시 새롭게 꽃피기를 바라는 것이다.

김제는 아득하다. 아득한 농경지가 끝나는 해안선에서 다시 아득한 갯벌이 펼쳐지고 바다는 그 갯벌 너머에서 신기루처럼 반짝인다. 강의 음악은 하구에 이르러 들리지 않는다. 강의 음역은 넓어져서 인간의 청력 범위를 넘어선다. …… 빛들의 죽음은 모든 순간마다 생사존망이 명멸하지만, 그 갯벌 전체에서 빛들의 죽음은 고요하고 가지런하다. 빛들은 어둠과 습합되는 방식으로 죽는 것이어서 빛의 죽음은 죽음의 자취를 드러내지 않고, 삶과 죽음의 경계는 지워진다. (밥벌이의 지겨움 중, 큰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중)

This Post Has 2 Comments

  1. 선수

    저는 김훈님의 글을 이상문학 대상을 탔던 화장 이란 글로 처음 접했는데 뭐랄까 쪼글어든 열등감 같이 갑갑한 느낌을 받았던것 같아요 그저 첫느낌은 그랬던것 같습니다. (아마 제가 그래서인지도 모릅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전 진심으로 김훈의 글보다 여인님의 글에서 느끼는 바가 더 큰것 같습니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여인님 글에서 더 많이 느끼게 되요 부담스러우실까봐 더는 말못하겠지만 여인님께서 출판을 하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늘 듭니다. 이렇게 가끔 예전 글들을 읽으며 혼자 읽는게 아깝다는 생각이 자주 하는데..

    1. 旅인

      그것은 이미 오래동안 서로 알아왔기 때문이 아닐까요? 상호 간에 선이해를 갖고 있다는 점 때문에 와 닿는 느낌이 증폭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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