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계도-1: 꽃 비가 내리는 세상을 위한 변주

一曲: 法性圓融無二相, 二曲: 諸法不動本來寂

수냐는 모든 것을 포괄하나니 천차만별 현상세계 또한 고요일 뿐

그 해 겨울은 유폐되었고 추락하지 못한 눈(雪)이 가슴에 결박되어 개나리는 피지 않았다. 문풍지로 막았던 사물의 운동에 관한 서글픈 韻文을 읽고 지나던 예언자가 인력과 제 2법칙 등은 우주의 힘줄이자 내장과 관절이니 네가 어디를 회쳐먹겠느뇨라 했고, 寂寞을 요구하자, 덧문이 활짝 열렸다. 날은 맑았고. 시방삼세 위로 꽃 비가 내린다. 봄이었나봐. 태허로부터 浮生을 들고 먼지와 안개가 가득한 도시를 지나 피로한 포구에 멈춰서니, 파도에 당신의 숨결이 밀려왔고 “연꽃 속의 보석이여”라는 悅樂의 주문이 열렸다. 갈증에 가득하여 손길을 바다 위에 펼치자 욕정은 비린내로 포구를 채웠고 허기진 번뇌가 벌떡이며 뭍으로 올랐다. 바람은 열기와 추위를 비벼댔고 베개는 영글지 못한 꿈으로 범벅이었다. 갯가로 나가 소라껍질에 새겨진 시각의 골을 더듬자 대양을 건너온 그대의 육신이 나의 조그만 영혼에 포개졌다. 당신과 나 어느 것이 차마 나인지 알 수 없었고, 해양과 육지와 생명, 온갖 문명은 빛 속에 사라지다.

OM MANI PADME HUM

三曲: 無名無相絶一切, 四曲: 證智所知非餘境

개념과 형태가 없으니 경험할 수 있어도 나(我)로서 다가갈 수 없어라

마음 속으로 들어가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이 풍경소리에 졸고, 자유를 탐욕한 고양이가 큰 길을 넘었던 罪로 타이어에 깔려버렸다. 우리의 신화란 빈곤하기 그지 없어서 공중에 들떠버린 돌로 응결된 사랑은 천년동안 땀을 흘렸고, 마침내 맹인은 시외버스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길 가는 행인들은 한숨을 동냥했고, 온갖 시간으로 그려진 버스정류장과 지하철 승강장, 세계로 다가갈 통로는 신작로와 뱃길이라는 선분들로 그려진 피리소리를 들었지만, 맹인의 곁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들에 내려앉았던 찬란한 광채와 이정표에 쓰인 글자는 아니었다. 단지 사랑을 잃어버린 시인의 낡은 편지를 집어들고 공원 벤치에 앉겠거니와 봄과 광합성으로 푸르러진 잎은 이제 태양이 다시금 싱그러워졌다고 새와 함께 노래한다. 눈물이 두 방울 얼룩져 있는 편지는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었다.

阿耨多羅三藐三菩提

五曲: 眞性甚深極微妙, 六曲: 不守自性隨緣成

아얄라의 바다는 깊고 고요하여 모든 오고 감을 다 비추이다

환생을 보기 위하여 숱한 나날들의 음악을 들었노라. 천년 만의 해후 속에 당신을 알아볼 수 없어 죽음에 한 발 다가섰고 지하철은 종점을 한 정거장 만 남겨두었다. 술 취한 연인이 짙은 키스를 하고 있을 때, 계단은 통속적이어서 더 이상 지상으로 올라갈 수 없었던 여인의 짧은 치마 속으로 緣起의 바람이 스쳐 지나고 혹은 배 다른 종자(異熟)를 잉태하였을 지도 모른다. 아아! 부질없는 짓거리. 술에 취하여 오늘 애절한 戀書를 보낸다. 그대가 읽을 때에는 딴 여인과 통정하고 있을 지 모르는 법. 무엇을 사랑이라 노래할 것인가? 그리하여 천년의 기다림은 단 한 순간에 명멸하노라.

無明·行·識·名色·六處·觸·受·愛·取·有·生·老死

七曲: 一中一切多中一, 八曲: 一卽一切多卽一

인드라의 그물에 빛이 떨어지니 한 구슬에 모든 구슬의 빛이 어리고

안과 밖. 어둠으로 분별할 수 없어 소리를 따라 4악장까지 갔을 때, 등대는 늦은 불을 밝혔고 사막의 맞은 편 당신의 눈물에 빛이 맺히니 사망으로 음침했던 가슴이 다시 움직였다. 생명은 또 다른 음율로 세상을 창조하였고 나는 <神> 당신이라 말한 후, 저주의 땅을 건너 가장 허접한 것 속에서 티끌로 휘날리고 있었어.

至心歸命禮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達摩耶衆

九曲: 一微塵中含十方, 十曲: 一切塵中亦如是

티끌 하나가 온 우주를 담았고 우주의 모든 것에 또 우주가 포개지다

도시란 말할 수 없어 건물 벽에 부딪는 오후를 보러 강 가로 간다. 시간은 하늘에 멸망을 버무리고 있었고 나는 외로움에 견딜 수가 없었다. 드디어 밤이 온 은하와 함께 몸을 씻고 아무도 없는 침전은 곰팡이가 핀 밀어로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계곡과 수풀과 반딧불이와 그 많은 생명의 이름을 어찌 알 수 있으며 사랑을 어느 이름으로 담을 것인가를 토론할 때, 창 밖에는 꽃 비가 내렸지만 관념 속에 사랑이 내려앉지 못하듯 이 도시의 아스팔트 위로 태양 만이 녹아나고 있었다.

不生不滅不斷不常不一不異不來不去

<義湘의 卍華에 핀 우주의 진리에 대한 노래 중 첫 열구비 變奏>

<爾流>狂譯 및 주절거림

참고 : 화엄일승법계도

This Post Has 7 Comments

  1. 旅인

    전갈자리 08.10.28. 17:50
    직접 해석을 하였나요. 절창입니다. 퍼가도 괜찮겠죠.

    이류 08.10.28. 18:39
    법계도의 7자 30구에 대해서만 해석을 했습니다만, 본의와 맞닿아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퍼가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결이 되지 않고 계속 수정 중입니다.

    다리우스 08.10.28. 23:25
    시구들이 기이한 운행을 하는 것을 봅니다. 조금만 더 지나면 독특한 문체로 자리할 것이 보이는 듯한데, 아뿔사 2005년이군요.^^; 거대한 뭐랄까? 법계를 아우르는 풍경도? 가 파노라마적으로 펼쳐져 있어 단테의 신곡 등이 비견될 지경입니다.
    ┗ 이류 08.10.29. 00:25
    무슨 말씀을… 제 문체를 연구하고 있습니다만 잘 안됩니다. 조금더 나아가야 할 듯 한데 길이 먼 것 같습니다.

    truth 08.10.29. 02:19
    조회수 0일때에 읽었는데..뭐랄까 뚜렷하게 이해가 안되서 어렵다생각하고 다시 읽어봐야지..했거던요..머릿속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읽어가는지라..그림이 아직 미완성상태입니다. 내일 다시 대하겠습니다.^^ 노력하는 트루쓰..^^;;
    ┗ 유리알 유희 08.10.29. 09:45
    미투입니다. 그러나 아하! 하고 유희는 감탄했답니다. 운율이 있는 산문이었고 기막힌 메티포였고… 박상륭님을 아시겠지요?
    ┗ 이류 08.10.29. 09:53
    트루쓰님처럼 그림으로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유희님 박상륭님은 전혀 모르는데 그분의 글이 저런 식인가 보지요?
    ┗ 이류 08.10.29. 13:17
    유희님, 찾아보니까 박상륭씨는 소설가이신 모양이네요. 최근에 읽은 책들이라곤 김훈씨의 글 정도 밖에 없으니. 한번 읽어보아야겠습니다.
    ┗ 유리알 유희 08.10.30. 01:23
    죽음의 한 연구, 그 책을 한번 펼쳐 보시길요. 이류님!
    ┗ 이류 08.10.30. 10:31
    메모를 해놓겠습니다.

    지건 08.10.30. 00:56
    웁쓰~~~^-^

  2. ree메인

    한자(漢字)의 깊은 뜻과 그 자태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모르는 한자가 가득한 글을 만나게 되면… 다행히 인터넷에 검색하면 하나하나 알아볼 수 있는 세상이기에
    이렇게 평상시라면 접할 수 없는 문장들을, 그 뜻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보는 기회를 얻었네요^^

    근데~
    어렵습니다. 어렵..네요…^^;;

    한자라는 문자도
    그 사물의 본질과 어떠한 규칙성에서 연계된 기호이기때문에
    가끔은 어떤 이미지를 생각하며 수없이 오고간 선들이 그 사물의 본질을 닮아,
    어떤 문자의 느낌을 주는 것 같은 ‘신호’를 발견하곤 해요.

    그런 신호가 되어줄 맘에든 기호들 몇개를 세기고 갑니다.

    ‘卍’ 만자 만 : 만자(卍字: 부처의 가슴에 있는 길상의 표시)

    ‘화엄일승법계도’라는 참고 링크에 있는 그림에서
    나열된 문자들을 연결한 선이 그리는 ‘또 다시 卍자를 연상시키는 빨간 선의 흐름.’

    분명, 눈에 보이는 글귀들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함축되어 있겠지요
    헤아려지지 않는 부분들을 가슴에 와닿는 저의 단어들로 메꾸어 상상해 봅니다

    그물, 구슬, 소리, 눈물, 티끌, 건물, 오후, 외로움, 은하, 몸, 태양…

    이 오래된 페이지도

    언젠가,
    그 언젠가의 행로에 어울리는 그림으로 그려질 지표가 되어줄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1. 旅인

      한자 또한 정보전달 체계인 언어의 한 도구라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점을 신비화하려는 것은 극히 경계해야 합니다. 이 법성게에는 독해하기에 몇가지 난점이 있습니다. 화엄세계라는 것이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과 온 우주라는 공간이 부처님이 설법하는 순간, 그 자리 그 시간에 응축되어 있는 상태로 사람의 말로 표현 불가능한 세계라는 점이며, 화엄경이라는 방대한 경전을 이 짧은 시(論)으로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불교 용어 자체의 난해성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글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우리 말이 아닌 한자어라는 점은 이 법성게의 해석을 난공불락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분노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우리나라 불교계나 학계에서 이 법성게나 화엄일승법계도 총상 등에 대하여 만족할 만한(이해할 만한) 번역서 하나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실정입니다.
      이 화엄세계는 보르헤스의 ‘알레프’라는 소설에 그럴듯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3. ree메인

    여인님의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보면서..
    저도 왠지, 제 블로그에 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번엔 제 개인 블로그주소로 댓글을 남겨 봅니다.

    커다란 우주선을 만난 기분입니다 여러 은하를 항해해온 흔적이 묻은,
    그리고 여전히 작동할 것만 같은
    작은 시절부터 간직한 커다란 우주선을
    마주한 듯한.

    1. 旅인

      우리는 지구라는 곳에 있지만 늘 우주를 가로질러 가고 있지요. ree메인님이 블로그에 글과 그림을 계속 담아가다 보면, 누군가는 거대한 우주선을 만났다는 느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공자님께서는 ‘뒤에 오는 자를 두려워하여야 한다(後生可畏)’고 합니다. 저도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님을 지켜보고자 합니다.

  4. 흰돌고래

    주말 아침, 여인님이 남겨주신 트랙백을 타고 들어와 법성계를 살핍니다.
    법성계를 법계도 라고도 부르나 보네요.
    법성계를 처음 사경해 볼때는 도무지 한자를 읽을 수가 없어서 쓰면서도 과연 눈에 익는 날이 올까 싶었는데, 그래도 서른 구절을 외워놓은 (한글로만 ^^) 덕분인지, 한자만 보고도 음들이 생각이 나네요.
    영인스님의 법성게 우리말 번역을 듣고 글을 읽어 보는 중인데…
    무언지 알수는 없지만 마음 한켠이 포근해져오고, 굉장히 진중할 수 밖에 없는 자세로 듣게 됩니다.

    여인님이 아래에 쓰신 글들은 그 뜻을 명확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한편의 소설 같기도 하고 시 같기도 합니다.

    1. 旅인

      아무리 번역을 잘해도 세존의 가르침에 가 닿을 수 없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부처님의 팔만법문을 한역한 쿠말라지바나 당현장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소식을 접한 바 없으니 우리의 이해란 결국 오해라는 이 무명의 바다를 어찌 지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의상스님께서 화엄의 요의를 법성게로 간추리고 그 칠구로 된 30게를 卐자로 법계의 모습을 드러내니 화엄일승법계도입니다.
      마음이 편안하다면 공덕이 있는 모양입니다.
      아마 화엄경에 나오는 선재동자처럼 사랑과 죽음, 유한과 무한 사이를 여행하는 이야기를 그리려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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