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트먼을 죽음에 이르게 한 3분

단 3분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 있다. 그 3분이 자신의 인생의 행로를 완전히 뒤바꾸어 버린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던져서라도 뛰어들 수 밖에 없는 강렬한 유혹이 있다.

유혹은 다름아닌 헤어날 수 없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시골 청년 조지 이스트먼(M. 크리프트 분)이 안젤라(E. 테일러 분)에 대한 강렬한 사랑을 접어놓고,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아리스와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은, 그럴듯한 도덕적 명제이다.

이 <젊은이의 양지> 라는 영화 속의 3분은 그러한 도덕적 명제가 과연 조지라는 청년에게 타당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묻게 한다. 합리적인 이성에 입각하여 도덕적 명제에 따르기에는 군침을 삼키며 멀리서만 보아왔던 안젤라의 모습은 너무 황홀하고 지금 자신의 품 안에 있으며, 또 배운 것도 돈도 없는 자신을 향하여 아리따운 그녀는

“저도 사랑해요. 그래서 두려워요.              
                       …… 하지만 기분은 황홀해요.”

라고 그 감미로운 입술로 속삭이지 않는가?

조지에겐 임신을 빌미로 사랑하는 안젤라와 헤어지게 만들었기에 증오할 수 밖에 없는 아리스와의 불행하고 지루한 결혼생활을 보내는 것과 단 한번의 죄악, 즉 아리스를 죽임으로써 사랑하는 안젤라와의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 두갈래가 있다면…

나는 감히 도덕적인 앞의 길을 택함으로써 불행하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인간은 합리적이기 보다 몹시 충동적이며, 그 충동에 이성의 교활함을 섞어 자신의 욕망을 불태우려 하기 때문이다. 때론 죄악이 훨씬 더 인간적일 때도 있는 것이다.

나는 조지에게 말할 것이다.

“3분이라는 시간은 때론 영원보다도 길며, 한 사람의 생명보다도 큰 값어치를 지닐 수도 있다. 그러니 그 시간동안의 사랑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라고…

비록 조지 이스트먼이 아리스를 호수에 빠트려 죽였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당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영화의 장면을 보면 서로의 사랑을 고백한 연인들이 달콤한 기쁨에 빠져있기보다, 두려움에 휩쌓여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사랑의 장면은 암울하다.

키스하기 바로 직전의 이들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오! 안젤라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 표현할 수 없오
모든 것을 당신에게 말할 수 있었으면…

엄마에게 말해요.
엄마에게 모두…

왜 안젤라는 그 모든 것을 자신이 아닌 조지의 엄마에게 말하라고 했을 까? 그리고 조지가 안젤라에게 말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던가?

젊은이의 양지 그 3분간…

참고> A Place In The Sun

This Post Has 2 Comments

  1. 클리티에

    요즘 고전영화가 많이 땡깁니다. 젊은이의 양지도, 봐야할 목록에 넣어야겠어요.

  2. 旅인

    20세기의 가장 아름다운 배우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찍은 영화, 20세기의 가장 우울한 배우가 죽기 전에 남긴 영화로 두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명화가 되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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