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의 사회

새벽에 이웃분의 블로그에 가보니, 대학생 아들을 가진 엄마가 아들의 책상서랍에서 콘돔을 보고서 놀란 이야기가 <펌>으로 올려져 있다.

대학 다니는 자식의 서랍 속에 있어야 할 12개의 콘돔 중 하나가 사라진 데서 비롯된 불안이 아들이 콘돔의 착용감을 알아보려고 썼다는 해명에 한숨을 돌렸다는 그 이야기는 자식 가진 부모에게 늘 다가올 수 있는 그런 것이기에 흥미로왔다.

만약 자식이 사고를 쳐서 새끼를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하겠느냐?

쉽게 답할 수 없고, 그때 그때의 상황이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자명한 것은 있다. 데리고 온 아이가  자신의 손주라는 점에서 해결의 단서가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포스트를 읽으면서, 이 시대가 지닌 불모에 대해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사회가 지닌 거대한 불감증과 거기에 바탕을 둔 불모를…

<콘돔>이라고 할 때, 그것은 단순히 정자가 질 속으로 사정되는 것을 방지하여 원하지 않는 임신을 예방하거나, 성병을 방지하는 고무로 만든 제품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하나의 제품은 때때로 환유와 치환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의 관념 속에 뿌리를 내리고 전통과 인습의 변화를 야기할 수도 있다.

그 포스트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부모로서의 적절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자식이 단순히 사고만 안치면 그만이라는 단순 논리다.

예전에는 남녀 모두 나이가 15~20살이 되면, 댕기머리를 풀고 상투나 쪽을 지는 관례(성인식)가 있었다. 혼례보다는 관례를 통하여 어른으로 인정되었다. 이러한 성인식은 단순한 의례적인 차원 뿐 아니라, 성숙한 자신의 몸을 인격적인 차원에서 주체적으로 관리해 달라는 요구와 함께 그 부모는 자식을 어린아이가 아니라 독립된 인격을 가진 주체로 인정하겠다는 선언이다. 더 이상 자식은 부모에 종속된 입장이 아니라 성숙한 주체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제 나이가 스물이 넘어도 어른으로 인정하는 성인식이 없다. 그래서 지들 멋대로 어른이며, 어버이의 입장에서 볼 때는 자식이 어른이 되기에는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다. 반면 아이들의 영양상태는 과잉일 정도로 좋아 들은 기름지고 씨는 튼실하기가 그지없다. 그래서 남녀가 눈빛만 한번 부딪혀도 뭔일이 날 정도인 데, 인터넷에서는 연분홍빛 사진들이 즐비하고 TV에서는 불륜과 혼잡한 혼인관계로 드라마를 엮고, 뻔뻔스럽게 아가씨가 남자를 앞에 두고 오랫동안 굶었다고 한다. 뭘 굶었는 지는 모르겠다만…

아이들이 사고칠까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편은 아내가, 아내는 남편이 바람피울까 심히 우려되는 사회가 이 눔의 사회다.

아이는 책상서랍에 콘돔상자를 넣어놓고 여관방 이층 자판기에서 콘돔을 사서 볼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시치미 뚝 떼고 TV를 보고 다음 날이면 학교로 간다. 그러면 아들의 빈 방에 들어가 엄마는 콘돔이 몇개 남아있는가를 헤아려 본 후, 옆집으로 가서 “우리 아이는 요즘 아이들 같지가 않다니까요. 글쎄 오늘도 콘돔을 세어보았더니 그대로 아니겠어요.”라고 말한다.

콘돔의 안쪽에 정자를 가두어둠으로써 세상에 만연한 불륜과 쾌락, 불의로 생긴 아이들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차단막이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막음으로써 그 댓가로 원하지 않는 도덕적 방종을 불러온 것인지도 모른다.

남자들은 콘돔을 장화라고 한다. 질척거리는 뻘밭에서 자신의 발이 젖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뭔 말인가? 이런 도치된 문법은 이제 콘돔은 남자가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가지고 다녀야 하는 필수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러한 Coool한 사회에 일말의 경외심마저 느끼지만, 이 놈의 세상은 섹스에는 민감하여도 사랑에는 불감증이다. Coool한 세상에서는 사랑마저도 칙칙하고 찝찝하다는 것인가?

그러니 이 사회는 불모다. 아이는 정자가 난자 사이에서 수정이 이루어져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책임을 바탕으로 한 모든 인연들의 조합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치 않은 수도 있다.

우리는 생명의 경이를 얇디 얇은 고무 속에 쌓아 쓰레기통에 내버리고, 끝도 없는 쾌락에 떠밀려갈 때, 이 사회는 사랑을 잃고 정신의 불모 속을 방황하다 결국 아이들 마저 사라져 버린 세상을 맞이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어머니여! 아이의 서랍 속의 콘돔을 헤아리지 말고, 어른이 되었으면 한 여자를 아끼고 사랑하라고 가르쳐야 한다.

This Post Has 2 Comments

    1. 여인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든 당사자로서
      죄송하단 말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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