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 모아 태산이라고오??

가죽고리…

저는 하루에 천원씩 꼬박꼬박 돼지 저금통에 저금한답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여러분은 저금 얼마나 하세요?

나…

아주 오래된 이야기인데 말이야……

지저분하게도 내 최초의 Overeat(오바이트)한 이야기. 그것이 이 놈의 티끌모아 태산하고 관계가 있지.

내가 몇번 이야기했지만 나의 주력(酒歷)은 길어. 국민학교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그리고 또 변두리의 시쭈구리한 고등학교를 다니다 보니, 학교 주변에 작부집, 니나노집, 선술집, 색시집, 갈보집, 이런 것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지. 아침 등교길에는 과음 끝에 토해논 것들과 무전취주한 손님과 술집 여자의 쌍시옷으로 터져나오는 옥신각신 대화가 골목에 질펀했고, 한낮이면 산능성이 집들의 지붕과 옥상에는 술집 아가씨들의 속옷들이 깃발처럼 나부끼곤 했어. 나는 그것을 보면서 유치환의 시를 생각했지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이 깃발이라는 시가 빨랫줄에 널린 사랑에 속고 돈에 우는 술집 아가씨들의 낡은 빤쓰와 너덜한 브래지어들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 지는 <소리없는 아우성>, <노스탤지어>, <순정>, <애수>, <슬프고 애달픈 마음>이라는 시에 나온 뽕짝적 단어와 술집 아가씨들의 사연을 오버랩시켜 보면 즉각 이해할 수 있지 않아?

그러니까 고등학교 국어선생이 청마의 시상(詩想)이 어쩌고 저쩌고 한 것은 다 헛소리란 이야기지.

그런데 그 골목을 벗어나 큰 길로 나가면 맞은 편에는 여자대학이 있었고 거기는 한마디로 미니스커트를 입은 말같은 처녀들이 하얀 잇빨을 살짝 드러내며 조용히 미소짓는 세상이었지.

나는 말씀이야, 삶의 애환 같은 걸 느끼는 것을 좋아했거든. 그래서 의상실과 미용실로 비까 번쩍한 쪽 보다는 구정물과 욕지거리와 젓가락 소리에 뒤섞여 唱歌가 울려퍼지는 골목을 따라 집으로 가기를 좋아했어. 그러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은밀한(그래서 선생들에게 들키지 않을) 선술집을 찾아냈고, 고삼의 스트레스를 일주일에 한번 정도 친구들과 막걸리를 마시는 것으로 풀곤 했지.

그러나 다 酒道라는 것이 있어서 이취할 정도는 아니라, 단지 고삼이라는 중압감을 잠시 완화시켜줄 정도, 친구와 인생이라는 것을 이야기할 정도, 문학과 사랑이라는 아무 짝에도 쓸 건덕지가 없는 것에 대하여 지껄이며 폼을 잡을 수 있는 정도에서 그치곤 했지. 그리고 막걸리는 깊고 은은한 술이며, 낮잠을 자다깬 각성과 같이 세상이 아득하게 보이게 하는 오묘한 매력이 있는 술이지.

가죽고리… 오늘의 주제는 이것이 아니란 걸 나도 알아. 티끌 모으면 먼지. 아참! 태산이라는 것에 관한 이야기였지?

이제부터 티끌 모으면 먼지가 된다는 나의 경험을 말할까 해.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매달 저금이란 것을 했지. 약간의 강제도 뒤따랐고, 열심히 적금을 들면 대학교 등록금에 도움이 된다는 말도 했었지. 하지만 등록금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적금을 든 것은 아니었어. 고일에게는 대학이란 것이 까마득했거든. 그렇지만 몇백원씩 적금을 들었지. 몇백원이라고 우습게 보진 마. 당시 삼중당 문고 한권이 삼백원이었고, 내가 대학에 들어간 해 봄의 커피값은 오십원이었어. 그 해 크리스마스 때엔 삼백원이 되었지만 말이야. 좌우지간 우리는 적금을 들었어. 그리고 졸업식 때가 되었지.

그 날 학교에서 내 손에 쥐어 준 적금액은 물경 팔천원이었어. 대학 등록금은 이십만원 쯤. 등록금에 보탬이 된다는 말은 완전히 사기가 되어버렸고, 본 고사가 기다리고 있던 우리에겐 대학 등록금 고지서를 받아보는 것이 하나의 꿈이었어.

졸업식이 끝난 후 친구들이 모였어. 학교다니다 짤린 놈, 예비고사 떨어진 놈, 지방에 간신히 턱걸이 한 놈, 성적 형편없이 나온 놈, 본고사 봐 봤자 나처럼 뻔한 놈 등등의 앞 날이 누래보이는 놈들이 모인거지.

그때 적금이라곤 별로 안한 놈이 자신의 적금 삼천원을 내놓으며 말했어.

“돈도 얼마 안되고, 졸업도 했고, 마음도 울쩍하니까… 오늘 받은 적금들 내. 오늘 교복 단추 떼고 호주머니 찢고 개같이 한번 마셔보는 거야.”

놈들은 좋다고 했고, 팔천원이라는 나의 적금을 선뜻 내놓기에 형평성의 원리에 저촉이 된다는 치사한 생각을 했지만, 우정이라는 대의를 위하여 기꺼이 헌납을 하고 우리는 중국집에서 백알 도쿠리에서 시작하여, 막걸리, 소주, 술에 포도물 들인 것 같은 포도주와 구멍가게의 구석에서 삼년치 먼지들 속에서 서서히 발효된 샴페인, 고량주 등등을 먹어가며 학교 근처를 배회하다가 결국 큰 길 건너편의 여자대학 정문 앞에서 개처럼 짖어대다가 돈이 떨어져 집으로 돌아갔지.

허무하더군. 참으로 허무하더군. 호주머니에 팍팍 접어 질러넣었던 마분지에 인쇄된 졸업장을 방바닥에 집어던졌을 때, 또 허무하더군. 그것을 집어들어 펴보니 내 이름이 적혀있고 졸업했다고 쓰여 있더라고. 그런데 남은 것은 벗어 내팽개친 교복 껍데기 밖에 없고, 짤랑짤랑 동전 몇닢. 그러나 앞 날에 대한 아무런 기약도 없었어.

에이 빌어먹을! 하고 자려고 누웠지.

그러자 방바닥이 덜컹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어. 마치 지진처럼. 그러더니 이 놈의 미친 바닥이 좌우로도 흔들리더라고. 술김이라 나는 죽든 살든 버텨보자고 눈을 꼭감고 버텼지. 그랬더니 이 놈의 바닥이 출렁거리더군. 할 수 없어서 나는 일어섰어. 그랬더니 방바닥은 그대로 있는 데 내 배가 세탁기처럼 좌로 우로 돌더군. 그러더니 머리도 돌고 눈알도 도는 거야.

정신을 차리려 마당으로 나갔지. 그리고 하늘을 보았어. 무수한 별들이 원을 그리며 질주를 했고, 나는 그만 대지를 향해 최초의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지. 우엑! 우엑!

그러니까 티끌모아 태산이 된 것이 아니라 먼지가 되었고,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린 거야.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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