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보내는 편지

지난 금요일,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가니 피로가 엄습했다. 그냥 눕고 싶은 마음만 가득한 데, 딸아이가 와서 타임캡슐에 넣을 편지를 써야 한단다. 무심코 컴퓨터로 치지 말고, 손으로 써야 한다고 말했다.

비스듬히 누워 TV를 보는 데,

“아빠! 안 써줘?”
“뭘?”
“편지.”
“니껀, 니가 써야지.”
“내 것 말고. 엄마 아빠 것.”

나는 멀뚱히 딸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다

“그래 쳐 줄께.”하고 말했다.
“안돼, 아빠가 손으로 써야 한다며…? 예쁘게 써줘!”

나는 말을 잘못했다는 것을 그때에서야 알았고, 부시럭 구시렁거리며 컴퓨터 앞에 가서 앉았다.

“타임캡슐은 언제 개봉하는거야?”
“20년 후…”

컴퓨터로 편지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년 후면 다 자라 삼십대의 아줌마가 되어 있을 딸아이에게 보낼 적절한 말을 찾지 못했다. 적절한 말을 찾지 못했다기 보다는 20년이라는 시간동안 딸아이에게 다가올 시간들을 사랑의 눈길로 차분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20년 후 편지를 받아볼 사람은, 지금까지 내가 알아온 딸아이보다는 훨씬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나보다 더 풍성한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나는 그 편지가
저 먼 미래로 보내지기는 하여도
결국 지금,
사랑하는 딸 아이를 향하여 쓴
아빠의 편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때까지 썼던 글들을 지우고, 다시 사랑하는 딸에게… 라고 치기 시작했다.

다 치고 난 후…

“아빠~, 손으루 쓰라니까!”
“안 그래도 손을 쓸거다. 넌 중학교 1학년이나 된 것이 쌩쌀 먹은 반말이야. 그러는 너는 왜 편지 안쓰는거냐?”
“난 학교가서 쓸거다. 약 오르지?”

딸아이의 그런 모습을 보며 20년 후에 나의 나이가 몇살인가를 생각했고, 결국 딸아이가 어린아이로 남을 수 없는 것은 세월 탓이 아니라, 그 부모의 늙음 탓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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