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와 왕국(까뮈)

<<<<휴님과 잎싹님의 덧글이 달린 이후에…>>>>

아침에 깨어났을 때, 이미 시간은 늦어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늦으면 다급해지기 보다 늘 딴 생각을 하게 된다. 일단 아들을 깨워 학교를 가라고 한 후, 놈이 들어간 화장실을 보며 다음에 이사를 간다면 꼭 화장실이 두개 달린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들놈의 등교 시간은 늘 내가 출근해야 할 시간을 한 이십분 쯤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이른 아침에 스스로 깨어날 수 있는 인간은 우리 집에는 나 하나 뿐으로 때론 아들을 깨우기 위하여 이십분 쯤 이른 시간에 깨어나거나 내가 가장 바쁜 시간에 놈에게 화장실을 내준 채, 아침 뉴스를 들어야 한다.

녀석이 다녀올께요 하며 웅얼거리며 학교로 달아난 후, 화장실에 들어가면 세면대 안에는 녀석이 머리에 왁스를 칠하는 동안 떨어져 내린 머리카락이 여서일곱가닥 쯤 있다. 수도꼭지를 열어 물로 머리카락에 물칠을 한 후 손가락 끝으로 세면대 바깥으로 끄집어 낸 후 다시 물을 뿌려 화장실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그러면 아침 뉴스의 세상이 망할 것 같다는 다급한 소리에 머리카락을 제거하기 위한 허무하면서도 좀스런 나의 행동이 겹쳐지면서 약간의 울분이 새어나오는 것이다. 빌어먹을!

아마 어제의 유쾌함(?)은 결국 오늘이라는 내일이 있고 태양이 또 다시 떠오르리라는 굳건한 믿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늘이 없다면 분명 어제는 좀 심각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일이 오늘로 변화하는 형식은 찬란하다고 쳐주자.

그러나 아침이 다가오는 법은 늘 뻔뻔하다. 생애의 몇번쯤은 열광으로 맞이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아침은 아무런 기대감이나 의미를 던져주는 법없이 늘 침대의 한쪽 귀퉁이에서 고달프게 밤을 스쳐지나온 나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것은 희뿌연 얼굴로 그늘 속에서 아주 길다란 키로 우뚝 서 있다. 놈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나는 발치에서 부터 한참 머리 위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때론 잠을 자면서도 아침이 침대 모서리에서 웅크리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렇지만 잠이 모자르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애써 무시하기도 한다.

아침과의 모멸스러운 조우는 결국 낮의 노동으로 이어지고, 밤이면 모욕당한 사람들이 야음을 틈타 하나둘씩 술집에 모여 아이 씨팔! 세상이 왜 이따위냔 말이다 하고 술주정을 하던지, 아니면 텔레비젼과 얼굴을 마주한 채, 순간순간 다가오는 내일의 존재를 잊기도 한다. 그래서 밤에는 가냘픈 도덕을 지키기 위하여 집에서 머물거나 아니면 쾌락이 우르르 밀려나간 곳까지 가보다가 그 끝에서 굴러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타락과 패륜 기타 등등의 것들에 대한 책임을 단순히 그들에게 물을 수 만은 없는 것이다. 그들도 재미없는 인생에 테러를 당했거나, 아니면 볼모로 사로잡혀 있는 것일 뿐이다.

아침 중국어 수업을 빼먹기로 결심했고 몇사람 없는 전철 안에서 <적지와 왕국>의 <손님>을 읽었다.

결국 어제 말한 영웅이란 선택 가능한 것이 아니라, 불현듯 사막처럼 바싹하게 말라 균열 간 벽 위에 시들은 한송이의 장미꽃을 발견했을 때 우연찮게 찾아오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 순간이라서 그 이후 행복하게 잘살았다는 동화의 결말을 절대로 보장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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