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힐의 방 안

따슨 빛 등에 지고
유마경(維魔經) 읽노라니
가볍게 나는 꽃이
글자를 가린다.
구태여 꽃 밑 글자를
읽어 무삼하리오.

春書(봄편지) 1 – 한용운

<순무님 포스트에서 파옴>

이 시의 해석의 단초는 유마경에 있으니,

<유마힐의 방 안>에는 한 사람의 천녀(天女)가 있었다. 여러 보살들을 보고 또 설하는 가르침을 들은 그녀는 곧 몸을 나타내 하늘 꽃[天華]을 보살과 부처님의 대제자(大弟子)들에게 뿌렸다. 보살들 위에 뿌려진 꽃은 몸에 붙지 않고 땅에 떨어졌다. 그러나 부처님의 대제자들 위에 뿌려진 꽃은 떨어지지 않고 그들의 몸에 붙어 있었다. 모든 제자들은 신통력으로 꽃을 떨어버리려고 하였으나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천녀는 사리불에게 물었다.

“무슨 까닭으로 꽃을 떼어 버리고자 합니까?”

“천녀여, 꽃으로 꾸미는 것은 출가의 법에는 적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꽃을 떼어내 버리려는 것입니다.”

천녀는 말했다.

“이 꽃을 법답지 못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이 꽃은 아무런 분별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대덕(大德)께서 스스로 분별하는 마음을 낸 것 뿐입니다. 만약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출가하고서도 분별을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법답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 분별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법다운 것입니다.

대덕이여, 보십시오. 사리와 분별을 떠나 있는 보살들의 몸에는 꽃이 붙어있지 않습니다. 이미 분별하는 마음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두려운 마음을 지니고 있을 때 악귀의 힘이 미치기 쉬운 것처럼 대덕께서 생사를 두려워하고 있으므로 빛깔[色]과 소리[聲]향기[香]맛[味]감촉[觸] 등이 그 힘을 미치는 것입니다. 이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오욕(五欲)의 힘이 전혀 미치지 않습니다. 번뇌가 다하지 않았으므로 꽃이 몸에 붙은 것입니다. 번뇌가 다하면 꽃은 붙지 않습니다.”

유마경 중 천녀의 꽃

<시골의사의 포스트에서 파옴>

詩의 꽃잎은<유마힐의 방 안>의 天女의 그것인가 아니면 봄날의 꽃잎이뇨? 천녀의 꽃잎 아래의 글은 분별이요, 봄날의 꽃잎 밑의 글은 불이법문. 봄날 글 위에 내려앉은 꽃은 바람에 날리어 어디론가 가버렸을까? 아니면 스님의 번뇌로 이 봄을 다할 것인가?

오늘은 참으로 날이 밝아 늘어지게 오수를 즐기고 싶다.

추사의 불이선란도(부작난도)의 첫번째 발문에 보면,

난을 치지 않은 지 20년
우연히 본성의 참 모습을 그렸네
문을 닫고 찾으며 또 찾은 곳
이것이 유마의 불이선일세
만약 어떤 사람이 억지로 요구하며 설명을 바란다면
또한 마땅히 비야이성의
유마거사의 말없음으로 사양하리라
만향 씀.

이라고 쓰여 있다.

청관산인의 글을 한 켠에 접어두고, 다시 유마의 불이법문을 보자.

유마힐이 문수보살에게 다시 물었다.

“어떻게 하면 보살은 절대평등의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들 수 있습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했다.

“제가 생각하건대 모든 것에 있어서 말이 없고, 설(說)함도 없으며, 가리키는 일도, 인지(認知)하는 일도 없으며 모든 질문과 대답을 떠나는 것이 절대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여러 보살들이 자기의 견해를 말했습니다. 거사께서 말씀해주실 차례입니다. 어떻게 하면 보살은 절대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입니까?”

그러나 유마힐은 오직 묵연(默然)하여 아무런 대답이 없다. 문수사리는 감탄하여 말했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문자도 언어도 없는 것이야말로 진실로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드는 길입니다.”

유마경 중 불이법문

<시골의사의 포스트에서 파옴>

애해라~ 디야!

유마의 말없음을 알아먹을 수 없어라.

이 좋은 봄날에 말로써 쓸데없는 말을 지으니 의언진여의 不二非不二의 논단은 大道無門(길없는 길)을 뚫고 들어가 한마디도 세울 수 없는(不立文字: 묵언) 空의 세계에선 분별심에 불과하던가?

꽃잎이 소리없이 져버렸으니 봄의 짧음이여.

不作蘭花二十年 偶然寫出性中天 閉門覓覓尋尋處 此是維摩不二禪 若有人强要爲口實 又當以毘耶 無言謝之 漫香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