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 이탈이랑 무슨 차이가 있지?

불량소년…

해서는 안되는 일지만 한번쯤 한 일탈이 있으시면 이야기해주세요~
저는 빠져서는 안되는 수업에 친구들이랑 놀러간 적이 있어요

나…

무쟈게 많아서… 열거하기가 어렵다.

담배에 관한 이야기

어렸을 적에 <폭음탄>이라는 것이 있었다. 심지에 불을 붙이면 쉬쉬 소리를 내며 타다가 한 오초 후에 폭음소리를 내며 그것은 터졌다. 아이들은 밤이면 그것을 들고 나가 사람들 발밑에 던지고 골목으로 뛰어가 숨곤 했다. 그 폭음소리와 함께 지나던 사람들은 기함을 했고, 우리는 그것을 즐겼다. 그러나 성냥을 그으면 그 불빛에 아이들이 폭음탄에 불을 붙인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고, 바람에 성냥불은 쉽게 꺼지곤 했다. 그래서 저녁이면 집에서 아버지가 피던 담배 한개피를 들고 나갔다. 담배불로 심지에 불을 붙여 은밀하게 지나던 사람들 쪽으로 <폭음탄>을 던지곤 했다. 그런데 담배에 불을 붙이다 그만 담배 맛을 알아버렸다. 어느 날 밤에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외할머니에게 정통으로 걸려버렸다. 도망가려던 나의 귀를 외할머니가 잡았고 집으로 끌려가 두손을 번쩍 치켜든 채 <대학교에 가기 전까지 담배를 피우지 않을께요>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친구의 권유와 협박 때문에 고 3때 담배를 다시 배웠다. 빌어먹을 자식들! 평생에 도움이 안돼요.

학교에서 아이들은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웠지만, 암모니아 냄새가 범벅이 된 그곳에서 차마 피울 수 없어 교실 뒷켠의 아주까리 밭에 들어가 담배를 피웠다. 넓은 아주까리 잎은 짙은 그늘을 만들어줘 적발을 면할 수 있었고, 쉬는 시간에 피운 담배연기는 수업이 시작된 한참 후에나 아주까리 잎새를 뚫고 희미한 연기를 그리며 올라오곤 했다.

집에서도 세개피 정도의 담배를 피웠다. 전봇대의 희미한 알전구 불빛 아래 하늘로 올라가는 담배연기는 갑갑한 고 3에겐 몽롱하면서도 자유라는 것을 일깨웠고 담배 맛보다 그 연기를 보기 위해 담배를 피웠을 지도 모른다. 다 피운 담배꽁초를 브로크 담의 틈새로 밀어넣었다.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이상 밀어넣을 자리가 없어, 나는 담배꽁초를 지붕으로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비가 내렸고, 빗길을 뚫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형이 “너 오늘 죽었다고 생각해라”고 말했다. 왜?”라고 반문하는 나를 끌고 지붕의 빗물이 흘러내리는 홈통 밑으로 갔다. 거기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했고, 그것을 본 아버지가 형을 불러 “넌 담배를 피웠으면 쓰레기 통에 넣어야지 지붕에 던지면 어떻게 하냐?”고 말씀하셨고 형은 의당 “전 그런 적 없는데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내 책상 서랍을 열었을 때, 거기에 <거북선>이 있었다는 것이다.

“너 딱 걸렸어. 오늘 죽었다고 생각해!”라는 형의 말이 고것 쌤통이라는 것 같았다.

그 날 저녁을 먹기 위하여 식구들이 모였는 데도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었고, 침묵 속에 쌀알의 알갱이가 혀 위를 떼굴떼굴 구르고 있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갔다.

입학식 날 저녁에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일회용 라이터가 없던 그 시절, 아버지는 라이터를 하나 내 앞에 내놓으시며, “성냥은 비싼거다. 담배피우려면 라이터로 피워라. 가스는 네 돈으로 사구.”라고 말씀하셨다.

후일 아버지가 담배를 끊었다고 말씀하실 때, 자식된 놈이 담배를 계속 피운다는 것이 너무 죄송했지만 아직도 나는 담배를 피운다.

술 이야기

사회적 통념 상 너무 빨랐지만, 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술이기에 한번도 일탈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2학년, 단골 술집이 생겼을 때,

“내가 이래도 되는 건지…?”라고는 생각한 적이 있다.

영화 이야기

초등학교 때부터 홀로 삼류극장을 다녔으며, 고등학교 때는 정학을 감수하고 보러 다녔다. 그러나 아직도 왜 영화를 못보게 했는지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빛과 색이 얼마나 아름다운 두시간 짜리 삶과 내 인생에 볼 수 없으리라 생각하는 것들을 펼쳐 보여 주었는가?

담치기

고등학교 때 수업을 빼 먹고 담 넘어 라면가게에서 몇시간을 죽치다가 다시 들어와 종례를 받는 그 스릴과 서스펜스란…

타발적 가출

늘 자발적 가출을 꿈꾸곤 했었다. 학교로 가던 중 책가방을 쓰레기 통에 집어던지고 가진 회수권이 끝나는 데까지만 가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어제와 전혀 다른 일상이 굶주림과 고달픔을 댓가로 자유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그 가출을 꿈꾸었다.

그러나 꿈꾸는 시기가 끝날 때 쯤, 친구에 의하여 납치가 되어 일주일 동안 남도를 떠돌다가 영주에서 청량리로 가는 중앙선을 탔다. 자리를 잡고 창 밖을 스쳐지나는 여름 들판을 보았을 때, 한주일 동안 한번도 집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과 집에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불현듯 상기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의 참담함이란…!

내가 집에 들어서자, 누나는 경찰서로 전화를 걸어 “우리 동생 살아 돌아왔네요,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 일탈

삶과 일상에서의 진정한 일탈이란 생명의 섭리인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 마지막 일탈이 찬란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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