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WayStation/photos

열차가 지나가기 까지 계절로 가득합니다. 철길 위로 오후의 햇빛이 반짝이고, 가령 亡命이라든가, 개암나무 잎, 그리움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입맞춤하는 시간들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대합실은 여름이면 서늘하고, 겨울이면 난로에 조개탄을 땝니다. 그러나 늘 사람은 없습니다. 단지 열차가 지나는 도시와 소읍의 이름이 적혀진 시각표가 벽에 걸려있고, 그 옆에 누가 썼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돈벌이를 위하여 밤길을 달리거나, 아무도 모르는 저들만의 사랑을 하기 위하여 그 겨울밤을 건너왔다. 저들의 은밀한 살 냄새와 체온 같은 것, 기나긴 불면의 밤 끝에 맞이하는 먼 동네의 아침, 그런 것이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 글을 보면 마지막으로 한번 만이라도 이 외로운 간이역에 열차가 서고, 사람들이 내리면, 열차를 타고 낯선 도시로 가서 그리운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불행하게도 저의 기억은 22장 10절로 끝나 있습니다. 누렇게 구겨진 기억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내 이야기가 바람과 같다며 여름 기차를 타고 간 그녀는, 어느 추운 날 돌아와 어둠 속에 가라앉은 내 뺨을 만졌다.

그제서야 나는 눈물을 이야기 할 수 있었다.

라고 얼룩져 있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이곳은 석양이 미쳐 날뛰는 들이 내려다보이는 무너진 망명지일 뿐 입니다.

찢어진 기억의 22장 10절 인 씀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다리우스 08.10.31. 13:20
    기억의 22장 10절,,,망명지에서의 기억의 끝,,,!
    ┗ 이류 08.11.01. 08:09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유리알 유희 08.11.01. 00:01
    사평역의 대합실에 놓인 무쇠난로에 톱밥을 뿌리고 싶어집니다. 붉게 단 추억들이 춤추는 시각에 막힌 제 소설의 글꼬가 트일 것 같기도 하네요. 온기를 주는군요. 이류님의 사념들이 . ㅎㅎ
    ┗ 이류 08.11.01. 08:11
    제발 힘과 온기가 되기를…
    ┗ 자운영 08.11.01. 11:02
    사평역이란 단어를 보고 문득 곽재구 샘이 떠오르네요, 잘 지내고 계시는지… ㅠ ㅠ
    ┗ 이류 08.11.01. 18:43
    곽재구씨의 포구기행이 읽고, 좋아라 미조포구를 갔다가 꽝이었던 기억이…^^
    ┗ 유리알 유희 08.11.01. 23:24
    엥? 나는 임철우님의 사평역이 오버랩되거늘, ㅎㅎㅎ. 하긴 괙재규님의 시를 읽고선 임철우님이 소설을 쓰셨다고 허더군요. 두 분은 같은해 같은 날 태어나신 친구라고 하더군요.
    ┗ 이류 08.11.03. 21:39
    저는 TV문학관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 원작이 임철우님의 글이었던 모양이네요.
    ┗ 유리알 유희 08.11.04. 01:05
    네,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truth 08.11.01. 14:12
    길지않은 글을 몇날조회수만 늘려갑니다..오이스틴 연주를 배경하여 읽어보는 지금시점에 더 다가서는군요..늘 아름다운글 감사히 대합니다.
    ┗ 이류 08.11.01. 18:41
    음악이 아주 좋았을 것입니다. 늘 관심을 가져주시니 감사합니다.

    아이스크림 08.11.04. 15:29
    간이역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늘, 아릿하다못해 슬프기까지 합니다. 어쩜 그건 기나긴 인생이라는 여정에 잠시 정차한 바람소리 같은 거 겠죠 낯선 도시에 홀로 버려져 있는 공허함… 쓸쓸함.. 누렇게 구겨진 기억의 파편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철길 위를 열차는 미련없이 지나갑니다.
    ┗ 아이스크림 08.11.04. 15:34
    지나간 자린 돌아보면 늘, 그리움 투성입니다. 왜 그리울까요 분명 기억조차 하기 싫은 꾸부정한 날도 있을건데…우린 늘 아름답게 포장하는 걸까요 저 들판을 가로지르는 바람의 이야기…라고 말하진 마세요
    ┗ 이류 08.11.04. 15:53
    단순한 기억이 추억으로 용해되어 가는 절묘한 화음은 보잘 것 없는 우리의 부생(浮生)을 그나마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지난 날들을 용서하며 조금씩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닌가 합니다. 포장이거나 거짓이라도 용서해야 하는 자기 앞의 생이기에… 아이스크림님의 댓글에서 가을날 녹슨 철길 위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과 바람에 쏟아져 내리는 은행잎의 찬란한 죽엄들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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