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펜 한자루의 차이

사실 한국에서 제일가는 삼성과 내가 다니는 회사하고 비교라는 것이 어설프고 웃긴 이야기란 것은 잘 안다. 초일류기업으로 가기 위해서 관상쟁이까지 동원하여 면접을 보았다는 일화 또한 우스개로 보아 넘기기에는 인재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지대한 가를 여실히 드러낸다.

대학을 졸업하고 여러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우연스럽게 삼성을 다니던 친구와 나와 보고서와 품의서 작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우리 회사는 이상스럽게도 A4 방안지에 연필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보고를 했고, <품의서> 또한 앞 장만 볼펜으로 작성하고 뒷장부터는 방안지에 연필로 쓰는 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이런 나의 이야기를 들은 삼성을 다니던 친구는 <와! 그러면 수정하기가 쉽겠네. 우리는 글자 한자 고치려면 한장을 다시 써야하는 데…>하고 말했다.

당시도 삼성이 매출액 면에서 현대에 뒤지기는 했지만, 인재의 삼성, 일등주의 등으로 한국 내에서 굴지의 일류기업임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었기에 친구가 말하던 삼성의 <비효율성>에 대하여 뭔가 석연치가 않았던 것이다.

그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연필과 볼펜의 차이를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수정이 용이하다는 것은 이미 수정을 용인할 수도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상사가 수정을 지시한다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이 가 은 는>이라는 미시적인 부분과 문장 상 의미의 문제가 아닌 매끄럽지 못하니 어쩌고 저쩌고 하면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수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수정>을 하기 위하여 <일>을 하는 판세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다.

친구는 자신의 회사에서 입사한 지 이년차가 되면, 상사가 수정 지시를 내리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수정 지시를 내리자면 <이 가 은 는>에 치우쳐서는 아니되며 <일>의 본질적인 국면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설득을 해야만 부하가 <수정>지시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즉 <왜 이런 쥐씨알 만한 것을 가지고 고치라고 하느냐>고 대드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수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짜증나며 시간 낭비인가를 일년동안 경험해 온 쫄다구의 태도로서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효율을 위한 <연필>은 비효율적 도구로 전락하고, 비효율적인 <볼펜>은 일의 질의 전환을 가져오는 획기적인 도구로 변화된 것이다.

이제는 필기구 탓을 할 시대는 지났지만, 나는 오랜 세월동안 <볼펜 한자루>의 차이를 지켜보아왔고 아주 사소한 것, 노자가 말한 보려고 하여도 보이지 않고(夷), 들으려 하여도 들리지 않으며(希), 만지려 해도 만질 수 없는(微) 미소한 것에 큰 변화의 뿌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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