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영성에 관한

인간의 영성에 관하여 생각하다가…

1.

어제 저녁에 나에게 빚이 구만원 쯤 있다는 것을 알았다. 조금 더 있을 지도 모른다. 꼴란 구만원의 빚은 나를 몹시 가난하게 만들었다. 지금 호주머니에는 딸랑 천육백원이 들어있다. 천육백원이면 사흘 정도 버틸 수 있다. 그러나 호주머니에 돈을 채우기만 하면 어느새 사라지고 만다.

아내는 나에게 돈을 모른다고 한다. 그것은 맞는 것 같다. 돈은 쓰라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모으라고 있는 것인지 그도 저도 아닌지 잘 모르겠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이재용씨는 지난 95년 이건희 삼성 회장으로부터 받은 60억원을 바탕으로 10년 만에 재산을 1조~2조원으로 불렸고, 사실상 삼성의 경영권을 승계했다.”(참여연대 경제개혁팀장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고 쓰여 있다.

이 삼백배로 뻥튀기를 했다는 이 사실은 돈이란 쓰거나 모으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임을 극명하게 보여준 셈이다. 우리는 늘 돈이 없고 또 어떤 이에게는 계산이 안될 정도로 쓸데없이 많다.

나와 내 가족의 배를 불리고 일용할 것을 구하며, 친구와 술을 한잔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돈의 의미와 형식은 숭고하며, 고맙기 그지없다. 우리의 노동은 이런 돈벌이를 위하여 봉사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론이 없다. 약간의 부족함과 욕심은 늘 우리의 노동에 활력을 더한다.

이재용이 빈손으로 조 단위의 재산을 불린 이야기를 보면서, 이 1~2조원이라는 돈은 국민 한사람으로 환산하면 이만원에서 사만원 이상의 돈이 된다. 이 돈이 기업에 효율적으로 투자되면 이 이상의 돈으로 환류될 것이며, 더 많은 고용효과를 낳고, 기업의 이익에 따라 법인세를 납부하게 될 것이다. 투자를 하지 않고 공정한 룰에 의하여 주식시장에 방출되었을 경우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누렸거나 아니면 증자차익을 통하여 삼성은 투자를 더욱 가속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1~2조원이라는 돈은 어떤 기업이 주식시세를 인위적으로 저평가하여 공정하지 않은 룰에 의하여 그 기업이 취해야 할 이익(즉 부)을 특정인에게 이전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회적 공기인 기업의 현재 혹은 장래의 이익과 부를 개인에게 강제 이전한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1~2조에 달하는 이 돈은 소비되지 않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돈이다. 부에 대한 환상을 던져주며, 강력한 소유와 지배를 통하여 권력이라는 형태로 치환되는 것이다. 삼성의 이사회에 참석하는 임원들은 몇십억의 고액을 받고 일을 한다. 그들은 기업이 자신에게 연봉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건희와 그의 일가가 그 많은 돈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그들은 자신의 회사에 봉사하지 않고 이건희와 그의 일가에 봉사한다. 그들은 받을 만큼 받았기에 이씨 일가에 대한 충성으로 생각하며 감방으로 스스럼 없이 갈 것이다.

2.

<오 자히르>를 읽고 있다. 사실 이 작가의 <연금술사>는 그 명성에 비하여 적지 않게 나를 실망시켰던 책이다. <연금술사>가 아무런 내용이 없는 책이었음에도 너무 많이 읽혀졌다는 것에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더 이상 코엘료의 책을 읽을 생각은 없었지만, 아들이 읽다가 팽개친 이 책의 선전이 워낙 떠들썩하여 집어 들었을 뿐이다. 이 책은 값싼 [인간의 영성]을 가지고 책 장사를 했던 코엘료 류의 특이성을 그대로 들어내기는 하지만, 상당히 공감이 가고 최소한 개인이 부딪힐 수 있는 절실함을 느낄 수 있도록 솔직한 필체로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영성]이나 [사랑]에 대하여 쓰고 있음에도, 이 코엘료란 사람에게 이 두가지에 대한 성찰이나 경험이 몹시 빈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일반사람에 비하여 그가 훨씬 더 통속적이라는 점을 <연금술사>와 이 책 <오 자히르>는 아주 뚜렷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에게 [인간의 영성]은 몽상과 같은 신비체험 정도이거나 아니면 교회의 묵상 정도 이상 아무 것도 아닌 것만 같다.

차라리 칼릴 지브란의 책이나 카잔차키스의 책을 읽어보는 것이 좋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영성]을 가지고 값싸게 베스트 셀러를 만들어 내는 작가의 뛰어난 재능은 높이 살 만 하다. 즉 이 책은 킬링타임용이지 더 이상은 아니다.

“일년 뒤 어느 날, 나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한 번 만지거나 보고 나면 결코 잊을 수 없고, 우리의 머릿속을 완전히 장악해 광기로 몰아가는 무엇, 자히르. 나에게 그것은 장님이나 나침반, 호랑이, 혹은 동전 같은 낭만적 상징물이 아니었다.

나의 자히르. 그것은 이름을 갖고 있었다, 에스테르라는.” <책 78쪽>

>>> 이 이야기는 <일년 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를 더욱 잊을 수 없었고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나를 미치게 한 사람은 에스테르다.>와 하등 차이가 없다. 이것은 뒤의 글과 수사학적인 측면에서 거의 흡사하다.

“두 선로 사이의 거리는 143.5센티미터, 혹은 4피트8과2분의1인치입니다.” <책 168쪽>

>>> 약 145이나 150센티미터라고 하면 그냥 받아들이지만, 1435와 4821의 길게 늘어선 랜덤 숫자 혹은 2의 제로승, 일승, 이승, 삼승의 숫자들을 보면 무슨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거기에 의미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의미가 있다고 하여도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만큼은 아니다.

책을 절반쯤 읽었기에 좀 더 읽기로 하자. 그 후에야 이 책에 대한 평가가 가능할 것 같다.

3.

인간의 영성에 대하여 생각을 해 본다. 그 오래된 주제에 대해서 아직 한 발도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고 있다.

참고> 오 자히르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