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시

詩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쓰여진 것 이상으로 상념을 이끌어내질 못하는 감상의 척박함과 정서의 빈약 탓이리라. 그러던 어느 날인가 하나의 시를 읽었다. 중세의 수녀가 쓴 시라고 했다. 시에라 산맥의 연봉들이 보이는 코르도바 근처를 배회하던 그녀는 세상의 멸망 속에 홀로 남은 자의 고독과 신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었다. 멸망의 노래는 흙 먼지에 휩싸이고 대지를 비추이던 마지막 빛이 암흑 속으로 사라져 버리던 시는 나의 가슴을 두드렸지만, 시인과 시의 제목을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한다.

내무반 창 밖에 걸렸던 고드름은 더 이상 자라지도 줄어들지도 않았다. 겨울은 ‘79년 <박정희의 유고>라는 커다란 구멍을 통해 들어와 꽁꽁 얼었고, ‘80년에도 추위는 삼엄했다. 중대장은 신참인 나를 일조점호가 시작되기 삼십분전이면 부르곤 했다. 중대장의 명령에 따라 본부의 한 구석에서 사흘들이로 날아오는 삼군사령관의 전통을 형광등에 비추어가며, 전통에 빠글빠글 쓰여진 한자들 아래에 한글로 음을 달았다. 한자를 모르던 중대장은 점호시간에 내가 써 준 음대로 사령관의 전통을 읽었다. 그 날도 한자의 밑에 충일, 용맹, 도배, 비상 등등의 각이 날카롭게 선 글자들에 음을 달고 있었다. 그러나 동계야간작전을 위한 도상훈련 때문에 일조점호는 연기되었고, 중대로 돌아가려던 나에게 중대장은 한쪽 구석에서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죽치고 있으라고 했다. 나는 난로 밑의 틈에서 몇 달 혹은 몇 년이 지났을 지도 모르는 잡지를 발견하였다.

무심코 펼친 페이지에 아래의 시가 쓰여 있었고, 할 일이 없던 나는 흐릿한 형광불빛 아래서 한 글자씩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노을 빛에 젖어가는 가을 날의 저녁을 뚜렷하게 그릴 수 있었다.

난로 속에서는 갈탄이 뜨거운 열기 속에서 따닥 소리를 내며 붉게 갈라지는 소리를 냈고, 오랜만에 한 여자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더듬거리며 찾아냈을 때, A4 한 장 크기 막사의 창으로 아침 햇빛이 밀려왔다. 그 햇빛은 너무도 투명하여 장병들이 토해내는 입김마저 하얗게 그려내고 있었다.

내 사랑이여 하고 당신이 말하면
내 사랑이여 라고 나는 대답했지

눈이 내리네 하고 당신이 말하면
눈이 내리네 라고 나는 대답했지

아직도 하고 당신이 말하면
아직도 라고 나는 대답했지

이렇게 하고 당신이 말하면
이렇게 라고 나는 대답했지

그 후 당신은 말했지 사랑해요
나는 대답했지 나는 당신보다 더 라고

여름도 가는군 당신이 내게 말하고
이제 가을이군요 라고 나는 대답했지

그리고 우리들의 말도 달라졌지

어느 날 마침내 당신은 말하기를
오,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데…

그래서 나는 대답했지
또 한번 말해 봐요…
다시 또 한 번…

(그것은 어느 거대한 가을 날 노을이 눈 부시던 저녁이었다.)

< 애가 14 / 프랑시스 잠 >

왜 제목이 <애가 14>인지 알 수 없다. 아마 이것은 사람의 노래(愛歌) 1영어로 14th elegy로 된 것을 볼 때, 愛歌가 아니라, 悲歌, 哀歌, 輓歌 따위로 새기는 것이 맞다일 것이나, 그 날 나에게는 서글픈 노래(哀歌)일 뿐이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이것이 누구의 시이며, 제목이 단지 <애가>였다는 것 만 알았지 이 시를 찾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시를 언어를 경제적이고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그냥 단정지었을 때, 책상 위에 던져진 것은 <神에의 頌歌>인 기탄잘리였다. 인도의 기독교 신비주의자인 <선다 씽>의 두꺼운 자전적 책을 다 읽었을 때, 종교를 초월하여 인도인에게 보편적으로 깃들어 있는 <화엄적 비젼>을 볼 수 있었다. 인도인들은 <영원과 순간>이 포개질 때, <완성과 초월>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문학(형상)화할 수 있는 유일한 민족이었다. 이미 사랑을 잃었던 나는, 사랑은 젊은 날의 유혹이라고 단정하며, 거리를 거닐던 아가씨들의 종아리와 아랫배에서 아름다움이나 성적인 것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아래의 시는 사랑은 육신에서 올라가는 일방통행 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야말로 믿음이며, 순간을 영원에 포개지게 하는 것이라고 속삭였다.

   임께서 이 몸을 무한케 하셨나이다. 이것이 임의 기쁨, 연약한 이 그릇을 비우고 비우시와 항상 새로운 생명으로 채우시나이다.
   이 가냘픈 한 낱 갈대피리를 임은 산을 넘고 골짜기를 넘어 가져오시와 영원히 새로운 멜로디를 불어넣으셨나이다.
   不死의 임의 손길이 닿자 이 가냘픈 가슴은 기쁨에 좁은 울이 터져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말을 하나이다.
   임의 무궁한 선물은 극히 작은 이 손을 타고 오나이다. 세월은 흘러도 임께서는 끝없이 퍼붓건만 아직도 채울 곳은 남았나이다.

< 키탄잘리 /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

지금 이 시간에 사랑이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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