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글들의 알레프

어제는 밤새 내린 눈으로 소복하게 날이 밝았고, 딸애와 딸애의 친구를 데리고 영화관엘 갔다. 그리고 아이들이 먹어야 할 오징어 구이를 극장의 어둠 속에서 홀랑 다 먹어버렸다.

아이들은 맨입으로 영화를 보고, 나는 잠시 졸았다.

영화는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이다. 아이들이 보기에는 위험하고 추악한 영화이다. 아이들은 재미있다고 했지만, 오징어를 다 먹은 나는 입이 쓰다.

톨킨은 자신의 아이들을 위하여 <반지의 제왕>을 썼다고 한다. 이 환타지 소설과 영화에는 권력에 대한 욕망과 그에 끌려가는 나약한 주인공의 강력한 의지와 절대악에 대한 불굴의 선함이 내적 갈등을 통하여 끊임없이 표출되고 있어 끔찍한 장면들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보기에는 훌륭한 영화이다.

반면에 조앤 K 롤링은 돈을 벌기 위하여 <해리 포터>를 썼다. 그래서 흥미진진할 뿐이다. 해리 포터란 꼬마 마법사에겐 선에 대한 의지란 결핍되어 있으며, 늘 경쟁이란 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주위에 포진한 등장인물들에게선 몇몇을 빼놓고 우정같은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 호그와트는 사악한 마법사들이 주변을 배회하는 무시무시한 함정으로 가득한 놀이터에 불과하며, 그 학교를 다니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물론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야 할 아이들에게 아무도 믿지 말라는 불신을 가르치기 위하여 이 영화는 필요한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환타지로 찬란한 이 영화를 통하여 불신을 가르친다는 것은 아이들의 오징어를 다 빼앗아 먹는 것보다 더 나쁘다.

영화를 다 본 아이들에게 정크푸드를 사 먹이고, 집으로 와서 홀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리고 시를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흉내는 낼 수 있어도 결코 쓰지 못하리란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러나 화엄일승법계도에 대한 새로운 해석(狂譯)을 위하여 노래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은 간절하다.

오늘 아침에는 온몸을 뚤뚤 말고 출근을 하면서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어제 하루종일 바라만 보았던 안부게시글과 또 다른 게시글에 덧글을 달았다.

아침에 변기에 앉아 음악도, 미술도, 예술도 지식적으로 평가하고 헛소리를 늘어놓기 위하여 즐기지도 않으면서 듣고 보고 감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에 빠져들었고, 그 아름다운 것들을 자신이 창조하거나 감상하는 데, 어떤 느낌에 잦아들었던가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제서야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연주하고, 뭣인가를 만드는 것들이 괴로움과 기쁨이 교차하는 것이란 생각에 안부게시판에 글을 올려주신 분이 부러웠다.

그리고 오후에는 <미린다왕문경>이 불현듯 떠올랐다. 기원전 150년경 그리스인 메난드로스(인도명 미린다)왕과 불교교단의 장로 나가세나의 대화.

그 둘은 처음 만나 최초의 대화를 나눈 후 메난드로스왕은 나가세나에게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 있는 나가세나는 어떤 자 입니까? 존자여, 당신은 ‘나가세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실이 아닌 거짓을 말씀하였습니다.”라고 벽에 부딪힌 그리스의 사유는 절규한다.

피스티스(믿음)의 사람이기를 바랬지만, 내가 그노시안일 뿐이라는 것을 나이 스물에 알아버렸던 것이다.

미린다왕문경을 사기 위하여 교보에 갔다가 그와 함께 보르헤스의 책을 또 한권 샀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그 책에 나오는 <알레프>라는 단편을 읽었다. 그리고 <알레프>의 앞 쪽에 <자히르>라는 단편이 보였다.

보르헤스는 자신이 <알레프>를 체험한 듯 그리고 있다. 그러나 <알레프>는 결코 <나>라는 주체로서는 감당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님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아마 <알레프>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단지 온 우주의 진리에 대하여 수신할 수 있는 상태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알레프>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글에선가 보르헤스가 <알레프>의 영감을 얻은 곳은 <화엄경>이라고 한다. 부처님이 정각을 얻은 그 때 그 자리에 온 우주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와 존재했던 것과 존재하는 것과 존재할 것이 함께 하며 앞과 뒤가 없으며 시간은 겹쳐지고 그 모든 것이 부처님의 몸 안에 깃든 그러한 화장세계가 바로 <알레프>가 아닌가 싶다. 바로 모든 공간과 모든 시간의 뭉쳐진 상태.

“그때 나는 알레프를 보았다. … 그 거대한 순간에 나는 수백만 가지의 황홀하거나 잔혹한 장면들을 보았다. 정말 놀라운 일은, 그 많은 장면들이 한 점에서 보이는데도, 서로 겹쳐지지도 않고, 투명한 실루엣으로 보이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내가 본 것은 한 번에 보았는데, 글로 쓰자니 이렇게 하나하나 나열할 수 밖에 없다. … 알레프의 직경은 2~3센티미터밖에 안 되지만, 우주 전 공간이 축소되지 않고 거기 있었다. 각각의 사물의 갯수는 무한했는데, 왜냐하면 (거울에 비친 달이 복수가 되는 것처럼) 나는 우주의 모든 지점에서 그것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 나는 내 얼굴과 내장을 보았으며, 너의 얼굴을 보았다. 나는 현기증이 나서 울고 말았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그 이름을 남용하지만 결코 본 일이 없는 玄玄한 가상의 대상, 즉 불가해한 우주를 내 두 눈이 보았기 때문이다.”

This Post Has 2 Comments

  1. 흰돌고래

    학창시절 해리포터를 참 재미나게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
    여인님의 글을 읽고 보니 해리포터를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되네요.
    띄엄 띄엄 출간되는 바람에 결말은 아직 모르고 있답니다. 다시 보게 될 일도 없을 것 같구요.

    여인님의 법성계에 대한 해석이 예술성을 띄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유가 있었네요.
    어떤 간절함…
    보르헤스의 <알레프>라는 책도 읽어보고 싶어 집니다.

    1. 旅인

      순례자를 쓴 파울로 코엘료가 보르헤스의 알레프에 나오는 제목들을 빌려 자신의 소설을 쓰곤 합니다. 오 자히르, 알레프 등 아마 보르헤스의 단편소설집 이름은 알렙일 겁니다. 보르헤스는 움베르트 에코도 그의 ‘장미의 이름’을 쓸 때 그의 소설들을 참고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파타피직한 환상소설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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