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카다브라&아프락사스

본래 이 글은 <악에 대한 단견>이라는 제목으로 쓰여졌다.

5월이 다 지나감에도 창 밖에 장미는 피지 않았다. 지난 해의 무성했던 장미꽃들이 올해는 더욱 창성하여 서로를 해하고야 말리라는 것 때문에 우리의 창에 늘어져 있던 가지들은 잘리고야 말았다. 하지만 나는 장미꽃이 피어나 여름 아침의 싱그러운 이슬을 예언하고 낯의 투명한 태양 아래 붉음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알려주기를 꿈꾸었다. 장미가 피지 않는 창 가는 아직도 여름이 먼 듯 했다.

나의 눈은 너무 좁아서 늘 보는 것만 볼 뿐 더 이상 확장되지 못하였다.

담배를 피우러 나간 나는 불현듯 이층에 피어있는 장미를 보았다. 한줄기의 가지가 땅에서 벽을 타고 올라 이층의 난간에 아슬하게 매달려서도 여러 가지로 분절하고 또 꽃들을 피우고 있음에서 생명의 강고함을 보는 것이다.

그 장미를 마주함으로써 이제야 여름이 짙은 열기로 다가올 것을 나는 예감할 수 있었다.

ABRACADABRA  &  ABRAXAS

관념 또한 나의 시력처럼 폭이 좁고 제한적인 것이다. 사실 분별심이라는 것이 <나>라는 것에서 분절될 수 밖에 없는 것은 분절된 소기(所記)의 얽힘 속에서 <나>를 가설(假設)하였고 <나>란 연기소생(緣起所生)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惡>이란 사유되지 않고 단정된 것이었다. <善>이란 어떤 경우 뚜렷한 실체가 있어서 선이라고 불리어지기보다 단지 <악>의 반대이기에 선함으로 인정되는 경우도 있다.

아프락사스(Abraxas)란 데미안에서 신비주의적 전일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상징적 과제를 가지고 있는 신성>으로 작품에서 소개되고 있다. 어떤 글에서는 <아프락사스란 이집트 영지주의자(Gnosist) 바실리데스(Basilides)에 의하여 만들어진 말로 고대인들에 의하여 일곱가지의 창조력 혹은 행성의 천사로 인식되어진 일곱 글자로 이루어진 언어적 상징>이라고 한다.

출전을 보면 바실리데스파 영지주의파에서 질병이나 불행으로 부터 지켜달라고 할 때 쓰던 주문이 바로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이며, 이 부적은 아브락사스(Abraxas)의 돌에서 발견된다. 그러니까 아프락사스란 연금술의 <현자의 돌> 아니면 해리포터의 <마법사의 돌>이며, <치유의 돌>이다.

바실리데스(120년경)는 <가현설(假現說, Docetism)>을 주창한 사람으로 요한의 편지에서 볼 수 있는<적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그는 <그리스도는 고난받지 않고 구레내 시몬이 그리스도를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도록 강요받고 그 순간 시몬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가진 나머지 다른 사람들이 그를 그리스도로 알고 십자가에 못박았다. 그러나 예수 자신은 구레내 시몬의 모습을 취하시고 거기 계시며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그 사람들을 비웃었다>고 말했다.

물질세계가 비실제적이며 본질적으로 <악>하다는 바실리데스파의 영지주의의 견해는 더 나아가 비실제적이고 근본적으로 악한 것은 참된 하나님에게서 창조되었을 리가 없다는 식으로 하나님의 창조론을 붕괴시켰다. 가현설을 더욱 전개한다면 플로티누스의 태양에서 빛이 방사(Emanatio)되어 어둠까지 이른다는<一者 流出說 : Emanationism>과 연계되겠거니와 우주는 그 근원인 일자(一者: 토헨)에서 이성(Nous), 혼(Psyche), 생물(존)이라는 단계를 거쳐 유출하는 에마나레(Emanare) 체계로써 설명된다. 여기에서 가장 낮은 에마나레인 물질과 어둠은 가장 저차원이며, 조물주인 <여호와>는 <악한 물질을 창조한 거짓된 神(데미우루고스)>일 뿐 인 것이다.

이러한 바실리데스의 이론은 2차 공의회(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이후 확정된 <사도신경>에 의하여 이단으로 탄압받고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가현설에 바탕을 둔 플로티누스의 <유출설>에 영향을 받은 아우구스티누스는 신(토헨)은 우리 영혼(Nous)에 내재하는 진리의 근원이므로, 신을 찾고자 한다면 굳이 외계로 눈을 돌리려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영혼 속으로 통찰의 눈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교부철학의 기반이 되는 역설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면 다시 <악>이란 무엇인가?

조로아스터교의 경전인 <아베스타>에 의하면 태초에 신 아후라 마즈다는 <선>을 택하였고, 신 아리만은 <악>을 택하였다고 한다. 왜 아리만은 <악>을 택한 것일까? 그러나 아후라 마즈다와 아리만은 결코 둘이 아닌 하나일 뿐이다. 결국 조로아스터 사후 3000년에 지상에 온다는 세상의 종말은 <선과 악>의 결합이 아니던가?

<악>이란 사라지지 않는다. 정교가 <사도신경>으로 영지주의를 사갈시하고 말살하였을 때, 기독교의 진화는 멈추었을 지라도, 영지주의는 마니교속으로 이슬람교 속으로 스미다가 중세의 말기에 기독교 보고밀파와 카타리파 등으로 변용되어 나타났으며, 르네상스 시발의 뇌관 역할을 했다.

헷세와 심리학의 대가인 칼 구스타프 융은 상당한 친교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융>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지닌 <원 억압>에서 이탈하여 심리학을 시작하면서 제 종교와 연금술, 신화에 까지 광범위한 연구를 하면서, 양성 구유(Anima, Animus)를 인격적 완성 형태로 보고 있다는 데에도 그 영향이 있다고 보여진다.

사실 <융>은 연금술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동양 內丹의 연금술서인 여동빈의 <太乙金華宗旨>까지 연구를 했다고 하는 바, 서양 연금술에 나오는 <현자의 돌>에 대한 지식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연금술은 불순한 것을 뜨거운 불로 정화시켜 지극한 精으로 변화시키는 마법이며, 화학적 결혼1발렌틴 안드레아에는 저서 『크리스티안 로젠크로이츠의 화학적 결혼』에서 로젠크로이츠가 <현자의 돌[化金石]>을 발견했다고 주장함이다. 그러니까 선과 악의 결합을 통하여 우리는 대립된 이원론을 극복하고 보다 높은 단계로 초극하는 것이다.

<악>이란 것은 하나의 관념일 뿐이다. 적이 나를 향하여 총구를 겨눌 때 그것은 <악>이며, 내가 적에게 방아쇠를 당길 때 그것은 <정의>이다. 동일한 <행위>에 부여되는 이율배반이 바로 <선>과 <악>인 것이다. 그래서 <악>을 인정한다는 것은 선악이원론을 벗어나며, 우리의 조잡한 관념을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그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이다>라는 구절로 이야기한다. 데미안(악마에 홀린 자 : Demian=Demonian)은 헷세가 제1차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출간한 소설로 <악>으로 규정된 것들에 대한 <선>의 성전(제1차 세계대전)이야말로 진정한 <악>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으며, 기독교적 세계관이야말로 이기적이며 파괴적이라고 보았는 지도 모른다.

역사 상 <악>이라고 불리어 왔던 것, 그리고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악>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실체는 <나와 우리>가 <그와 그들>을 결코 용인하지 않겠다는 사악한 매카시즘이 아닐지?

<악>과 <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태를 바라보는 <입장>만이 있는 것이다.

…아브라카다브라를 보고 난 후, 이쪽 저쪽을 기웃거리며 만든 글

This Post Has 4 Comments

  1. 클리티에

    트랙백 고맙습니다. 시간을 두고 차근히 읽어봐야 겠어요..

  2. 흰돌고래

    오오.. 여인님! 최근에 ‘어떤 일을 판단할때 정말 나쁘다고 할수 있을까’란 생각을 했었는데.. 그 생각에 이 글이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잉 어려워요.

    1. 旅인

      우리가 알지 못하던 것이라서 그럴 것입니다.^^

  3. 旅인

    유리알 유희 08.10.23. 12:21
    악은 관념일 뿐이다.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나와 우리가 그와 그들을 용인하지 못하는 사태, 그런 것은 레테에서는 없기를! 말하자면 레테는 악의 개념이 들어서지 못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제 작은 소망이랍니다. 심오한 이류님의 글을 읽다가 문득 떠오른 유희의 어린 생각이랍니다. 허허.
    ┗ 이류 08.10.23. 20:46
    사실 <악>보다는 똘레랑스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뿐 입니다.

    라마 08.10.23. 16:35
    조로아스트교의 선악 선택설을 처음 알았을 때 저는 묘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 이류 08.10.23. 20:45
    선악선택설에 대해서는 아무 기억이 없네요. 다시 한번 찾아보아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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