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시월에

1981년 10월 28일에…

음악개론 레포트 제출이라고 시작한 일기는 일곱 쪽이나 나아간 후 사진의 글이 별도로 일기장에 풀로 붙여져 있었다. 일기를 읽어보니 그 날은 대단한 날이었던 것 같다. 연애에 실패한 남자가 연애에 실패할 지도 모르는 남자에게 예언자처럼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으며, 드디어 자신을 떠나갔던 여자가 다른 남자와 함께 노란 은행잎이 지고 있는 경복궁의 한쪽 모서리에 있는 찻집에서 다정스럽게 앉아 있는 것을 보았고 드디어 지나간 사랑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깨닫는다는 이야기였다.

어제 하루종일 책들과 씨름을 했다. 오늘 책꽂이가 들어오기로 되어 있었기에 간만에 책을 정리했다. 그러나 몇권의 책이 보이지 않았다. 황제내경이 분명 두 권이나 있었는 데 한 권도 보이지 않는다. 광에서 꺼낸 책은 일부 곰팡이가 슬었다. 버릴 책을 정리하고 분류가 끝났을 때는 자정이 넘었다. 책의 권수를 새어보니 사백권 밖에 되질 않는다. 이것 저것 허접한 책들을 다 포함한다고 하여도 오백권쯤? 그간에 아무리 책을 많이 내다버렸다고 하여도 천오백권 쯤 되리라고 생각했고, 계산 상으로도 그렇게 나왔다. 그만큼 생각과 사실 사이에는 갭이 있는 셈이다. 이렇게 현격한 차이가 나는 데는 소설책이 한몫을 할 것이다. 새어보니 소설책은 한 오십권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최근 몇년에 걸쳐 읽은 소설책이라곤 김훈의 소설과 몇편의 영문소설, 태백산맥, 삼국지가 다 아니던가? 소설책보다 다른 책들이 더 재미있으니 소설을 읽을 이유란 별로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위의 글은 광에 쳐박아두었던 일기장에서 나왔다. ‘81.8.29일에 시작하여 ‘90.5.8일에 끝나 있었다. 일기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번도 읽어볼 생각을 하진 않았다. 그 내용이 너무 뻔하리란 생각 때문에 다시 읽어볼 가치를 전혀 느끼질 못했다. 그 세월동안 나는 나에게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그저 일상에 매몰되어 있었다고, 그래서 추억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기장을 펼쳐 읽어본 결과, 그것은 사실이었다.

사람에게는 발정기가 없다고 한다. 육체적인 발정기는 사라져 버렸을 지 몰라도, 머리는 늘 발정기를 추억한다. 그러니까 십년에 걸친 일기장 속에는 지나간 사랑들로 가득했다. 반면 일기를 쓸 당시에 만나던 사람에 대해서는 한두 줄이면 끝났다. 그러니까 지나간 사랑이 늘 현재의 사랑의 발을 밟고 있었다. 그것은 발정기가 끝나버렸고, 그래서 현재 만나는 사람에게 보다 객관적일 수 있었던 탓인지도 모른다.

추억함으로써 추해지는 것은 현실이다. 반면 비루해진 현실은 과거를 더욱 아름답게 치장한다. 일기장 속에 조차 그 발정기는 아름답다고 쓰여 있기는 했지만, 지금 추억하는 과거보다 사실에 더욱 근접하고 있다. 일기에는 새가 날아가는 광경을 보고 “저 새들도 사랑을 할 수 있는가?”라는 반문의 끝에 홀연히 사랑의 위대함을 깨닫게 되고 사랑에 항복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일기장을 보자 까맣게 잊었던 것이 뚜렷하게 기억났다. 경복궁의 건춘문 위 민속박물관 쪽에 <다원>이라는 목조건물의 통창으로 된 찻집이 있었다는 것과 거기에서 멋진 남자와 함께 앉아 있던 그녀를 보았고 또 용두동에서 청계천으로 접어드는 길 가에서 갑자기 새들이 비상하는 모습 등이 뚜렷하게 생각난다.

추억함으로써 추해지는 것이 현실이라도, 현실에서 가치를 느끼지 못할 때 술에 취하거나 아니면 추억에 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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