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벌어진 일들

1. 이웃에게 그만 결례를 범하고 말았다. 다 생각이 비루하면서도, 교오함에 사로잡힌 탓이다. 그래서 기분이 허해졌다.

2. 적지와 왕국을 다시 읽는다. 여전히 좋다.

3. 컴퓨터를 바꿨다.

어제 집에 들어갔더니 추석 전이라 택배가 밀린 관계 상 배달이 늦는다고 주문신청을 했던 컴퓨터를 아들놈이 직접 갖고 왔다. 윈도우를 설치하고 인터넷이 된다 안 된다 하며 생각도 없이 덜렁 전의 PC에서 랜카드를 뽑아 달자 인터넷이 가동이 되었다. 그 후 사운드 카드니 모니터 등의 드라이버를 설치하려다 보니 랜카드 드라이버가 들어있는 CD가 보였다. 놈은 “아참! 내가 드라이버 설치를 안했지!”하고 드라이버를 설치한 후 케이블을 연결하니 새로운 랜카드로도 인터넷은 멀쩡하게 작동된다. 그리고 몇가지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하는 데… 꼬락서니를 보니, 프로그램을 설치하다가 그만 PC를 망그러뜨리지나 않을까 싶다. 소리지르고 싶었다, “좀 천천히!”라고…

어느 정도 셋팅이 끝나자 집사람이 물었다.

“뭐가 달라진 것 있어요?”
“세상이 조금 더 빨라진 것 같아.”

컴퓨터에 대해서는 아들놈보다 내가 조금 더 잘 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컴퓨터를 바꾸고자 하던 녀석과 새 것이 좋다는 것만 아는 딸내미의 쿠테타는 늘 나에게 좌절되기가 일쑤였다.

나의 논리는 명확했다. 하드드라이버의 용량이 크고 스피드가 빠른 것은 게임에만 유효할 뿐이며, 인터넷이나 다른 필수프로그램의 가동에는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니 컴퓨터를 바꾸기 보다 램만 늘리면 된다.

녀석들은 나를 설득하기를 포기하고 꾸준히 엄마를 설득했고, 그 애미되는 자는 신성불가침의 논리로 나에게 말했다.

“고삼이 되면 방송강의도 들어야 되고…”
“아직 6년 밖에 안썼는데… 작년에 하드를 바꾸었잖아?”
“그래도 애들이 바꿔야 하겠다는 데…”
“저 컴퓨터 바꿔주고 나면 아마 당신이 후회할텐데”

그러더니 며칠 후 카탈로그 등을 가져와 가격을 뽑고 했다.

“기왕 사려면 펜티엄 D로 사라!”고 했더니
“비싸서…”
“그래도 퇴장하는 모델을 사느니 비싸도 좀 앞선 것을 사라.”

그래서 펜티엄 듀얼을 사다 놓긴 했지만, 빨라진 것 외에 다른 점을 느낄 수 없다.

컴퓨터를 볼 때마다, 우리가 표면을 떠돌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공책에 글을 쓸 때면, 종이 위에 잉크가 번져가거나 연필심이 사각이며 글이 써지며 그 구체성에 아무 말을 할 수 없고 글이 잘 쓰여졌든 아니든 간에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컴퓨터는 <ㄱ>을 치고 <ㅏ>를 치면 이것들이 0과 1로 변화된다고 한다. 그리고 자체적인 로직으로 연산이 되어 <가>로 변화된다. 나는 <가>로 변화된 글자가 어느 날 아무 의미가 없는 0과 1로 붕괴되고 말 것 같다는 불안감과 어떻게 글자가 이진수로 변화했다가 다시 00110101따위의 수에 10010100의 수가 결합하여 다시 <가>라는 글자로 변신하는 가에 대한 절대적 무지에 부딪히는 것이다.

이런 것조차 모르면서 컴퓨터에 <신>, <진리>, <사랑> 기타 등등의 단어를 얹어놓는다. 그러면 그 단어들은 0과 1의 숫자로 용해되어 하드디스크의 표면에 가서 달라붙었다가 컴퓨터를 부팅하고 해당파일을 클릭하면 가느다란 동선을 통하여 엄청난 량의 0과 1들이 순식간에 와그르르 몰려와 정렬을 하고 해체되었던 조각을 모아 글자로 환원되는 경이적인 광경을 보면서도,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왜 이리 느려?”

반면, 우리는 화면에 떠오른 글자를 보고 생각을 하던지 희로애락애오욕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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