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밥상

세상의 모든 밥상은 거룩하다. 초라한 노동의 댓가이든 호화로운 성찬이든 더할 나위없이 성스럽다. 김치찌게가 풍기는 냄새와 뜸드는 밥 냄새는 나그네에게 고향을 추억하게 하며, 허기가 영혼보다 강하며, 생명이 온갖 선과 죄악을 초월하는 것임을 깨우친다.

날 것을 데워 부드럽게 하는 불의 마력과 썩을 것들을 삭혀서 맛으로 발효시켜가는 시간의 느리고 절묘한 화음들을 우리는 허기로 버무려 위와 장을 거쳐 뼈와 살 속 깊숙히 박아넣는다.

허기가 고통이라면, 밥을 씹어 삼키는 행위는 원초적 쾌락이다. 이러한 쾌락의 극을 찾아, 살고자 먹는 밥상에서 복어의 살 속에 든 극미량의 독을 맛보다가 죽기도 하고 옻닭을 먹거나 과매기를 먹다가 알레르기로 사경을 헤맬 수도 있다.

그러나 자주 밥상을 앞에 놓고 내일의 끼니를 기약할 수 없어 더없는 슬픔을 느끼거나, 삶의 노고에 울분을 삼키기도 한다. 좁은 밥상은 그러니까 위태롭기도 하며, 그것을 위하여 작업복을 입거나 넥타이를 매며, 때로는 어두운 골목에 화톳불을 피우고 오늘의 일거리를 찾는다.

우리는 밥상을 통하여 우리를 봉양하고 구제한 후에야 간신히 그것도 가까스로 신을 생각할 수 있기에 세상의 모든 밥상은 선과 악의 고향인 동시에 지극히 거룩하다.

Homo-Babiens

이빨이 상한 동물은 자연의 상태에서 더 이상 생존할 수가 없다. 그러나 오늘 나는 거룩한 밥상을 마주 대하고서 이빨이 또 아프다.

씹지 못하는 맛난 것들이 허무하고 딱딱하게 식도를 지나 밥통으로 떨어지는 저녁을 만나다.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truth 08.10.27. 15:24
    ..

    이류 08.10.27. 16:28
    Homo-Babience는 <밥 먹는 사람> 즉 식충이입니다. 도올이 Homo-Sapience-Sapience에 대하여 <몸이 있는 사람>으로 Homo-Momience라고 인간을 칭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은 밥 먹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Homo-Babience라고 했습니다.
    ┗ 지건 08.10.29. 18:08
    흥미 있게 잘 읽었습니다..이류님..김지하가 ‘밥’이라는 책을 썼는데…이른바 밥철학…호모 바비엔스….공감이 많이 가네요…근데 우리가 흔히 욕으로 먹는(?) 밥충이나 식충이로 보자면…호모 바비엔스에서 호모가 빠지는군요..그렇담..인간의 특징을 야물차게 잡아낸 표현보다는 먹고 사는 일에 매몰된 인간 삶의 현상에 좀더 집중된(그만큼 와 닿는)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이가 안 좋은 것에 저 역시 고생 하는 편인데….건강하시길 바랍니다.

    truth 08.10.27. 16:43
    네^^
    ┗ truth 08.10.27. 17:54
    ..
    ┗ truth 08.10.27. 18:02
    밥상..글을 읽는중에 길지않은 글이 아주 긴..내용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냥 주저앉아버리는군요.. 늘 좋은글..생각하게하는글..단정하고 분명한 멧세지에 감사를 드립니다.
    ┗ 이류 08.10.29. 00:16
    오랜 봉급생활에 남은 찌꺼기입니다. 밥은 몹시 중요하다는 것을 중년이 지나서야 알았으니 크게 어리석을 따름입니다.

    이류 08.10.27. 19:14
    이건 광장(자유게시판)에 가야 하는데…
    ┗ 다리우스 08.10.28. 23:04
    자유게시판으로 옮겨드립니다.^^
    ┗ 이류 08.10.29. 00:13
    고맙습니다.

    다리우스 08.10.28. 20:27
    혁명적입니다. 호모 바비엔스,,,그럼요 내장을 가졌으니 먹어야 살겠죠,~그리고 난 다음 우리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겠죠. 의미란 사실 여러질 이거나 차원이겠지만,,,
    ┗ 이류 08.10.29. 00:16
    라마님의 순수창자비판은 완성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 다리우스 08.10.29. 05:57
    문학관 어딘가에 라마님이 쓴 ‘밥을 위한 자료들’이라는 글도 있거든요~
    ┗ 이류 08.10.29. 12:58
    의미심장하더군요. 라마님의 글은 천천히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다양한 사안들을 종합한 글이라 일독으로 소화해내기가 어려워서 찬찬히 음미하며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유리알 유희 08.10.28. 21:20
    거룩한 밥상 차려 보고 싶은디 지금은 홀로이고 제 배는 포만감에 시달리고 잇슴다. 그러나 내일 딸아이가 돌아오면 거룩한 밥상을 차리고 싶군요. 후후.
    ┗ 이류 08.10.29. 00:18
    거룩한 밥상은 늘 가난한 밥상에 깃드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이 시간은 유희님께서 꿈길에 드실 시간… 안녕히…
    ┗ truth 08.10.29. 02:15
    아..따님이 내일 오는군요?^^ 사랑하는 분신이랑 행복한 식탁에 도란향내나는 대화꽃이 피어날듯해요. 얼마나 좋으실까..가을단풍도 보시고 딸아이도 맞으시고..^^ 참..유희님 저 질문하나있어요..후후..저거 무슨의미인가요? 저 정말 몰라서요..지난번 제 사진인가..릿플에도 후후가 있던데..그때 여쭤볼려다 말았는데 여기 또 후후가 있어요. 뭐..죠..?^^
    ┗ 유리알 유희 08.10.29. 09:33
    호호, 하하, 허허, 후후, 웃음소리, 느낌이 다 다른… 에구, 순진도 하셔라 ㅎㅎㅎ 루스님!
    ┗ truth 08.10.29. 13:16
    후후 웃음인건 아는데..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후후..왠지..웃음도 여러가지잖아요..그중에 후후는..
    ┗ 엘프 08.10.29. 14:42
    ㅋㅋㅋㅋㅋ 루쓰님 맞아요… 저 후후는 뭐랄까 좀 거만한듯 그리고 비웃는 듯한 데가 있었어요..ㅋㅋ^^
    ┗ 이류 08.10.29. 17:23
    저는 이빨이 아파 슬픈 심정으로 이 글을 썼는데, 웃음소리가 가득합니다.^^
    ┗ 체인징파트너 08.10.29. 18:49
    푸하하^^ …………..유희님의 후후……..는 …엘프님 어쩌시려구요…뒷감당을…^^

    전갈자리 08.10.29. 02:27
    나는 언어의 Homo ludens 가 다 되었습니다.
    ┗ 이류 08.10.29. 12:59
    호모 루덴스도 호모 바비엔스 이후에… 가 한가 싶습니다.
    ┗ 다리우스 08.10.29. 13:25
    그럼요 보통 밥을 먹고 나서 놀죠.^^ 헉~
    ┗ 지건 08.10.29. 18:13
    전갈자리님…언어의 호모 루덴스라면…혼자 놀기의 달인? 이신가요?..ㅋㅋ 호이징가가 말하는 루덴스의 놀이는 사회적인 놀이…참 놀이 아닌가 싶은데요…그렇담…전갈자리님의 언어의 호모루덴스라는 놀이에 함께 참여해 보고 싶습니다..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길 바라는 마음에서…^^(반갑습니다)

    체인징파트너 08.10.29. 18:59
    씹지 못하는 맛난 것들이 허무하고 딱딱하게 식도를 지나 밥통으로 떨어지는 저녁을 만나는 이류님이 조금 슬퍼보이네요 세상의 모든 밥상 그 거룩함을 버무리고 싶어라~! 한국인의 입맛에 맛게 빨간 고추장 풀고 적당한 양념으로 버무린 맛깔난 비빔밥이 생각나는 글입니다. ^^
    ┗ 이류 08.10.29. 19:12
    파트너님의 글을 보기 전에 저녁을 먹었더니 비빔밥 소리를 들어도 군침이 안돕니다^^.

    이류 08.10.29. 19:18
    아픔 때문에 결국 이빨을 뽑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돈이 없어서 인플란트도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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