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지나며…

1. 변경

변경을 실증적으로 볼 수 있고 넘을 수 있는 곳은 로우(羅湖)이다. 비행기를 타고 넘는 국경은 타국의 안쪽 깊숙한 곳에 고립된 섬처럼 국경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국경이나 변경을 보고 넘을 수 있는 곳이란 흔치 않다. 통상 비행기는 국경을 지나고 내륙을 관통하여 어느 도시에 기착하며, 사람들은 어느 나라도 아닌 유예된 공간 속에서 여권을 들고 서성이다 결국 좁다란 세관을 통하여 간신히 외국으로 토해져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로우에서 심천으로 가로놓인 통로(다리를 유리가 둘러쌓고 있기에 통로라고 한다)를 지나면서 결국 국경이든 변경이든 그 추상적인 금의 실체를 보고 말았던 것이다. 거기에는 폭이 10미터쯤의 개천이 있었다.

일국양제 이전에는 여기를 국경이라고 했겠지만 이제는 뭐라 불러야 할 지 애매하다.

2. 심천

세관을 통과하고 심천에 들어서면 무엇이 여기를 이토록 엉성한 곳으로 만드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삶은 땜방질. 우선 외양 중에 일부 엉성하거나 헌데가 있어도 크거나 비까 번쩍하게 만든다. 나중에 조금씩 수정해 나가면 된다. 그러나 수정해야 될 부분은 고쳐지지 않은 채 종기처럼 점점 더 커지고 퇴락하는 가운데, 또 다른 외양의 건물이 들어선다. 그리고 퇴락되어 간다. 이것이 발전의 공식이다. 낮에 우중충했던 거리는 밤이 되자 문득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길을 거니는 데 한때거리의 삐끼들이 달려들어 <샤오지에> 어쩌고 저쩌고다. 아마 자신들의 술집으로 오라는 이야기이겠지.

심천은 돈을 벌기 위하여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고 무작정 온 사람들이 무작정 살아가는 도시라는 점이 이 도시를 공중에 붕뜨고 혐오스럽게 만든다는 것을 무작정 지나간 나 같은 놈이 알게되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이여, 주의하라! 도시라는 것을…>

3. 술집

한국의 술집(여자들이 나오는 술집)을 무척 싫어하면서도 홍콩의 술집(한국 가라오케)은 좋아한다. 홍콩의 술집의 아가씨는 여인이다. 그러니까 여자라는 뉘앙스로 함부로 폄하할 수 없는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홍콩 술집의 분위기가 좋은 것이다. 그들의 품위가 결국 손님들도 젊잖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마담이 나를 잡고 자신의 넋두리를 늘어놓지 않았다. 사실 젊은 아가씨에게 내가 인기가 있을 리는 없다. 그러니 마담이 꿔다논 보리자루를 처분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고 또 마담하고 나는 대충 말이 통하곤 했다. 그녀들은 늘 자신의 오래 전 애인을 이야기했다. 나는 차분히 이야기를 들었고 얼마 지나다 보면, 마담과 나는 친구처럼 지내게 되곤 했다. 그러나 장사란 참으로 독한 것이어서 별로 깎아주진 않았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아가씨를 옆에 하고서 편하게 술을 마실 수 있었다.

4. 공항

상사의 잘못된 판단은 결국 나의 잘못된 판단이다. 나는 일정을 포기하고 돌아가기 위하여 홍콩으로 돌아와 자정이 가까운 공항에 들어섰다. 공항은 텅비고 늦은 비행기가 정박한 게이트에만 사람들이 몰려 있다. 낮의 열기와 피로감에 젖은 나에게 밤비행기가 가져다 줄 불면의 고통을 생각하며 간신히 열려있는 서점에서 책을 샀다. 책을 사지만, 언제 이 책을 읽을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끊임없이 갈증이 났고, 배가 아팠다.

5. 귀국

비행기는 신새벽의 공항에 도착했고, 통관을 하고 나자 4시 50분, 화장실을 들린 후 청사를 나서자 5시 10분 벌써 새벽이 밝고 있다. 버스를 타고 회사 앞에 내려 6시의 싸우나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면도를 한 후 7시의 회사로 들어선다.

피로와 졸음에 시달리며 사장의 호출을 기다렸다.

그러나 사장의 호출은 없었고, 오후 6시30분 나는 퇴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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