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속의 낱말들

다시 莊子를 읽으며 낱말을 낚는다. 그 낱말들을 보며 허약한 나의 인지능력을 탓하게 될 때도 있다.

망량(罔兩)은 그림자의 그림자라고 한다.

낮에 담배를 피우러 나가 그림자를 보니 그림자의 주변에 희미하게 그늘이 보인다. 아마 뎃생을 한다면 이 망량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자 각각을 본다면 그림자와 빛의 사이에 실금처럼 인식되는 윤곽선을 망량이라고 할 수 있다. 늘 보던 그림자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다.

나의 조그만 국어사전에는 이 망량과 딱 맞아 떨어지는 단어는 없다.

국어사전에 나오는 망량은 도깨비다. 도깨비는 이매와 망량이 있는 데, 이매는 사람을 해치는 나쁜 도깨비이며, 망량은 산과 물의 정기가 어리어 된 도깨비다. 한마디로 수풀의 요정 쯤 될 것 같다. 한자로는 이(鬼+?), 매(鬼+未), 망(鬼+罔), 량(鬼+兩)이다. 그러니까 망량은 깊은 숲 속에 어린 그림자의 그림자가 뭉쳐서 된 도깨비일지도 모른다.

또한 장자가 직접 쓰지 않은 편 중에서 가장 압권이라는 추수(秋水)의 뜻은 가을 물이다. 늦가을이 되면 산과 나무, 바위들이 겨울에 얼지 않기 위하여 간직하고 있던 물을 덜어냄에 따라 비도 오지 않는 데 갑자기 개울과 강물이 늘어나는 현상을 추수라고 한다.

이 낱말의 뜻을 알고서야 늦가을 개울물이 불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고, 無情의 것들이 세월을 나는 슬기를 알 수 있었다.

장주는 은나라 유민의 나라인 宋나라 사람이다. 제정일치의 은나라를 주가 멸하고 봉건고대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종교를 표백해감에 따라 인문적인 전통은 증대된 반면, 신화는 희미해진 나라다. 그래서 무미건조하다.

장주는 조궤한 초나라의 도덕경과 열어구의 책에 송의 신화를 뒤섞어 장자를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장주는 우언으로 가득하여 재미가 있으며, 코믹하지만 명상적인 사유들로 가득하다.

장자의 내편은 장주가 직접 썼을 것으로 학계에서는 판단을 하며, 외편과 잡편은 다른 이들이 썼는 데, 문인들이 쓴 것은 적통에 가깝다고 보고 있으며, 비록 문인은 아니지만 장자의 진의를 나타냈다고 보는 가탁들과 후대의 위작으로 보는 구분이 있다.

그래서 장자는 내편을 열심히 읽고, 외잡편은 소요하듯 읽어야 한다.

<참고: 장자의 작자들에 따른 구분>

진저: (내편) 소요유, 제물론, 양생주, 인간세, 덕충부, 대종사, 응제왕
문인: (외편) 추수, 달생, 산목, 전자방, 지북유, (잡편) 우언, 천하
가탁: (외편) 천운, 지락, (잡편) 서무귀, 즉양, 외물, 열어구
위작: (외편) 변모, 마제, 거협, 재유, 천지, 천도, 각의, 선성, (잡편) 경상초, 양왕, 도척, 설검, 어부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다리우스 08.12.28. 16:19
    장자는 관찰력도 세심하고 더러 난해 한 듯 합니다.^^ 그림이 압권입니다.
    ┗ 旅인 08.12.28. 18:32
    아마 고대에는 현대보다 자연의 현상에 더욱 민감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흘려버리는 것들을 찾아내고 거기에 이름을 붙이곤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낱말들이 장자의 남화진경에서 의인화되어 지금에 전해졌겠지요. 그런데 그런 단어들이 좋습니다.

    러시아황녀 08.12.29. 10:03
    그래서 망량이 그림자를 나무란다는 말이 있지요..겨우 그림자 뒤에 나 서야 보이는 망량이 제 앞에 그림자를 나무란다고요..그러나 저는 가끔 망량처럼 천방지축을 모를 때가 더 좋았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습니다..직접 망량을 보려고 한 실험 정신에 박수를..그저 그런 것이 있구나로 배운 제가 부끄럽습니다.. 알음알이(지식)을 가지고 세상을 알 수는 없지요.. 인간은 난해 하고 ..세상도 난해 하고..문학은 더욱 난해 하고..
    ┗ 旅인 08.12.28. 20:23
    그런 격언이 있었던 모양이네요. 이 구절이 망량이 그림자 나무라는 구절이네요.^^
    ┗ 러시아황녀 08.12.28. 21:01
    하 참! 어쩌다가 이런 답글이 나와 가지고.. 이런 점이 바로 제 약점입니다..용서하시기를…^^*
    ┗ 旅인 08.12.28. 21:06
    아닙니다. 전혀 생소하지 않아서… 아 그렇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황녀님이 이리 말씀하시니 갑자기 제 꼬리가…^^

    유리알 유희 08.12.28. 22:50
    아, 유희는 배웁니다. 망량, 그림자의 그림자, 그것이 참으로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오늘 따라 레테가 더욱더 소중한 공간이 됩니다. ㅎㅎ
    ┗ 旅인 08.12.29. 09:18
    장자에서 단어들을 낚시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산골아이 08.12.29. 02:20
    그림자처럼 짙은 그늘과 망량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몸부림치는 나의 고뇌여!
    ┗ 旅인 08.12.29. 09:22
    그렇네요. 우리들 생활이 즐거움인지 아닌지 괴로움인지 아닌지 잘 모르는 것처럼 말이죠. 아니면 망량의 주인의 주인의 주인인 조물주의 뜻을 모르는 것처럼…

    더불어숲 08.12.30. 01:22
    어쩌면 그림자의 그림자인 망량의 실체는 우리 인간들의 마음속에 도사린 욕망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旅인 08.12.30. 09:53
    예! 어쩌면 진정한 욕망도 아닌 아니면 타자의 욕망의 그림자일지도 모르죠.

    집시바이올린 08.12.31. 03:12
    그림도 여인님이 직접 그리신 줄 알았어요 배우고 갑니다.^^ 모르고 있었던 부분을…
    ┗ 旅인 08.12.31. 11:21
    저 정도만 그렸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단어들이 지닌 기능 중의 하나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모르면 느끼는 것도 없다라는…

    꿈처럼 09.01.06. 13:02
    망량 하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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