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창 가에서…

비가 내린다. 기다리지 않았지만, 늘 그렇게 내렸던 것처럼 약간 음울한 표정으로 비는 내린다. 그러면 산란하던 빛에 지워졌던 도시의 모든 미세한 선분들이 또렷해지며 색조마저 깊이를 지니고 가라앉는다. 나는 이런 날씨를 좋아한다. 구름 밑으로 빛은 가득한 데, 사물들과 약간 틈이 벌어져 사물은 빛에 휩쌓이지 않고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며, 빛이 구름과 사물 사이를 표류하는 오후를 좋아한다. 이런 날이면 커피향은 한결 짙어지며 담배연기는 부드럽지만 허파 속으로 깊숙히 밀려들기 마련이다. 그러면 몸 속에도 습기가 차는 듯 살갗은 눅눅하고, 기분은 약간은 음울하지만 마음은 고요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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