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어느 날 아침

언제부터인가 잠이란 늘 부족한 것이 되었다. 새벽이면 잠들어 있는 육신으로부터 빌어먹을 정신이 벌떡 일어나 뼈와 살과 근육을 덜그덕거렸고 낮이면 피로에 찌든 몸뚱이가 정신을 끌어내리고 했다. 이것이 육신과 정신의 배반이다. 이유없는 깨어남에 정신 또한 피로하여 기억력과 명징이 사라지고 육신은 피로에 만성이 되었는 지 침대에 몸을 뉘어도 나른한 감미로움을 더 이상 생각할 틈도 없이 혼곤한 잠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침은 풀어지지 않은 피로를 안고 늘 달려오곤 했다.

오늘도 필요없는 시간에 아무 이유도 없이 깨어났고 정규방송도 시작하지 않은 TV를 켜고서 보다 말 영화를 들여다 보다가 그냥 출근하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며 졸았고 내 몸은 가속과 감속 사이에서 메트로놈의 추처럼 흔들렸을 것이다. 처음의 졸음은 아홉의 역을 지났고 다음은 여섯의 역, 다음 세개 역으로 졸음의 길이는 내려야 할 역으로 수렴하며 짧아지고 있었다. 그 사이에 내 옆의 사내는 여자로 바뀌었고 맞은 편의 사람들은 근엄한 표정 아니면 <에라 나도 몰라> 라는 입 딱 벌리고 머리는 뒤로 제쳐진 자세 혹은 눈 만 가볍게 감은 자세로 졸고 있었다. 나는 어떤 표정과 자세로 졸았는 지에 대하여 개의치 않고 지하철을 내렸다. 그리고 계단을 따라 지상으로 올라갔다.

마침내 지상에 올라서자 일곱시의 아침이 이 도시로 소리없이 진군하고 있었다. 유월의 아침은 여느 때의 아침과 달라서 대지 위에 내렸던 이슬이 아침 햇볕에 마르는 훈기로 미적지근해지면 도시의 빌딩 등걸에 아침 햇살은 점점 짙어지고 나무의 잎새들은 뚜렷해지는 것이다. 그런 하루의 언덕 위에서 자신의 하루를 찾아가는 우울한 행인이 나타나면 잊혀졌던 세상과의 유대가 불현듯 떠오르고 이 도시를 감싸고 도는 매연과 피로한 일상마저도 감내하기에 너무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이다.

오늘 하루 덥겠군. 유월은 여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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