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과 추악함

추악하다고 할 때, 그것을 우리는 외면적인 것으로 판단한다. 그런데 가끔 못견딜 것 같은 혐오감과 함께 미추의 판단이 흐려질 때가 있다. 그것은 외면과 내면의 불일치가 가져다 주는 관념적 혐오감일지도 모른다. 보이는 것을 그냥 바라보지 못함. 아름다움이 생각에 부딪혀 허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헛물을 켰다는 그 느낌 속에서 헛구역질하게 된다.

실명을 거론해서 미안하지만, 하리수가 아름다운 몸매와 여성스런 얼굴로 나타나 길다란 머리채를 흔들어대며 춤을 추고 있을 때, 갑자기 그녀의 본질이 남자라는 것을 상기하게 되면, 촌충과 편충 그리고 회충과 같은 자웅동체의 기생충이 떠오르며 속이 불편해진다. 이러한 겉과 속의 불일치는 일산 몸짱 아줌마에게서도 볼 수 있다. 스포츠 브라와 골반 팬티 사이로 보이는 복부의 긴장감 넘치는 흐름과 늘씬한 다리를 보면서 침을 흘리며 성적 시그널에 주파수를 맞추고 있을 때, 그녀가 사십이라는 나이를 지났고 인간 승리의 한 예이라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 과연 이 시대는 무엇을 위하여 저 아줌마를 반쯤 벌거벗겨서 텔레비젼 앞에 내세우게 되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 시대는 젊음에 대한 광기에 들떠 늙음에 대해서 말하기를 멈춰 버렸다. 그러나 삶의 역사가 살아넘치고 아득한 젊은 날을 이야기할 수 있는 늙음과 죽음에 대하여 지긋이 명상할 수 있는 시절이 매몰되어 버린 이 사회, 늙음을 기피해야 할 질병으로 간주하는 이 시대에 과연 저주가 없다고 볼 수 있는가?

젊음 또한 단지 섹시라는 단어로 규정되어질 때, 색정어린 눈길과 둔부와 유방, 그리고 햇볕에 그을은 복부에서 性화되고 外화된 젊음을 찾을 뿐이며, 그 생기발랄함이나 열정에 매료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늙은 남자는 뱀탕을 먹고, 나이든 여자는 젊은 애인과 바람을 피움으로써 비린내 가득한 회춘의 꿈을 꾼다. 멍청한 것들…

시들은 젊음에 대한 욕망은 결국 자아 중심의 질병. 늙음이 자연임에도 수용하지 못하는 인공적인 사회와 불변의 자아를 붙들고 사는 사람들은 크게 병들어 있는 것이다. 생산력 만을 말하는 후기 산업사회에 의하여 해석되고 강조된 젊음에 의하여 늙음이 구겨져 버릴 때, 그래서 젊음이라는 문법 만이 흥청망청할 때, 우리는 퇴폐적이고 패륜적인 사회를 만나기 이전에 기형화되고 불구가 되어버린 자신의 삶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추악함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였음을 불현듯 느끼게 되는 것이다.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유리알 유희 09.01.29. 13:08
    네, 그리하여 저는 자연으로 세월을 삽니다. 외양의 급격한 변화를 받아 들이이가 힘들 때도 있지만 무엇보다 단단해지는 마음, 이 만져질 때 더욱더 두려움을 느낀답니다. ㅜㅜ
    ┗ 旅인 09.01.29. 21:06
    단단한 마음, 이해갑니다. 나이가 들수록 수용력과 이해력이 깊어져야 하는데, 점점 더 편협해지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 집시바이올린 09.02.01. 03:20
    아~ 정말 유희님의 답이 멋집니다. 역시나에요^^

    난 향 09.01.29. 14:18
    때론 할머니의 주름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현상은 어디서 기인한 걸까요? 요즘은 할머니들을 많이 관찰하는 습관이 있어서…
    ┗ 旅인 09.01.29. 21:09
    눈이 선한 할머니의 모습은 우아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사셨길래 저런 표정을 간직하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부럽기도 합니다.

    꿈처럼 09.01.29. 16:42
    시대에 대한 막연한 불암감 중 하나를 여인님께서 콕 집어서 긁어주셨네요. 늙음을 버리고 택한 젊음, 그러나 그마저도 병든 젊음. 밑에서 젊고 예쁜 여자의 공익성 운운하셨던 분은 이 글을 꼭 보셔야 해요.
    ┗ 旅인 09.01.29. 21:11
    그렇게 말입니다. 젊은 여자가 예뻐야 앞에 가는 아저씨의 하루가 즐겁다고요? 반성해야 합니다. ㅎㅎㅎ
    ┗ 집시바이올린 09.01.30. 01:24
    키득키득^^;; 꿈처럼님! 화이팅!!

    산골아이 09.01.29. 18:45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젊음을 신봉하게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사람은 태어나서 자연스럽게 늙어가고 죽는 것이거늘… 사회적 병패… 공감합니다.
    ┗ 旅인 09.01.29. 21:17
    노인을 그 사회가 부담해야할 짐이라고 생각하는 사회는 문제가 믾습니다. 인간을 인간이 아닌 생산력 그 자체만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스테판 09.01.29. 20:05
    늙는다는 숙명과 늙어가는 속도를 느끼지 못하는 감각의 무지의 깰수없는 벽들이지만 그 벽을 넘거나 죽거나 아닐까요!! 조금이라도 더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그험난한 벽을 넘으신 이시대의 진정한 챔피온이라 생각됩니다.
    ┗ 旅인 09.01.29. 21:26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 늙는 것보다 어떻게 아름답게, 건강하게 늙어갈 수 있겠느냐일 것 같습니다.

    지건 09.01.29. 21:14
    축적된 경험이 높은 가치를 부여받았을 때에 비하니…사회변화가 가속화된 시대에…젊음은 능동적 대처로 인식되는 듯 합니다..물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육체적으로 젊음은 항시 갈망되었을 법한데요…그 근저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삶의 유한함이) 서려있기 때문이 아닌가도 싶습니다…글을 읽으며..성이 상품화되는 경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천박함이 우리를 몰아가고 있다는 생각 또한 해 봤습니다…잘 읽었습니다..^^
    ┗ 旅인 09.01.29. 21:43
    지건님, 오랫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많이 바쁘셨는지요? 이 시대의 스피드는 나이 든 사람들이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장과 발전이 과연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 것인지 불행을 키운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유인 09.01.29. 23:02
    겉으로 보여지는 것을 중시하는 사회로 변모가 씁쓸하네요.
    ┗ 旅인 09.02.03. 17:09
    아무래도 형이상학은 퇴조하고 형이하학적인 것이 대세인 시대이다 보니 그런가 봅니다.

    라마 09.01.30. 01:04
    거푸집 젊게 유지하(만드)는 비용과 노력으로 정신을 젊게 유지하(만들)기가 힘든지, 젊은 거푸집으로 받는 보상이 젊은 정신으로 받는 보상보다 훨씬 풍요롭고 쾌락스러운지… 뭐, 요런 생각도 해봅니다요^^;
    ┗ 旅인 09.02.03. 17:12
    사실은 정신이란 것이 애매모호해서 있는 것인지? 정신이 육체보다 고상한 것인지 조차 애매해지는 시대, 많이 아는 놈이 제대로 된 것인지 아닌지조차 헷갈리는 시대가 되어서 참 그렇습니다. 너무 인위를 넘어서 작위적으로 되어버려, 인위조차 자연인 듯 보이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집시바이올린 09.02.03. 14:09
    저 또한 늙지 않으려고 얼마나 주름살을 턱밑으로 감추고 싶어 했던가….생의 훈장처럼 골골이 박힌 주름살은 더이상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는 것 같은데…너무너무 고마워요 “젊음과 추악함”……..생의 깊이가 느껴지는 글 ….짜릿한 글에 박수를 보냅니다.-_-;;
    ┗ 집시바이올린 09.02.03. 14:16
    메스를 대지 않은 자연스러움 황혼의 나이가 무색할만큼 고운 미소가 곁들여진 나이 드신분들의 세상을 지긋이 바라보는 안목과 여유와 깊이는 결코 젊음이 흉내내지 못할 푸르른 보석이지요 ::) ㅡ < 나도 이런글을 쓰고 싶었는데, 여인님처럼 깊이있고 무게가 실린 글을 쓰지 못하기에 흐윽 ....ㅜㅜ 미치미치........> 난 왜 일케 글을 쓰면 간단명료하게 핵심을 짜르지 못하고 자꾸 헛다리 짚기만 할까…TT 횡설수설 ….흑흑
    ┗ 旅인 09.02.03. 17:20
    이런 글 써 놓고서는 지하철에선 또 딴 곳만 쳐다보고 하니… 주책이지요, 집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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