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파의 제국(왜 기독교가…)

한국문화에 대하여 그다지 떠벌릴 개재가 못됨에도 나는 우리나라를 <시아파의 제국>이라고 감히 말한다.

떠벌릴 개재가 못된다함은 우리의 고전에 대한 나의 치명적인 무지를 말한다. 비록 몇권의 책을 읽었다고 치더라도 이 책들이 理發이고 氣發이고 씨발이라는 글이라면 <순수이성비판> 딸랑 한권 읽고 서양문화를 알았다는 이야기이고, 김시습이나 허균이나 어쩌고 저쩌고 해도 그들이 문화적 대표성을 지니지 못하는 양반이며, 보유하고 있는 신화 또한 독자적인 신화의 틀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석연치 않은 점, 결국 내가 읽은 토착적 문화의 근친성은 판소리의 <변강쇠뎐> <적벽가>와 같은 해학성이 짙은 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한국문화의 실체성을 찾아보기 위해서는 학술적인 근엄함보다도 밭갈고 논에서 피를 뽑고 주막에서 주모의 엉덩이를 두드리던 그 손과 방앗간·뽕밭의 밀어와 시정잡배들의 농지꺼리, 정경부인과 마당쇠의 뜨끈한 그 날밤의 연분이 몸의 이야기이며 거기에 굶주린 이야기며 난리 이야기, 저자거리의 풍경이 포개지고, 노래가락이 울려퍼지면 그것이 문화인 데, 나는 서민들의 고전을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무지 속에서 우리나라를 <시아파의 제국>이라고 장님 코끼리 더듬듯 씨부리고 있다.

동양의 문화를 이야기할 때, 중국은 시발역이며 일본은 종착역, 한국은 단지 스쳐지나는 역으로 단순 도식화 한다. 중국은 창진적으로 문화를 형성하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서 얼마동안 사용한 뒤 일본으로 보내면 일본은 사용한 뒤에도 더 이상 보낼 곳이 없어서 계속 사용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얼마나 우스운 이야기인가? 이것은 헤겔이 역사는 동에서 서로 이동하여 게르만 민족에서 완성된다는 제국주의적 역사관의 차용일 뿐이다. 그러나 중간기착지와 같은 현상이 끊임없이 한반도에 있어왔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삼국이 정립하면서 토착문화가 불교에 의하여 밀리고, 유학이 밀려오면서 불교가 쇠퇴하며 또 서구문물이 들어오며 유교적 전통이 맥도 추리지 못하고 밀리는 이와 같은 현상은 어디에서 오는 가? 바로 문화를 담는 그릇, 문자가 부재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사실 <정통>이나 <원조>는 없다. 단지 <할매곰탕집>이 있었는 데, 그 옆에 신규 <할매곰탕집>이 생겨나면 원래있던 할매곰탕집에서는 <원조>라는 간판을 올린다. 그러니까 <정통>은 <가짜>라고 여겨지는 것에 의하여 생겨나는 대립항일 뿐이다. 본시 회교정통주의인 <수니파>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시아파>가 득세함에 따라 분파주의라고 떠들기 시작하면서 정통주의 <수니파>가 역으로 생긴 것이다. 그러니까 <좌익>이 생김에 따라 <우익>이 생기는 것과 동일한 이치이다. 그런데 문제는 원조가 아닌 할매곰탕집은 원조보다 맛이나 서비스에 더욱 신경을 쓸 수 밖에 없고, 시아파는 수니파에 비하여 훨씬 교조적이며, 좌익은 더욱 이데올로기적일 수 밖에 없다. <가짜>와 <분파>와 <좌익>은 비주류이다. 비주류가 주류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은 원리주의적인 면이며 마이너리티의 특성 상 치열하며, 조직 내부의 응집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외부의 자극에 관대할 수 없다는 특성을 지닌다.

이것은 기독교의 신교(프로테스탄트)와 신교의 출현에 의하여 정의된 구교(카톨릭)의 특성에서도 선연히 드러나는 점이다. 신교가 몹시 고집스럽다면, 구교는 몇가지 핵심 사안을 빼놓고는 여타 사안에 대하여 몹시 관대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면 왜 우리나라가 <시아파>냐 하면, 시아파는 이란에서 발생된 분파이다. 고도로 종교적인 민족인 페르시아인(이란인: 혈통상 인도와 가장 가까운 아리안족)이 유목 종교이자 민족적으로 다른 아랍의 회교를 받아들이고 고착화하는 과정에서 강권적인 원리주의에 입각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있었다. 즉 회교는 베드윈이 방랑하는 사막에서 태어나 그들의 혈통 속으로 깃드는 종교이나, 페르시아인들의 대지와 그들의 피 속에는 회교에 대한 연고권이 없는 것이다. 그렇듯이 한반도에 흘러든 불교나 유교, 기독교 모두 우리와는 아무런 연고가 없다. 그래서 생짜배기 외래문화를 받아들이고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시아파>적 속성을 가질 수가 있다. 그러나 이란과 우리나라는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에는 다른 점이 있다.

이란은 주변 아랍문명에 대하여 역사 종교 문화적 선진지역이었음에도 회교가 강제적으로 이식되었다면, 우리의 그것들은 중국에 비하여 낙후되고 초라하여 능동적으로 중국의 문화를 수입하는 입장이었다는 점이다. 강제적으로 이식이 될 경우 문화의 취사선택은 불가능하지만, 우리의 경우 취사선택의 가능성이 있었을 뿐 아니라 수용력에도 한계가 있었다. 문화적 백그라운드의 후진성, 인구수, 식자율에 있어서의 중국의 방대한 문화를 담지할 능력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불교가 들어오자 토착문화가 씨가 말랐고, 선종이 들어오자 교학이 말랐고, 유교는 불교를 짓밟았다. 그러나 중국의 민중문화의 저류로 흐르던 도교문화는 전혀 유입되지 않았고, 수입된 유교를 보더라도 성리학의 기초가 되는 한당조의 경학은 금시초문이요. 박학과 실용을 바탕으로 하던 정도전의 학문은 권력 투쟁의 과정에서 쇠하고 조광조가 소학적 도덕주의가 산림(지방유생)에 습합되면서 실용은 뒷전이고 윤리의 근간이 되는 사단칠정을 놓고 사단(인의예지)은 이가 발(理發)한 것이요, 칠정(희노애락애오욕)은 기가 발(氣發)한 것이요, 아니 그것도 아니요 하면서 급기야 송시열에 이르러서는 형식적 예교주의에 이르러 삼년상이 가하다 아니다 하며 사약이 오고 가고 하더니만 이도저도 모르겠다 에라이 씨발(始發: 처음 시작하다)이다 하며 다산의 경학으로 넘어간 셈이다.

이러한 조광조의 개혁 실패에서 출발한 이조 중엽의 산림(학생)을 중심으로 시작하여 집권층(당파)에 까지 번져나간 이발기발시발을 바탕으로 한 헤게모니 논쟁은 80년 5월 15일 단행된 서울역 회군의 <전술적 과오>를 놓고 서울대 운동권에서 벌어진 격렬한 논쟁, 이른바 <무림-학림 논쟁>, 줄여서 <무학논쟁>과 그 후의 다기한 운동권의 논쟁과 닮아 있다. 운동권 내부의 이론투쟁을 넘어 헤게모니 싸움으로까지 번진 이 논쟁은 <무림·학림사건>으로 표출되고, <야비-전망 논쟁> <깃발-반깃발 논쟁> 등으로 심화·발전한다. 1980년대 학생운동권을 뜨겁게 달군 <C-N-P 논쟁>과 <NL-PD-CA>로의 세력 분화도 따지고 보면 이 <무학논쟁>이 배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데, 어찌 그리 조상님네들과 유사한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즉 이조시대나 권위주의시대나 이론적 무결점주의를 바탕으로 헤게모니를 쥐어야겠다는 원리주의(시아파)적 투쟁정신은 여전한 것이다.

그러면 다시 문화의 흐름에서 한반도가 <중간역>이라는 논점으로 돌아가 보자. 왜 서울은 비대해져 가고 종착역인 부산은 그만 못해도 클만큼 컸는 데, 대전찍구 대구는 그만 못한 것이 단지 열차가 스쳐지나는 <중간역>이라는 그 이유 단 하나 때문인가? 아닐 것이다. 분명이 다양한 요인들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나는 한반도가 <중간역>이 된 이유는 문화를 소화할 능력이 없어서 다른 문화가 들어오면 그냥 배설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말하고 싶다. 이 소화능력이란 다름 아닌 자국의 <문자>이다.

일본이 개항했을 당시(1854년)에 페리제독의 미시시피호에서 내린 선원들은 이 야만적인 쪽발이의 섬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남자들의 60%, 여자들의 30%가 글을 읽을 줄 안다는 것이었다. 페리제독의 선원들은 열놈 중 한두놈이 간신히 글을 읽을 줄 알았을 것이다.

일본은 이미 헤이안조인 9세기경에 히라가나(平假名)와 카타카나(片假名)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자국의 소리로 와카(和歌)뿐만 아니라 일기, 수필, 모노가타리(物語:이야기, 소설) 등을 쓰기 시작했으며, 이미 11세기에는 장편소설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와 수필 마쿠라소우시(枕草子)등을 산출해내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는 한문을 가지고 불과 몇사람만 읽을 수 있는 삼국유사를 짖고 있었을 따름이다.

그리고 1446년에 이르러 훈민정음이 반포되었는 데, 정음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글을 짖고 하면서 제 뜻을 펼쳤는 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단지 언문교지가 있고, 홍길동이 지어지고, 규방에서 소설이 읽혀지고, 서간문이 지어진 것은 알겠으나 그것조차 양반님네의 전유물이 아니었던가 싶다.

일본에서는 가나(假名)가 민중에 보편화되어 민간전승과 신화와 소설들이 채집되고 외래문화와 혼효되면서 토착적 문화를 형성하고 무속적인 요소가 아미테라스오오미가미(天てらす大神) 속으로 흡수 통합되면서 신도라는 토착종교로 자리잡고 불교와 병립하면서 외래문화와 토착문화가 켜켜로 살을 섞어왔는 데, 이 한반도는 한문으로 된 외래문화가 들어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다른 외래문화가 오면, 한문 그대로 1 Set로 유실되어 버리는 순환을 계속해 왔을 뿐 아니라 하류의 민중의 문화와 상류의 귀족 또는 양반의 수입문화가 섞여보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중국과 일본의 기독교 인구는 2% 정도인 데, 왜 한국에서는 그토록 번창하고 그토록 치열한 것인가를 생각해보자. 기독교인들은 다 신의 은총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할 말 없고… 그러나 성경이 한글로 번역(1877년 로스와 이응찬 번역 시작)되어 보급되던 시점과 외세가 침노해 들어오면서 우리의 민족문화가 말살되던 시점과 묘하게 겹치고 있다. 또한 그 시점에 맞추어 한문이 밀려나가고 한글이 정착되고 식민지가 시작되었고, 공인역을 바탕으로 1938년 한글개역성경이 나오더니 태평양전쟁이 터지고 광복과 함께 양키와 츄잉껌과 밀가루와 콜 게이트 치약과 럭스비누와 선교사와 한글성경이 살포되면서 예수교가 지식인을 이끌었고 지식인은 일반인을 끌고 당기고 하면서 기독교로 함몰되어 갔다.

그러니까 기독교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된 데는 자국의 글(한글)을 바탕으로 한 서민문화가 부재한 상태에서 식민지의 문화말살 정책이 시행되었고, 한문과 함께 중국으로 대표되는 외래문화의 유출에 따른 문화적 공백에 서구과학문명과 한글화된 기독교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주역을 읽고 이해하지 못한다. 사서를 읽으면 고리타분하다. 불경을 읽으면 해롱댄다. 단군신화에 대해서는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에는 그럴 수도 있다고 한다. 성경책을 읽으면 그럴 수도 있으며 자신이 자칫 잘못하면 지옥으로 갈 수도 있을 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서구의 과학을 합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육체는 동양인이며 정신은 서구인이다. 그것도 <시아파>적으로 골수다.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旅인 09.06.05. 09:49
    여기에서 시아파라는 개념은 원리원칙적, 좌파라기 보다 어떤 면에서 수구적인, 파당적인 잔혹성을 띠고 있는데… 그 이유는 내적인 공허감과 그 공허감을 바탕으로 한 끊임없는 욕심 그리고 철저한 배타성을 갖고 있습니다. 문화적인 다양성과 무늬가 부족하여 자기가 아는 것만이 길이요 진리라는 것만큼 무서운 논리는 없습니다.
    ┗ 이슬 09.06.05. 10:17
    자기가 아는 것만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정말 무서운 논리는 없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자들이 뭉친 집단은 정말 무섭죠. 그 안에서 누군가가 다른 문화적 다양성과 무늬를 보고 그것을 인정하고 수용한다면 그 누군가는 매장당하는 게 현실… 여인님 글 잘 읽었습니다.^^
    ┗ 다리우스 09.06.05. 10:47
    왜 우리나라가 시아파의 제국인지, 천천히 잘 읽어보렵니다.

    유리알 유희 09.06.05. 12:26
    지역, 언어, 구조, 그리고 역사를 아울러 시아파, 의 정의를 내려 주셨군요. 제게는 생소한 파, 였고 그것이 그리 좋은 의미가 아닌지라 씁쓸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시아파적인 민족일까요.
    ┗ 旅인 09.06.09. 16:51
    한번 이렇게 그려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속성이나 태도 이런 것을 보면 시아파적인 특성은 분명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아파가 나쁘다는 것만은 아닙니다. 역동성 등의 면에서는 대단한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지만 사회가 들끓는다는 점이 있지요.
    ┗ 유리알 유희 09.06.10. 01:15
    네, 들끓음이 저는 좀 버거워요. 여인님!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너무 수동적인 태도를 지닌 , 어쩌면 경계인인 탓인지도 모르겠어라. ㅜㅜ

    엘프 09.06.05. 11:54
    아~ 시공간을 지르는 해석을 즐겼습니다. 여인집에게 국사를 배웠었더라면… 연도와 사건을 디립다 주입시키는-예를 들면 몇년도에 뭐? 하는 식이었죠.ㅋ- 국사시간이 재미없고 그래서 국사에서 관심이 멀어졌었는데.. 선생님 잘못만난 탓을 해봅니다^^
    ┗ 旅인 09.06.09. 16:49
    저도 국사는 잘모릅니다. 그리고 제 글이 상당히 단순 도식화되어 비난받을 만한 구석도 있고, 시아파와 중간역 개념도 다른 사람의 쓴 글(누군지는 기억안남)에서 차용한 것입니다.

    라마 09.06.05. 15:42
    이발기발시발. ㅋㅋㅋ. 시아파=볼셰비키=북한공산당=남한(갱상도)공산당=기독교종교재판소=프랑스국민의회파…

    라비에벨 09.06.08. 17:32
    잘 읽었습니다… 이젠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전도 선교위주의 교회 방향도 다시 정립되어져야 될것같습니다. 어쩌면 시아파적이 못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 旅인 09.06.09. 16:47
    사실 저의 글도 어느 면에서 도식화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목사님의 주관적인 설교나 교리 중심에서 성경 그 자체를 통해서 예수님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릴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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