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하여 오래된 집 옆에서

어떤 경우 그 도시의 정체를 도무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도시가 어디에서 시작하는 지, 어디가 도심이며, 어디에서 사람들이 잠을 자며, 어디에서 일하는 지, 이런 것들이 얽히고 포개져서 어떻게 그 도시를 인수분해해야 하는 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만 드디어 그 도시의 생활의 질서와 구획들을 차례로 이해할 수 있는 곳, 그 곳이 <이름하여 오래 된 집(名古屋)>이라는 <나고야>이다.

나는 1박2일로 여기에 왔고, 세토모노라는 도자기로 유명한 아이치현의 세토(瀨戶)에 있는 고객을 방문하고 상담을 마쳤을 때, 이미 7시, 날은 저물었다. 우리는 세또의 어둔 골목에 있는 야키니쿠집에서 한국식의 등심, 갈비와 곱창까지 먹고 나고야로 돌아왔을 땐 10시 30분. 맥주나 한 잔 할까 하던 나를 李는 자신이 잘 아는 한국 가라오케로 이끌고 간다.

술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밝은 그 안에는 몇몇의 남자 – 일본인, 교포, 그리고 우리 – 가 있었고 많은 아가씨들이 있었다.

우리 두사람 주위로 다섯명 쯤의 아가씨들이 몰려왔고 마마상, 그리고 미스강 어쩌고 저쩌고 하면 한 열명 쯤의 아가씨가 퍼질러 앉거나 지나갔는 데, 모두가 나에게 일본말로 인사를 한다. 나는 조용하게 그들의 인사에 응대를 했고 내 입에서 <안녕하세요?>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한국분이세요?>라고 한 후 <전 꼭 일본 사람인 줄 알았어요.>라고들 말한다.

나의 얼굴은 이 도시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얼굴인가?

홍콩에서는 사람들이 두리번거리다가 나에게 와서 길을 묻곤 했고, 필리핀에서는 자기들과 비슷하다고 하더니, 일본에서는 한국여자가 자신의 나라에서 온 사람에게 알아 먹지도 못할 일본 말로 인사를 하다니… 좋게 생각하기로 하자, 나의 얼굴은 모든 아시안의 원초적인 모형이라고…

홀은 밝았지만 밖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나고야라는 도시는 어둠 속에 좁은 길 가로 히라와 가다가나와 한문으로 뒤섞인 붉고 산뜻한 색채의 광고판 속에 졸고, 감기 때문인지 몰라도 도시에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 간 돌아본 증에 특유의 냄새를 가지지 않은 도시란 없었다. 모든 도시는 부패하고 있기 때문에 썩은 냄새와 음식의 향료에 들뜨고 뒤섞이고 또 그 속을 지나는 사람들의 향수와 지분냄새들로 감쌓이게 마련이었으나 이 도시에는 아무런 냄새도 없었고 가을의 햇빛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극명하게 밝았다.

이 도시가 불가해한 이유는 오래되고 묵은 탓일지도 모른다. 주택과 골목과 도로와 상점과 사무실이 오랜 시간동안 얽히고 섥히면서 서로가 서로를 침해하지 않기로 하며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외양을 개선해 나간 결과, 혼잡이 오랜된 시간 속에 숙성되어 질서로 변모한 결과, 객지에서 잠시 흘러든 나같은 이방인에게는 불가해한 것으로 보인 것이다.

“저 어저께 결혼했어요. 아직 스물네살인 데 결혼을 했어요.”

뜬굼없이 여자가 말했다. 그것도 술집에 나오는 여자가, 그것도 손님에게, 자신이 유부녀라는 이야기를 털어놓는 저의는 무엇인가?

“그래서 저는 슬퍼요.”
“아니 왜?”
“집에서는 제가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줄 알아요. 그리고 학생 비자도 기간이 끝나서 야마구치 구미의 어깨와 같은 덩치가 크고 무섭게 생긴 남자와 어제 결혼을 했어요.”
“위장결혼?”
“네!”
“그래도 한국의 주민등록중에는 빨간 줄은 안가니까… 돌아가서 남자를 만나서 진짜로 결혼을 하면 되겠네.”
“그런데 전 한국사람이 아니라 그만 일본년이 되어버리고 만거예요. 이제 제 주민등록증은 말소가 되었고, 이 사실을 집에서 알면 난리가 날거예요.”
“그러면 그러한 서글픈 결혼을 위하여 한잔!”

또 내 옆에 앉은 열아홉살이라는 아가씨는 자신이 집도 잘 살고, 한국에선 좋은 대학을 다니다가 여기에 유학을 간다고 왔다면서 이제 일주일되었다고 한다.

“저 비밀인데요. 비자가 끝날 삼개월 쯤 후에는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는 안돌아 올꺼예요.”

아직도 살이 더 올라야 할 가냘픈 소녀의 얼굴은 약간의 우수와 그 속에 웃음이 겹쳐져 있었지만 입 끝이 열려져 있어 그 곳으로 침과 말이 새어버리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소녀도 스물 몇 살이 되는 날, 어느 조폭같은 남자의 호적에 자신의 이름을 삼십만엔을 주고 올림으로써 그냥 일본여자가 되고 말 것이라는 약간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고야 말았다.

최소한 그토록 아리따운 여자들이 흘러들어온 이 곳에서 박힌 돌로 변화되는 것, 그것은 모든 혈연이 단절되고 홀로 되는 것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그들이 그 길을 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우리나라가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도 깃들기가 숨가쁘다는 반증이 아닐른지?

아무튼 꽃다운 아가씨가 꽃다운 나이에 현해탄을 건너 조상의 정조를 징발하고 수탈한 이곳에서, 하얗게 분을 바르고 떠돌이 남자를 기다리는 밤은 새벽 한시였고, 우리는 사단병력처럼 많은 여자를 이끌고 술집을 나서서 나고야의 뒷골목을 걸어서, 우동집에서 밤참을 먹은 후 헤어졌다.

그리고 오늘 아침, 다시 시내에 있는 거래선을 방문한 후, 물경 사천백엔이나 하는 점심을 먹고 공항에서 일본책이나 골라 봐야 겠다고 일찍 공항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공항에는 서점이 없었고, 면세점에서 호주머니에 남아있는 일본돈을 탈탈 털어 산 담배를 어디엔가 빠트려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비행기의 옆자리에 탄 월남인이 나에게 일본말로 말을 건다. 나는 영어로 대답한다. 그러나 월남인은 자꾸 일본말로 뭐라 한다. 알고 보니 그는 인천공항에서 하노이로 가는 비행기를 바꿔 타야 했고 그것이 몹시 불안하여 나에게 뭔가 물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나는 내가 아는 일본말로 간신히 간신히 그를 안심시켰으나 그가 잘 비행기를 갈아 탔는 지는 잘 모르겠다.

이륙하는 비행기에서 본 석양이 아름다웠다.

—– 나고야로 가는 길에 —–

감기약을 먹고 나고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졸고 있을 때 승무원인지 승객인지 모를 사람이 나를 깨웠다. 깜짝 놀라 깨어난 나에게 차갑고 맛없는 빵이 제공되었다. 속으로 투덜대며 그것을 씹어먹은 후 다시 잠. 짧은 잠 속에 어디쯤 왔을까 하고 눈을 떴을 때 바다(혹시 호수일수도 있음)와 산이 섞이고 있었다. 이미 비행기는 저공으로 날고 있어서 산이 손에 잡힐 듯 했다. 산을 스쳐 지나자 바다까지 광활한 평야가 펼쳐졌고 평야에는 자로 잰 듯한 장방형의 논이 길게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수풀과 논과 길들이 머리의 가위질 자리처럼 또렷하게 잘라져 흐트러지지 않았다. 일본의 특성은 사람과 제품과 자연 어디에나 삼투되어 있는 것 같았다.

만화 <이웃집 토토로>를 보았을 때, 일본의 땅이 저렇게 넓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은 잘못이었음을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평야를 보고서 시인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일본이 대국이 된 배경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평야와 강과 산이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삼천미터의 상공에서 이해했다.

그리고 바다로 밀려간 비행기가 다시 중부공항으로 내려앉기 위하여 선회할 때, 내륙과 점점이 떠있는 섬들이 이제 사라지려 하는 바다 안개에 감쌓여 있었고 그 속으로 아침 열시의 햇빛이 스며들면서 온갖 물상들이 빛과 그림자로 발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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