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들렸다 불현듯

아침에 이웃을 들렀다가 불현듯 몇가지가 생각이 나서 생각나는 대로 잡소리를 적어본다.

1. 매미, 그 13년의 기다림

굼벵이는 매미의 유충이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없다지만, 진짜 재주는 기다림이다. 굼벵이는 7년, 11년, 13년, 17년 소수(素數)의 해(年)동안, 땅 속에서 나무뿌리의 수액을 먹으며, 7월의 뙤약볕을 기다렸다가 밤 중에 몰래 기어나와 나무 위로 오른다. 그리고 매미로 6~9일 동안 살다가 알을 낳고 죽는다. 이것이 바로 삶의 양태이다.

소수로 땅 밑에서 사는 이유란 천적을 만나지 않기 위해서이다. 사마귀와 거미와 말벌과 여치와 잡새들이 땅 위로 올라간 그해에는 번성하지 않아, 매미가 여름을 시끄럽게 하고 또 많은 알을 낳아 자손이 창성하기를 꿈꾸는 것이다.

굼벵이가 12년만에 매미가 된다면, 2년·3년·4년·6년 주기로 번성하는 천적들을 몽땅 만나게 된다. 울기 밖에 못하는 매미는 천적들에게 잡아먹히고, 12년 후 여름에는 찌르륵 맴맴 하는 소리는 잦아들고 숲은 적막할 수 밖에 없다.

13년만에 매미가 된다면, 2년 주기의 천적은 26년 후에 만나고, 3년 주기의 천적은 39년, 4년 주기의 천적은 52년, 6년 주기의 천적은 78년만에 만나게 된다. 그것도 각각 달리 만나게 된다. 모두 다 만나기 위해서는 156년(= 3 X 2 X 2 X 13)이라는 세월이 필요하다. 156년 동안 창성해진 매미는 천적들에게 잡아먹히고, 또 먹혀도, 얼마는 생존하여 알을 낳을 것이고 자손이 끊어지는 것을 면할 수 있다.

이렇듯 미물들의 생명조차 수학과 연결되어 있다.

삶(생명)이란 60억년 우주의 역사에서 볼 때, 가장 최근에 발생한 사태이다. 빅뱅 이전에도 시간이 있었다면, 더욱 그렇다. 우주의 역사 속에서 진화의 최종형태가 생명이고, 그것은 우주 전역사 속에 가장 괄목할 만한 모순 중의 하나이다. 생명이 발생함으로써, 드디어 변별적으로 죽음이 인식되었을 뿐이다. 빛과 어둠과 행성이며, 물질이란 한마디로 죽음이었을 뿐이다. 우주의 탄생. 빅뱅이 無에서 有가 탄생한 일차적 모순이라면, 삶이란 죽음 가운데에서 생명이 탄생한 이차적 모순이다.

삶은 죽음에 비하여 몹시 짧고, 연약하다. 그래서 생명의 특질은 영속성을 어떻게 유지하느냐 이며, 어떻게 생존해 나가느냐에 포커스가 모아진다. 그래서 영속성을 담보할 생식능력과 생존을 위한 마음(Mind)으로 부터 정신과 영혼이라 불리워지는 것이 나온다.

우주에 삼차적 모순이라는 것이 있다면, 육신(물질)이라는 것에서 영적인 것으로의 진화 쯤 되리라. 이때 쯤이면 죽음이란 앞의 죽은 물질의 차원이 아닌, 우리의 정신과 영혼이 이 우주를 벗어나 다른 차원으로 진입하는 것을 뜻하리라.

그러나 생명의 단계에서 진화를 멈춘 우리에게 <죽음이란 記意가 없는 記表에 불과하다>는 말은 몹시도 적절하다. 죽음이란 결국 이 세상의 의미로는 도출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인 것이다.

<아침에 비온샘님의 포스트를 보고서…>

2. 연오랑과 세오녀의 진실

아침에 <연오랑과 세오녀>라는 글을 보고서 나 나름대로의 자작추리에 빠져버렸다.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의 이야기는 삼국유사의 기이제일(紀異第一)편에 나온다. 삼국사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고려초 박인량의 수이전(殊異傳)에도 이 이야기는 나온다고 한다. 이름들에 나오는 오(烏)란 발광체의 가운데가 꺼멓게 보이는 현상을 말하며, 금오(金烏)란 바로 태양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빛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아마 연오는 해(日), 세오는 달(月)을 의미하는 것 같다.

개략적인 이야기는 신라 8대 왕 아달라 4년(AD157)에 시작된다. 연오랑이 바닷가에 가서 해초를 따고 있는 데 바위가 있어 올라섰더니 그것이 일본으로 데려다 주었고, 그 곳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삼았다.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 세오녀 또한 바닷가에서 바위에 올랐더니 일본으로 갔고 다시 연오랑의 귀비가 되었다. 그때 신라의 해와 달이 빛을 잃었고, 일관이 <해와 달의 정기가 우리나라에 내렸었는데, 이제 일본으로 가 버렸기 때문에 이런 변괴가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사신을 일본에 보내어 돌아오기를 청하니, 하늘의 뜻이라며 세오녀가 짠 비단을 주며 제사를 지내라고 한다. 그래서 제사를 지내니 빛이 돌아왔다고 한다. 제사 지낸 장소가 영일현(迎日縣) 또는 도기야(都祈野)라고 하며, 지금의 영일만 즈음이다.

이 글에 보면 여러가지 희귀한 특징을 볼 수 있다. <타고 일본으로 갔다>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한문에는 <負歸日本>이다. 즉 <타고 일본으로 돌아갔다>라고 되어 있다. 갔다라면 <去>라고 해야지 <歸>라는 단어는 온당치 않다.

원문 주석에 <按日本帝記, 前後無新羅人爲王者, 此乃邊邑小王, 而非眞王也>라고 되어있다. <일본제왕기(실존가능성 희박한 자료)를 참고하면 그 전후로 신라인으로 왕이 된 자가 없으니, 이것은 조그마한 고을의 왕쯤이지, 진짜 왕은 아닐 것이다.>라는 말인데… 이런 빌어먹을 주석(어느 놈이 썼을까?)이 어디 있는가? 일본 놈들이 미쳤다고 <우리 덴노 씨부랄 놈들 중 신라인이 있다>고 씨부리겠는가? 돌아갔다(歸)면, 연오랑과 세오녀는 일본의 덴노의 핏줄이라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신라에 와서 미역이나 따고 있었을까?

또 하나는 日本이라는 명칭이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고대의 사료에 일본이라는 국명이 나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통상 왜(倭)라고 했다. 바로 연오랑 편의 바로 뒤에 뒤에 나오는 <내물왕과 김(박?)제상>편에는 분명히 일본을 왜국(倭國)이라고 쓰고 있다. 왜 <부귀왜>라 하지 않고 <부귀일본>이라고 했을까?

빛이 신라에서 일본으로 갔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헝겊 쪼가리를 얻어와 굿을 했더니 빛이 다시 살아났다라는 이 이야기는,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상당히 기분 나쁜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빛이 정기를 잃었다라는 이야기는 일식과 월식이라는 자연현상에 관한 것일 수도 있고, 덴노의 종 간나 새끼들인 연오와 세오가 볼모 혹은 첩자로 밀경하여 살다가 뭔가 훔쳐달아난 것을 뜻할 수도 있다. 굳이 신화적으로 해석하자면 日本이란 지금의 일본(언제부터 왜놈들이 국명을 일본이라고 썼는지 잘 모르겠다)이 아닌 <해가 뜨는 가상의 장소>를 의미하며, 연오와 세오는 <해가 뜨는 곳>에서 잠시 신라에 왔다가 다시 돌아간 것을 말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遺史의 한편은 한일 고대사의 장대한 서사 드라마를 꾸밀 수 있는 충분한 여지는 있다고 보여진다.

<이 또한 아침에 서리풀님의 안부게시판을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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