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속에서

새벽에 꿈을 꾸었다. 그러니까 직원들과 야유회를 가서 낮에 수영장에서 놀았던 것이 피로했던 모양이어서 책도 들기가 어려웠고 <불멸의 이순신>을 보다가 맥없이 떨어지던 고개를 가누지 못하여 열시에 잠이 들었고 그만 새벽 네시에 깨어나 블로그를 열어본다, <태백산맥>을 읽는다 하다가 여섯시에 다시 잠이 들었다.

19세기 초엽에 홍현주란 사람이 어느 날 꿈 속에서 멋진 시를 지었고 꿈에서 깨어나니 기억나는 부분이 13자로

還有一點靑山麽  한점 청산은 아직도 아련하니
雲外雲夢中夢      구름 위의 구름이고 꿈 속의 꿈 이러라

라는 禪偈였다. 이 시로 해서 추사는 <雲外夢中>이라는 멋진 예서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이 <운외몽중>과 같은 꿈을 한번 꾼 적이 있다. 나는 仙界로 올라가 동자머리를 한 시동의 안내로 어떤 서가에 들어섰고 책꽂이의 한쪽에서 온갖 세상의 진리를 담고 있는 책을 찾아냈다. 진리는 한쪽 면에만 있었고, 한문으로 몇자가 되지 못했다. 나는 그것을 읽으면서 꿈을 꾸고 있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꿈이 멈추기까지 그것을 외웠다, 다 외웠을 때 꿈은 끝났고, 현실로 돌아온 나는 아무 것도 기억하질 못했다.

새벽에 잠이 든 나는 핸드폰의 알람소리에 6시30분에 깨어난 후, 다시 잠으로 기어들어가 어느 강당 안에서 누군가를 만났다. 그는 내 이름을 부르며 너무 오랜만에 만났다고 반갑게 말하고 난 후, 서류를 주며 복사를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마 하고 직원을 불러 복사를 시킨 후 복사물 위에 스테이풀러로 고정되어 있는 그의 이름을 보았다. <최석주?> 분명 그의 얼굴은 어디에선가 보았는 데, 이름과 회사이름이 낯설기만 했다. 그것을 돌려주기 위하여 기다렸으나 그는 오지 않았다. 갑자기 강당 문이 열리고 들뜬 화장을 한 나이 든 여자가 들어와 음료수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영상물이 상영되기 시작했다. 어느 사내가 그 옆에서 <바쁘신 중에 여러분들을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것은 광고물이었다. 웬일인지 나는 흥분했고 강당의 문을 발로 뻥하고 걷어찬 후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내 등 뒤로 <저어 개새끼가~>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 강당은 아주 크나큰 건물의 한쪽 구석에 있었고 나는 값비싼 카페트가 깔린 건물 내의 광장을 보면서 요의를 느꼈다. 나는 화장실이 어디인지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 곳을 찾아갔다. 그러나 거기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두리번거리다 화장실을 알려주는 표지판을 찾았고, 표지판이 알려주는 쪽으로 걸어갔다. 한동안 걷자 나의 <포스트>에 올려 논 사진의 풍경과 같은 곳이 나타났고, 그 골목으로 들어서자 사진의 풍경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오른편의 벽과 왼편의 벽이 합치면서 아치를 이루어야 할 곳에는 벽이 아니라 기둥들이 서서 이어지고 궁륭을 이루어야 할 곳은 트여져 있어서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벽도 뚫려져 있어서 정원과 꽃들이 보였다. 유월이 아름다웠다.

그때 인파들 속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동무는 어데서 왔슴네까?> 나는 그의 존재에 대해서 불안해 하면서 <남조선>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나를 졸졸 따라왔고 나는 건물 밖으로 나왔지만 화장실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다시 건물로 들어서면서 <그럼 가장 가까운 화장실을 이용해볼까?>라고 중얼거린 후 잠에서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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