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같은 것은 안 해

그러니까 제 인생의 단 한번 영웅이 되었던 것은 한마디로 실수라는 겁니다.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자격요건이 있는 데,  도무지 그 요건들은 저와는 관계가 없었다는 겁니다. 또 제가 그러한 난관을 극복할 만큼의 투철한 의지를 가졌던 것도 아닙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건이 벌어졌고 그것이 저를 영웅으로 만들었고 그 후 제가 몹시 피곤해졌다는 것입니다.

한번 국민학교 이학년으로 돌아가 봅시다. 당시 남을 보고 꼴통이라고 함부로 이야기할 수 있는 처지는 못됐지만, 저희 반에 한 꼴통하는 녀석이 있었습니다. 저하고는 거의 쌍벽을 이루었는 데, 저는 그 놈보다는 조금 나았습니다. 왜냐하면 최소한 저는 여자 애들 지분거리는 짓은 않했거든요. 녀석은 제가 보기에도 커서 뭐가 될 지 참 걱정이었습니다. 제가 그나마 그 지겨운 학교를 감내하며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저보다 형편없는 놈이 하나 쯤은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운명이란 것이 참 이상한 것이라서 그만 주목할 만한 사건이 터져버린 것입니다. 이학년초 개나리가 지는 둥 마는 둥하는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날도 녀석은 계집애를 지분거렸는 지 뒷줄에 앉았던 여자아이가 녀석에게 달려들었고 녀석은 용용 죽겠지 하며 뒷발로 깡충깡충 뛰며 달아나다가 뭣에 걸렸는 지 “으악!”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쓰러졌습니다. 바로 제 옆쪽에 넘어진 녀석의 머리에선 제가 태어나서 본 <피> 중 가장 많은 피가 퐁퐁 쏫아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피는 교실 마루바닥까지 흘러내렸고, 아이들은 그 피를 보자 놈이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쌓였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놀란 제가 한 일이라고는 아무 생각없이 교실에 있는 걸레를 모아다 피가 흘러내리는 머리주변에 놓아두었을 뿐 입니다. 다행이 누가 연락을 했는 지 담임이 왔고, 녀석은 학교 소사의 등에 엎혀 병원인가로 갔을 것입니다. 녀석이 사라지고 난 후, 담임의 질문에 따라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한 후 책상 옆 신발주머니 걸개용 대못에 녀석이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혔음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며칠동안 놈이 죽었을 지도 모른다고 걱정을 참 많이 했습니다. 운명이라는 것이 오묘해서 형편없는 그 자식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놈은 결국 살아서 한 일주일 쯤 후에 <짠~> 교실에 나타났습니다. 녀석은 머리에 붕대를 칭칭 두르고 있었고, 얼굴은 창백했습니다. 평소의 개구진 모습은 사라지고 다소 우울해보였습니다. 아이들은 녀석이 살아왔다는 것에 다행이라고 녀석 주위로 몰려들었으며 많은 질문을 녀석에게 퍼부었습니다. 그러면 녀석은 힘이 없다는 듯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을 했고, 제가 보기에도 애처롭고 목소리는 녀석의 창백한 얼굴에 어울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뭔일입니까? 녀석이 지분댔던 여자애가 와서 녀석의 손을 잡고 울면서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했고, 녀석은 그 여자애에게 죽어가는 자나 떠올릴 수 있는 세상의 모든 관용에 가득찬 부드러운 목소리로 오히려 자신이 잘못했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침을 삼켜가며 녀석을 “어머!”하며 바라보았고, 저는 “에이~! 저 여자애는 참 예쁘게 생겼는 데 이제 이빨도 안들어가겠구나”하고 침을 교실바닥에 퉤 뱉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러나 정작 가관은 다음 시간이었습니다. 담임이 들어왔고, 반장선거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반장 추천할 사람…”하니까 누군가 녀석의 이름을 거명했고, 어찌어찌하다보니 과거의 전력이라 해봤자 꼴통에 불과한 녀석이 그만 반장이 되어버렸습니다. 무수한 세월이 흘렀지만 뚜렷이 기억할 수 있는 데, 저는 녀석이 <반장>이 되지 못하길 기도했습니다. 그 놈이 반장이 된다면 나보다 형편없는 놈이 사라지는 것이며,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참지 못한다>는 보편원리는 어린 저에게도 진리로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녀석이 반장이 되고 난 후 어떻게 된 줄 아십니까? 이학년 겨울방학으로 접어들 즈음, 저는 아직도 반의 잔류 꼴통들과 딱지 치기 아니면 다마(구슬)를 가지고 복도에서 <으찌 니 쌈>이나 하고 있었지만, 녀석은 교무실에 불려가 담임과 함께 아이들 시험지 채점을 하고 난 후, 제게 와서 “곧 삼학년 될 놈이 받아쓰기 하나 제대로 못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했습니다. 아마 전에 놈이 그런 말 했으면 제 마빡이 놈의 눈튕이 아니면 대가리로 시속 60키로로 날아가고 있었겠지만, 저는 놈의 권위에 짖눌려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무척 처참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전학을 갔고 육학년 때쯤 그 학교에 놀러 갔다가 녀석을 만났습니다. 놈은 자신이 전교회장도 했다고 하는 데, 제가 봐도 녀석은 늠름해 보였고 얼굴에는 권위와 함께 총기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놈과 같은 인생 반전의 행운(사고?)이 제게도 한번 찾아와 주기를 고대했지만 찾아오지 않았고 늘 제 인생은 평범하거나 그 이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주 우습꽝스러운 일로 졸지에 아이들의 영웅이 되어버렸고 상응한 댓가를 톡톡히 치뤘습니다.

제가 영웅과 관계가 없다는 것은 중학교를 들어갔을 때, 제 키는 백삼십오센찌, 반에서 키순으로 일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가방은 땅에 끌리고 교복에 푹 쌓여인 제 모습은 무척 안쓰러워 보였을 겁니다. 아니 그것보다 일학년 때 국어선생님이 계셨는 데, 장난을 치다가 걸려 선생님이 제 머리에 꿀밤을 놓으려고 왔다가 “허참!”하고 그냥 돌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꿀밤을 멕일 쯤, 아플 것이라고 지례 눈을 찡그린 것을 선생님이 <윙크>한다고 이해한 것이었고, 그 윙크가 귀엽고 조막만한 아이의 머리에 차마 꿀밤을 놓을 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저의 수업태도 (대부분 옆에 녀석들 때문에 걸렷지만) 때문에 걸려서 야단을 맞았는 데, 늘 그랬듯이 한쪽 눈이 찡그려지는 것 때문에 “어머 어머 제 봐! 내가 너 때문에 수업을 못하겠다. 왜 넌 야단만치면 윙크를 하고 그러냐?”하고 웃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단지 국어선생 뿐 아니라 다른 선생에게도 동일한 양상이어서 담임을 만나러 교무실에 가도 “김선생! 꼬마 왔네!”하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이학년이 되어도 제 키는 그 모양 그 꼬라지였고 깡총발로 겨우 두번째 줄에 앉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9번이나 10번쯤으로 첫번째줄에서 두번째줄로 넘어가는 코너의 둘째줄이었습니다. 제가 둘째줄에 앉았을 때 주변의 아이들도 키가 작았기 때문에 번호라는 외면적 키의 기준에 아주 민감했습니다. 그래서 제 키가 잘봐줘도 3번 정도 밖에 안되는 데 둘째줄에 앉았다는 것을 가지고 시비를 걸었고 커봤자 5센찌 정도 밖에 안되는 것들이 저를 아주 우습게 보았습니다. 그러나 첫 월말고사가 끝나고 성적이 반에서 이등이 나오니까 “우와!”하며 더 이상 시비는 걸지 않았고 우리는 그럭저럭 좋은 관계를 일궈나갈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저와 같이 키가 적었던 아이들은 유전 혹은 체질 상 키가 적다기 보다 가난하여 영양상태가 부실했고, 그 결과 키들이 크질 못했을 뿐 아니라 머리도 그다지 좋지 못하여 성적도 나빴습니다. 비록 저보다 녀석들이 좀 컸을 지 몰라도 저와 부딪히면 벌러덩 넘어지곤 했습니다. 저는 그애들의 집 이야기며, 굶주린 이야기를 들으며 녀석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고 가난이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습니다. 녀석들에 대하여 동정심을 느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어머니에게 도시락 반찬을 많이 만들어 달라고 하여 녀석들과 제 반찬을 나누어 먹거나, 시험 전에 학교에 남아 공부를 같이 하는 것 정도였습니다. 녀석들은 저를 좋아했고 그만큼 저도 놈들을 좋아했습니다.

날씨가 따스해지자 아이들은 <오징어다리>라는 놀이를 하자고 했습니다. 점심시간과 방과 후에 우리는 함께 오징어다리를 했습니다. 우리와 같이 조그만 애들은 큰 애들이 하는 놀이에 낄 수도 없었고 오징어다리는 우리에게 적당했으며 상당히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운동장 한켠에서 하던 우리의 놀이가 어느 날부턴가 아주 재미없는 놀이가 돼버렸습니다. 어느 점심에 오징어다리>를 하고 있는 데, 한 놈이 우리의 놀이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놈은 네번째 줄에 있었으니까 삼십번대 였을 겁니다. 놈에 대하여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우리는 놀이에 열중했습니다. 그리고 방과 후에 우리들의 오징어다리 그림에 갔을 때, 놈이 버티고 서 있었고 자신도 끼워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덩치가 크기 때문에 네가 끼면 한쪽이 힘이 모자라 진다고 했지만, 한사코 같이 하겠다는 놈의 고집 때문에 할 수 없이 놈을 끼워줬습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놈은 게임을 지 멋대로 하려고 했고, 재미가 없어 집으로 가려 하는 아이들을 붙잡고 오징어다리를 하자고 졸라대곤 했습니다.

담임에게 말해서 놈이 우리의 게임에 끼지 못하도록 하자는 등의 모의도 했지만, 알량한 오징어다리에 반 친구를 못하게 해달라면 오히려 야단만 맞을 것이란 생각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놈과 그 재미없는 오징어다리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금을 밟으면 죽어야 하지만 놈은 죽지 않는 불사신이었고, 우리는 금 근처에만 가도 놈이 죽었다고 하면 죽어야 했습니다.

그 놈의 폭압과 독재 속에서 한 보름인가 지난 점심시간이었습니다. 우리편의 한 놈이 금을 밟지도 않은 것이 명확한데도 금을 밟았다고 빡빡 우겼고, 친구는 아니라고 저항을 했습니다. 그러자 놈은 그 약한 아이를 잡아 운동장에 내동댕이를 치고 “내 말이 맞으니까 까불지 말라”고 했습니다. 제가 왜 그랬는 지 모르지만 놈에게 다가섰고 젊잖게 “웃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놈의 얼굴이 이그러지며 “그럼 나하고 한번 뜰레?”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이거 잘못됐구나 하고 친구들을 둘러 보았습니다. 이 치사한 녀석들은 고개를 가로젖는 것이 아니라 한판 뜨라고 모두 고개를 까딱했고, 저는 할 수 없이 침을 꿀꺽 삼키고 “그래 한번 뜨자!”라고 말했습니다. 놈은 아주 우습게 저를 아래 위로 보더니 “너 새끼 죽을 줄 알아!”라고 하며 웃저고리를 벗었습니다. 저도 옷을 벗고 놈의 앞에 섰습니다. 아이들이 뭐라고 했지만 가슴이 쿵쾅거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나는 주먹을 꽉쥐고 “눈을 똑바로 뜨고 놈의 코에 주먹을 갖다 먹이는 거야”하고 속으로 말하며 운동장에 서 있었습니다. 놈이 주먹을 휘두르며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놈이 주먹을 날릴 때, 놈은 눈을 감았지만 저는 두눈을 부릅뜨고 놈의 코로 주먹을 날렸습니다. 그러자 주먹에 지끈하는 느낌이 왔고, 저는 다시 왼손을 놈의 턱을 향하여 날렸습니다. 그리고 너무 어이없이 놈은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제가 정신을 차리고 놈에게 다가갔을 때, 놈의 코에서는 코피가 피떡이 되어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환호하고 있었지만, 저는 승자의 관대함으로 놈에게 세면장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세면장에서 놈은 코피를 씼으며, “이건 실수야! 방과 후에 다시 한판 붙자!”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교실로 들어갔을 때, 놈들은 나에게 악수를 하고 “너 쌈 진짜 잘한다”, “이제 우리끼리 오징어다리 할 수 있겠네”했지만, 저는 다시 놈과 싸울 생각을 하니 앞이 깜깜했습니다. 결국 방과 후에 우리는 싸웠고 또 놈은 코피를 쏟으며 운동장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어떻게 된 셈인지 우리의 싸움을 선생이 보았고 교무실로 끌려가 다시는 싸움을 안하겠다고 했지만, 놈은 집요하게도 “내일 다시 한 번 뜨자”고 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저는 “그래 좋아 내일 언제 한번 뜰까?”라고 쉽게 물어볼 수 있게 있었고 자신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또 놈을 쉽게 이겼고 놈은 제 앞에서 눈물을 보였습니다.

세번의 싸움 끝에 저는 조그만 아이들의 영웅이 되었지만, 녀석은 학교에 와서도 친구들과 이야기도 못하는 병신이 되어 비실거렸습니다. 반면 녀석이 사라진 오징어다리는 다시 활기를 띠고 재미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반 아이들, 키 큰 녀석들은 저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쉬는 시간에 네번째 줄에 있던 한 놈이 다가와 친한 목소리로 “너 싸움 잘한다며?”하고 와서 이러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야비한 웃음을 흘리며 “너같이 공부도 잘하고 쌈도 잘하는 새끼가 제일 밉더라. 너 한번 나하고 뜨자. 방과 후에 운동장으로 나와 새꺄!”하고 말했습니다. 녀석이 어떤 감정을 가졌기에 그런 섬뜩하고 야비한 웃음을 내게 지을 수 있을까 했지만, 학교가 파한 후 저도 모르게 운동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놈은 달랐습니다. 주먹도 예리하고 저는 많이 맞았습니다. 그러나 놈의 치명적인 약점은 체력이었습니다. 또 맞다보니 주먹에 대한 두려움은 점차 사라지고 머리 속은 명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함께 독기가 몸에 서렸고, 나는 놈을 몰아가 담벼락에 몰아놓고 힘이 빠진 놈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몹시 모질게 팼던 모양입니다. 놈은 머리를 땅바닥에 묻고 “살려줘! 잘못했어. 항복!”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계속 놈을 때렸고 아이들이 와서 저를 말렸습니다. 이상한 것은 얻어맞은 자리의 통증과 함께 말할 수 없는 쾌감이 저를 압도했고 저는 싸움 구경을 온 놈들을 향하여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다 와봐! 새끼들. 내가 다 조져버릴테니까 다 와봐, 새끼들아!”

그리고 저는 두번인가 더 큰 놈들과 싸움을 벌였고, 이미 싸움에 이골이 나 있었기에 맞는 것에 대한 두려움없이 놈들과 싸워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에게 싸움을 건 친구는 반장이었습니다. 놈은 맨 뒷자리에서 키로 반장이 된 놈인 만큼 반말을 하기도 겁날 정도로 컸습니다. 아마 그때 놈은 다 커버렸을 지도 모릅니다. 씨름의 장사처럼 눈썹이 있는 자리의 뼈가 앞으로 튀어나와 있어서 저같은 놈은 주먹이 아니라 손으로 한번만 밀쳐도 주루룩 밀려날 지경이었습니다. 놈에게 몇번이나 달려들었지만 놈은 저를 손으로 툭툭 밀쳐냈고 그 손에 가슴을 맞으면 숨이 턱턱 멈추곤 했습니다. 끈질기게 달려드는 저를 보고 놈은 주먹 한번 쓰지 않고 “그래! 내가 졌다고 하자”라고 한 후, 교복 웃저고리의 먼지를 툭툭 털었습니다. 저는 힘이 다 빠져 쓰러질 것 같았지만 악착같이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목구멍으로 부터 뭔가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구토였습니다. 끄억끄억 나는 토했고, 반장은 내 등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너랑 싸우려는 것은 아니었어. 니가 너무 불쌍했어. 쪼그만 녀석이 큰 놈들하고 싸워 이기려고 애를 쓰는 니가 참 불쌍했어. 이제 싸우지 말고 공부나 해. 너는 조그맣기 때문에 쌈에 져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 저는 놈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그래! 나도 싸움 싫어. 싸우고 싶지 않단 말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날 집으로 돌아가 세상의 모든 것이 끝난 듯 아주 편한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어느 날보다 편한 발걸음으로 학교로 갔습니다.

아침 조회가 끝나고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반장이 일어나 말했습니다.

“너희 새끼들! 앞으로 여민(실명아님)이에게 시비걸지마. 다시 저 새끼랑 싸우는 놈있으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꺼야. 이 치사한 새끼들아! 저 새끼 키나 보고 시비를 걸어야 될 것 아니야?”

저는 반장새끼가 이 새끼 저 새끼하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것이 아주 기분이 좋았고, 다시 귀엽고 착한 꼬마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흐뭇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꼬마 친구들도 “야! 너 고생 많이 했다. 너 싸우느라고 오징어다리도 못했는 데, 오늘 한판 벌리자?”하고 내 어깨와 등짝을 두들겨 댔습니다.

이것이 저의 영웅담이며, 그 후론 영웅같은 것 할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추신: 아직도 쪼그맣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오햅니다. 크지는 않아도 중키 이상은 되니까요.

This Post Has 2 Comments

  1. 아, 너무 재밌는 영웅담이예요.

    그 반장 참 멋있네요. 첫번째 나온 그 사고이후에 반장된 사람 말고… 연애하고싶다. 키큰반장이랑. ㅋㅋㅋ

  2. 여인

    그런데 키 큰 반장하고 그 후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워낙 자리가 앞 뒤로 멀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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