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치와 고추

작년에 아내와 설악산을 가던 중에 샀던 고추를 시험삼아 갈치젓에 담아두었더니 맛이 들었다. 처음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았을 때, 삭지 못하고 썩은 줄로 알고 버리려던 것을 집에 들르신 어머니께서 맛을 보시더니, 이런 맛은 살면서 다시 맛보지 못할 것이라며, 고추와 갈치젓이 버무려진 이 고약한 냄새는 절대맛에 사람이 감히 범접하지 못하도록 자연이 친 그물이라고 했다.

작년 가을 아내는 간장에 삭히기 적당한 고추를 길에서 본 김에 푸짐하게 샀고, 나는 그것을 갈치젓에 박아 놓으면 그 맛이 기가 막힐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아내는 핸드폰으로 제주의 갈치 파는 집에 전화를 하여, 전에 산 은갈치가 좋았다며, 갈치젓도 파느냐고 물었다. 그 집에선 물론 갈치젓도 판다고 했다.

서울에 도착하여 제주에서 올라온 갈치젓을 보았을 때, 고추와 갈치의 앞날이 심히 우려되었다. 그 갈치젓은 속젓도 아니고 삭은 것도 아닌, 그저 갈치의 살덩어리였기에 오랜 시간을 어두운 곳에서 삭혀야만 젓갈이 될 것이었다.

그렇지만 아내는 고추를 반으로 갈라, 간장과 식초를 섞은 통 속에 담았고, 반은 삭지 않은 갈치 속에 박아넣었다.

새해가 되어 병의 뚜껑을 열었을 때, 간식초의 고추는 그럴듯한 냄새와 풍미를 주었지만, 갈치 속의 그것은 고약한 냄새 때문에 감히 맛이 어떤 지를 알 수 없었다.

나는 상했을 지도 모르니 버리자고 했지만, 몹시도 잘 삭았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고추 몇개를 꺼내 찬찬히 맛을 보았다.

그 맛을 보면서 어렸을 적의 그 행복한 도전이 생각났다.

국민학교 6학년 쯤인가…?

아버지께서는 당신 만의 맛을 찾으시겠다며,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음식들(주로 젓갈류)을 사오셨다. 아버지는 늘 우리를 불러 한번 맛을 보라고 하셨고, 어린 우리들은 도저히 그 맛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가 못먹겠다고 고개를 저으면, 아버지의 얼굴에는 신난다는 웃음이 피어올랐다.

저 고약한 것들을 어떻게 아버지는 먹는 것일까 했지만, 자신 만의 맛을 찾겠다는 아버지의 이기적인 심술을 우리는 용납할 수 없었다.

먹어도 같이 먹고 못먹어도 같이 못먹는다며, 인내심을 갖고 아버지가 가지고 온 것들의 맛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맛과 맛 사이에 숨어있는 맛을 찾아내기 시작했고, 아버지는 당신 만이 그 맛을 알 것이라고 생각하셨는 데, 우리가 그 맛을 즐기기 시작하면 약간의 분노와 허탈감을 느끼셨는 지 또 다른 당신 만의 맛을 찾아 방황하셨고, 또 다른 고약한 음식을 찾아 “너희들, 이것은 못먹을 꺼다!”라며 호언장담을 하셨다.

아버지는 늘 실패를 하셨지만, 마지막으로 아버지께서 성게알젓을 가지고 오셨다. 며칠동안 그 맛을 알기 위해서 저녁에 냉장고를 열어 젓가락 끝으로 노란색의 젓갈을 찍어 입에 넣으면, 혐오스런 맛이 올라오곤 했다. 그 맛을 알았다는 누나에게 나는 더 이상은 안되겠다고 했다. 누나도 그 맛에 빠져들지는 못했던 모양이었고, 아마 아버지도 자신의 맛이 아니었는 지 사온 성게알젓이 끝난 후, 다시는 성게알젓이 밥상 위에 놓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주 오랜 후, 홍콩의 어느 식당의 쏘스에서 나는 수십년전의 그 혐오스러웠던 성게알젓의 맛을 느꼈다. 그래서 아버지께 우리가 먹었던 성게알젓을 기억하시냐고 했더니 모르겠다고 하신다. 기억하시지도 못하는 아버지께 무지하게 성게알젓만 먹는 것이 아니라, 다른 쏘스에 가미하여 드시는 것이라고 공허하게 말씀을 올림으로써, 아버지에 대한 어린 시절의 패배를 되돌릴 수 있었다.

저녁이면 갈치젓에 박힌 고추를 빼내기 위하여 통의 뚜껑을 연다. 딸은 냄새 때문에 밥 맛이 뚝 떨어진다고 한다. 아들 놈의 젓가락은 그 근처에 얼씬도 않는다. 그러는 놈들의 모습을 보면 나만이 그 고추를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몰래 몰래 신이 난다. 당신의 맛을 찾으시겠다던 아버지의 흐믓한 고민이 그 날들의 아버지의 저녁을 풍성하게 했을 것 같다.

아까운 고추를 통에 덜어 아버지께 갖다 드렸다. 아버지께서는 맛을 한번 보고는 “이것 아까워서 어떡하냐? 통 속에 고추가 줄어들면 언제 다시 이 맛을 볼까하는 걱정이 생기겠는 걸…” 하고 말씀하신다.

나도 병 속에 든 고추가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본다. 그 고추가 아까워서 간식초에 저린 고추를 꺼내 먹지만 그 맛은 싱겁고 가벼워 어쩔 수 없이 갈치젓 속의 고추를 두세개만 꺼내 먹는다. 고추의 꽁다리까지 씹어먹은 후, 올 가을에 또 설악산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일반 갈치속젓에 담은 고추는 갈치의 삭은 맛이 풋고추에 스며드는 것인 반면, 함께 삭아가는 것들의 맛은 함께 곰삭아 전혀 새롭거나 어느 맛이 어느 것의 맛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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