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기억의 22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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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 강물이 허연 김을 풀어내며 얼어붙지 못한 채 겨울의 바닥을 기어가고 있는 지 아는가? 자신의 대륙을 떠나온 새가 캑캑 울며 불면의 밤을 지새우다 죽어버린 이 낯선 섬. 섬이라고 부르기에 너무 옹졸하여 대신할 이름을 찾지 못하여 강이 뻘을 토해낸 이 곳에서 은행나무 잎이 모두 떨어져 내리고 더 이상 추위를 피할 곳을 찾지 못할 때, 강물마저 얼어터져 버린다면 추억을 매장할 외로운 어느 곳을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사공은 강 건너편에서 잠이 들었고, 물에 젖은 검불더미로는 불을 피울 수 없었다. 추위를 면하고자 시간이 남기고 갔던 사랑이라는 것에 마지막 불을 붙였다. 네 편지 속에 깃들었던 향기는 유황냄새 속에 스며들고, 쓰여있던 단어들이 빠지직 거리며 타올랐다. 함께 연기를 피우던 젊은 열정과 짧았던 행복 위로 낙엽과 잔가지들을 덮었다. 따뜻한 온기가 뼈 속까지 밀려왔고 곱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허망 속으로 밀어 넣자 개암나무 가지 타 들어가는 냄새가 섬에 가득했다. 화장한 편지의 뼛가루가 어둠 속으로 밀려가고 핏줄 속에 온기가 돋자 드디어 나의 손이 배반하였다. 가슴과 머리로는 알았지만 쓰지 못했던 마지막 단어를 기억해 낸 한 손이 사랑한다 썼고, 들을 지나던 바람은 보고 싶어 소리쳤다. 그러자 잊혀지지 않고 어둠의 한 구석을 밝히던 너의 얼굴이 서릿발처럼 나의 왼쪽 눈에 와 박혔다. 떠나야 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거야. 곁에 있으면서도 사랑하지 못한다면 저주할 수 밖에 없어…라는 너의 말 속에서 다시는 볼 수 없는데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저주라는 것을 배웠다. 토사가 내질러 논 이 망각의 섬은 이름조차 없고, 내일이면 안개에 뒤덮여 사공조차 찾지 못하겠지만… 얼지 못한 겨울과 불모의 거친 섬과 잊혀질 수 없던 저주를 향하여… 우표조차 용납되지 못했던 기억의 22장 10절을 찢어, 꺼져가는 시간에 다시 불을 붙였다.

This Post Has 2 Comments

  1. 旅인

    다리우스 08.12.22. 16:55
    사랑의 무인도로 부터 온 편지 한장 잘 읽습니다.
    ┗ 旅인 08.12.22. 18:38
    수취인 불명… TT

    샤론 08.12.22. 19:23
    낙엽 한장이 참 운치 있습니다…자알 읽었습니다.. 꼼꼼하신 분 맞으시지요? 글씨 배열이 아주 꼼꼼하게 느껴져서 …..
    ┗ 다리우스 08.12.22. 22:27
    낭만파 중에 낭만파시랍니다, 알고보면,,,
    ┗ 旅인 08.12.23. 00:01
    맞습니다. 여유가 있는 듯하고, 남들도 대충 대충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나를 떠나서이고… 저는 정리되어 있는 것이 편합니다. 하지만 그 정리라는 것은 언제든지 부서질 수 있다는 것, 돌아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유리알 유희 08.12.23. 01:27
    22장 10잘에 다시 불을 붙였으니 그럼 올겨울의 연가는 활화산인가요? ㅎㅎㅎ. 이런 편지를 받으면 어떤 기분일까요? 받아보지 못해 모르겠어라.
    ┗ 旅인 08.12.23. 15:52
    이런 글은 신경계 철분 결핍증의 발작 증세로 해서 쓰여지는 글이니… 이런 편지를 받으면 닭살 아닐까요? ^^ X 2

    아르 08.12.24. 09:05
    신경계 철분 결핍증의 발작 증세로 씌여진 기억의 22장 10절 감동이 철철 넘쳐흐릅니다 그리고 단아한 구조속에 뜨거운 열정을 읽습니다 메리 클수마스 여인님 ~^^
    ┗ 旅인 08.12.24. 11:19
    아르님도 저의 열정으로 따스하고 즐거운 성탄절을 맞이하시길…^^

    집시바이올린 08.12.24. 22:42
    와우~ 넘 멋지다…..글도…낙엽도…글 배치도…이런 글은 어디에 숨어있다가 한꺼번에 떼로 몰려 다니는걸까요 (레테안 곳곳에…) 몇 번식 들락이며 감사히 잘 읽습니다. 달랑 퇴색된 낙엽 하나가 너무 운치있고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 같군요 너무 좋습니다. 그리고….부럽습니다. ^^;;
    ┗ 旅인 08.12.26. 18:23
    저 사진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사진에서 배경색을 쏙 빼서 올린 것입니다. 우연히 저 글하고 매치를 시켜보니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집시님! 때로 사람들이 철없는 글도 쓰고 해야 살아있는 느낌이 들겠지요?^^
    ┗ 다리우스 08.12.27. 02:26
    콘트랙트를 쓰실줄 아시는군요 흐흐흐
    ┗ 旅인 08.12.27. 15:24
    콘트랙트는 잘 모르는디라우~? ㅜㅜ

    스윗 노벰버 09.01.11. 16:40
    “가슴과 머리로는 알았지만 쓰지 못했던 마지막 단어를 기억해 낸 한 손이 사랑한다 썼고, 들을 지나던 바람은 보고 싶어 소리쳤다.” 너무 멋집니다, 여인님^^, 대학시절 좋아했던 사람은 말이 별로 없는 유쾌한 사람이어서 개인적인 감정 드러내는 걸 제가 잘 구분 못했거든요. 그냥 여동생처럼 쳐다보면서 웃기만 하던데…빤히 쳐다보면서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다”…이 말만 하면서. 벌써 제 나이가 이렇게 됐네요. 진짜 좋아하면 말 잘 못하는 거겠죠? ㅜㅜ
    ┗ 旅인 09.01.11. 20:56
    가슴이 먹먹해지겠죠. 그래도 느낄 수는 있겠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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