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위하여 접는 오늘은

낱말 몇쪼가리를 써 놓은 후, 그것이 발아하기를 기다렸다. 그제서야 영혼이 있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길거리를 부유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삶의 창 틀에 널어 놓은 육신은 바람에 흔들리고, 때론 굴러가기도 했다.

1.

담배를 피우러 가는 곳에서 마주 보이는 지하철 삼번 출입구 한쪽 귀퉁이로 며칠 전에서 부터 한 여자가 출근하고 있었다. 그녀는 귀퉁이 쪽으로 면벽을 하고서 무까지(無價紙)를 읽는다. 그리고 밤이면 어디론가 간다. 왜 거기에 나 앉아 무엇 때문에 하루종일 무까지를 읽고 있는가에 대하여 그녀에게 물을 수가 없다. 살이 올라 펑퍼짐한 그녀의 등은 바라보는 눈동자들에 대하여 고집스럽게 등지고 있으며, 그녀의 얼굴이 내 쪽으로 돌려지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녀의 등에서 삶에 대한 허무한 분노 속에서 스며나오는 거친 외로움을 맞이할 수가 있다. 잡힐 듯 말 듯한 그 등의 슬픔에서 초라함을 느낀 나는, 그녀가 더 이상 거기에 없기를 바라지만, 거기에 그녀가 있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어짜피 외롭고 초라한 삶의 바로 한켠 옆이니까.

2.

고무줄을 사랑한 바보가 있었다. 아이들은 바보에게 묻곤 했다. “바보야! 바보야! 그 고무줄로 뭐할거니?” 바보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매일 물었다. 어느 날 마침내 바보가 말했다. “새총을 만들거다.”, “새총으로 뭐할건데?”, “새를 잡아야지…”, “새를 잡아서?”, “시장에다 팔거다.”, “팔아서?”, “병아리를 살거다.”, “그래서?”, “키운다.”, “다 크면?”, “시장에 내다 판다.”, “아쭈! 제법인데… 그래서?”, “판 돈으로 고무줄을 산다.”……?! “에에이~ 바아보!”하고 아이들이 소리친다. 그러나 이 바보처럼 (살기 위해서 사는) 삶을 투명하게 이야기 한 사람도 드물다.

3.

종로로 나갔다. 교보문고를 벗어났을 때, 비가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바쁜 듯 우산을 펴고 비가 퍼붓는 보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멈추지 못하는 생활. 멈추지 못할 이유란 없다. 사람들은 ‘열씨미 살라’고 한다. 열씨미란 뜨거운 마음으로 살라는 이야기인가?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열씨미 살지 않는 인생이란 없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길거리에 보인 돌맹이를 걷어 차듯 아들에게 ‘열씨미 살라’고 한다. “여기 허위와 교만과 자기만족과 자기연민으로 부터 벗어났을 뿐 아니라 나르시스적인 자기 탐애에도 빠지지 않은 자가 있다. 이러한 자는 어떠한 가?”, “그는 위대하며 존경할 만 하기는 하지만 그는 삶을 산 자가 아니라, 바람직한 삶을 그려가기만 한 비참한 자 올씨다.” 식당에 들어섰을 때, 폭우는 그쳤고 창 가의 거리는 회색빛 속에서 보다 짙은 윤곽으로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 빛은 도로와 벽과 구름에 이르기까지 백원짜리 동전의 색깔로 침울하게 번져가기 시작했다.

4.

무언가 더 쓸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루종일! 그러나 이곳 저곳에 끌려다니다 보니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고, 깊은 밤이 되었다. 쿵쾅거리며 아내가 와서 말한다. “내일을 위하여 그만 자요.” 그러나 그 말은 <내일을 위하여 오늘을 그만 접으라>와 같이 들렸고 또 ‘내일을 위하다니?’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을 꾸겨 휴지통에 버리듯 이불 속으로 기어든다. 그러면 어둠 속에서 내일이 허물을 벗고 오늘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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