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유소유

호주머니가 불룩하다. 그 안에 든 것들을 추억해 보면 지갑과 몇 자 쓰여지지 않은 수첩, 손수건과 060과 카드회사의 전화 밖에 오지 않는 핸드폰과 담배와 MP3, 이어폰 줄과 거기에 꼬여있는 라이터, 만년필과 명함집, 지갑을 열어보면 카드와 계산서와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사이에 돈이 말라비틀어지고 있다. 그리고 지갑에서 멀어진 몇 장의 천원짜리와 가을바람에 짤랑거리는 동전 몇닢. 90% 이상의 無用에 잠자는 之物들. 이와 같이 많은 것을 지닌 나는 그리고도 가방을 들고 회사를 다닌다. 거기에는 신문과 중국어 교습 독본, 기타 등등의 읽을 것, 디카와 집의 열쇠와 우산과 휴지와 종이쪼가리, 때론 세상의 열기를 물리칠 쥘부채마저 들어있기도 하다.

세상과의 혈연의 무게가 이처럼 두툼하고 난잡하여도, 세상의 변경에 서서 나는 소리치지 못한다. 그 무게와 잡다함들로 인하여 정박해 있고 더 많은 것을 모든 주머니와 가방에 퍼 담고 주체할 수 없는 무게로 세파에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 有所有! 나는 도시의 유리창에 반사되는 初秋의 陽光에 자란 것, 자유는 금분을 칠한 카드 위에 반짝이고 지갑의 무게는 가슴 속에 자라며, 호주머니에 든 것들로 무릎이 휘청거릴수록 나의 대지가 보다 단단하다는 것을 실감하는 이 세상의 四寸. 그리하여 소유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밤을 함께 지샐 친구와 가을이 왔다고 전화를 걸 애인과 그리운 사람들의 흔적은 가슴 속에 텅 비어 있다.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다리우스 08.12.18. 15:52
    헉 중귁어 교본! ^^ 본의아니게 들여다 보게됩니다.
    ┗ 旅인 08.12.18. 16:26
    2년 배우고 6개월 만에 홀랑 다 까먹어버렸지요.
    ┗ 다리우스 08.12.18. 16:57
    전 히브리어 4년 배우고 3개월만에 홀랑~ㅜㅜ

    유리알 유희 08.12.18. 16:00
    아담한 유소유십니다. 후후
    ┗ 旅인 08.12.18. 16:27
    도시락이 없어서요?

    샤론 08.12.18. 18:58
    여인님의 소유를 들어다 보게 되서 재미있어요..소유물만 봐도 무척 바쁘게 사는모습이 느껴집니다..난 가방에 지갑. 차열쇠. 휴지. 작은 거울 ..루즈 하나..이젠 없네요..아,,전자사전 ,,아직 영어의 왕초보이기때문에 미국인 만날때는 전자사전이 꼭 필요하답니다..
    ┗ 旅인 08.12.19. 09:40
    예전에 공부 못하는 놈이 도시락은 두개, 영어사전 에쎈스 두꺼운 것, 그리고 종합영어, 수학의 정석을 집어넣고 다니면서 꼭 밥만 먹고 사전 한번 펼치지 않는다고, 제 꼴이 딱 그렇습니다. 지하철에서 좀 보자고 하지만 졸기만 하죠.
    ┗ 샤론 08.12.19. 18:35
    그런데 중국어 반학기 들어보았더니 상당 어렵던데 잘 되세요? 워 아이 니? 이게 무슨 뜻이었는지 헷갈리는데 이 말만 생각나네요. 20년전 일이네요.
    ┗ 旅인 08.12.20. 14:18
    저는 불과 한두해 전에 배웠는데, 벌써 다 까먹은 셈입니다. 머리도 나쁜데다 게으르니 어디 성취가 있겠습니까?

    꿈처럼 08.12.19. 01:55
    호주머니와 가슴 속. 그런데 물건들을 소유하는 모습 조차 탐욕스러워 보이지 않고 소박하고 정감이 갑니다. 여인님의 기둥시;;에 적응해 가는 중입니다.
    ┗ 旅인 08.12.19. 09:49
    욕심이 없다고 하면서도 소모성 질환(항상 지갑이 홀쭉합니다.)에 시달리고 있어서 문제입니다. 대충 돈이 없으면 그런대로 살기 때문에 집 사람은 비상금같은 것을 지니고 다니라는 데, 늘 지갑 속에는 삼만원 정도 만 있습니다.(이 중 2만원은 술 먹은 날 택시비)

    아르 08.12.20. 20:10
    글 기둥 잘 읽어내려갑니다 덕분에 여러번 읽었어요^^ 전화하시면 가을에만 애인되어드릴수 있지만 여인님 시러하시겠죠 취향의 문제라서요ㅎㅎ
    ┗ 旅인 08.12.21. 02:25
    글기둥이 뭔가 하고 한참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하, 글의 폭이 나란히 서 있으니 글 기둥, 간신히 알았습니다. 저도 제 취향은 모르고 있습니다만… 아르님은 제 취향을 아시는 것 같네요^^ 혹시…
    ┗ 아르 08.12.22. 08:10
    혹시… ㅎㅎ 잘알겠습니다 가끔 레테에서 친구로 만족하신다고요~
    ┗ 旅인 08.12.22. 09:40
    ……..^^

    꺽수 08.12.20. 23:41
    여인님과 비슷한거 하나 찾았네요. 소지품은 흡사하네요. 사소한 일상도 글의 소재가 되는 여인님이 부럽습니다. 화사에선 글기둥이 아니고 글막대기가 되는데…지금 집에서 사용하는 노트북은 글기둥 맞습니다.^^잘 읽었습니다.
    ┗ 旅인 08.12.21. 02:27
    아마 회사 컴퓨터는 모니터의 폭이 좁아서 그런가 봅니다. 저도 태그를 div로 쎄팅을 하지 못해서… 꺽수님도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고 다니시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조금씩 가진 것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흰망초 08.12.21. 12:23
    많은 걸 소유한 듯 보이고 소통의 수단이 사방으로 열려 있는 것 같은 이 시대에 사람들은 더 외로워 하고 고립되어 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소유가 외로움의 무게를 줄여 줄 것인지 늘 고민 하지만 아직도 모르겠네요.
    ┗ 旅인 08.12.22. 09:39
    종교적인 소유(믿음 등)가 무게를 줄여주지 않을까 하는 천편일률적인 답 밖에는 없으니… 서양은 욕망을 채우려고 하고 동양은 욕망을 비우려고 한다는 어느 영화의 대사에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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