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블로그에 대한 이야기

나는 두 블로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사실은 이 두 블로그는 타인에게 알려주지 않고 나만 조용히 그 곳을 들러 포스트를 보고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 두 블로그에 덧글이라고는 오늘 딱 한번 달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에 대해서 알지도 못할 것입니다. 내가 굳이 이 두 블로그를 소개하려고 하는 데는 일단의 시기심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이 두 블로그를 방문하신다면, 저처럼 덧글을 다는 것에 몹시 주저스러울 것입니다. 즉 대화의 상대로는 적절하지 못한 아주 고집스럽다는 특징과 함께 그들의 세계가 특이하면서도 방대하다는 점에서 다가가기가 꺼려진다는 점입니다. 그러한 점이 더욱 더 관심과 흥미를 끌게 되며, 주의해서 이들의 포스트를 본다면 흥미도 있겠거니와 지적으로도 얻어 가질 것이 많은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나의 시기심은 바로 이러한 이들 블로거의 특징에 연유하며, 내가 이 두사람에게 많은 면에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결코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 푸른 목숨

그는 <사이렌의 바다 21번지>에 살며, 그의 글을 보는 순간 당신은 그가 유혹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유혹은 감미롭지만 당신을 곧 우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우울은 언어라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용도로 쓰여지고 있다는 것을 막연하게 느낄 것이며, 일상적인 우리의 언어에 대한 그의 테러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당신의 뒤통수를 냅다 갈길 것이다.

그는 자신이 오디세이가 지나던 이타나 섬 부근 어디 쯤에서 살고 있지만 ‘두발 달린 짐승, 나는 부표로 떠 있다. 그러나 적당한 눈물, 알맞은 체온에서는, 내게서도 싹이 돋아난다.’라고 쓰고 있다.

그의 이름은 <마콘도>, 사이렌의 바다 21 번지는 도시다. 사는 곳은 성산동이며 그는 때로 합정동 사거리를 배회한다. 거기에서 그는 언어라는 이분음표와 사분음표로 노래 부른다. 그의 언어의 추상성은 그와 같다.

가슴 한가운데 사막의 문을 열면 생의 정면을 관통해가는 길가에 모텔이 있다 그리움이 파먹어 들어간 감정의 숙소 107호, 그동안 입었던 옷 하나 벽면에 걸어놓지만 전 생애를 벗지는 못해 여전히 흔들리는 잠, 망상의 침대로 애틋한 꿈을 불러 살 섞다 밤하늘 캄캄한 영혼 속으로 수없이 박히는 별들, 저것들이

아프다 혼자서 發光하는 것들은 하나의 위로를 스스로 건져낼 때까지, 이 바그다드 모텔에는 아침이 오지 않는다

<바그다드 카페 중>

아침마다 문 밑으로 日收를 찍는 전단지들이 들어왔다 흘러가는 길위에 지은 집, 내 생애 개업한 지 마흔 여섯해, 지금까지 살아서 아무것도 설득하지 못한 채, 여전히 파리 날리는 내 영혼, 밀린 부채를 갚듯

<에다(Edda)의 골목에 있는 신촌식당 중>

한번 가보시라! 그의 글은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의 어릿광대의 얼굴에 가려진 슬픔과 같은 것.

2. La Strada

길(La Strada)는 젤소미나의 서글픈 미소가 생각나는 영화의 제목이다. 길은 고약하다. 머물 수 없다는 것, 그것이 길의 미학인 동시에 길이 가진 절망적인 조건이다.

<클라투>라는 이 블로그의 주인은 <내일이란, 영원 그리고 하루>라는 영화 ‘영원과 하루’의 마지막 구절을 입구에 걸어놓고 있다. 그는 숙명적으로 여태까지 살아온 날들인 <영원>을 포기한 채 <내일> 쪽으로 삐뚜름하게 놓인 길 위를 걸을 수 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그의 직업은 애매모호하지만 학자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는 학자라고 하기에는 조금 모자라거나 조금 지나치다.

사랑, 설레이는 말이다. 사랑이란 두 가지 존재함의 겹침의 장소이다. 나의 타자에 대한 존재함과 타자의 나에 대한 존재함이 미리 정해진 사회적 관습과 규약없이 겹쳐지는 장소로서의 사랑.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빚어내는 속에서 만들어지는 삶의 이유들. 교환이기 교환이되, 보드리야르식으로 말하면 사물화된 교환이 아닌 상징적 교환. 전자는 고정되고 명령적인 코드의 영역인 반면 후자는 서로의 만짐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타자의 나의 만짐’과 ‘나의 타자의 만짐’으로 만들어지는 흔적과 피부의 변증법이다. 즉, 거기에는 육체가 있다. 기표와 코드에 종속되지 않은 육체의 생동적인 꿈틀거림이. 그 꿈틀거림이 설레임이며 사랑의 증거이다.

<막걸리 한 잔…중>

자유에 대한 관념론적인 관념을 이 시를 통해서 지워 버린다. 자유란 한계에 대한 인식이고,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지난한 훈련의 과정이다. 즉, 자유란 관념도 낭만도 아닌 지난한 현실적인 실천이 몸짓이다.

<(김수영의)’푸른하늘’을 읽으며… 중>

그의 모자람은 학자가 지닌 무식을 보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학자의 무식은 유별나서 삶에 대한 서정적인 무지, 그것이다. 학자들의 통속성은 학문이란 자신의 내적 세계와 전혀 관련이 없는 밥벌이의 도구나 수단이라는 데 있다. 그러나 <클라두>라는 이 사람의 글을 보면, 밥 먹고, 숨 쉬고, 술 마시는 것 몽땅 그의 사색 속으로 흘러 들어가 발효가 되어 보글거리며 기표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간편한 인생을 살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것이겠으나, 나는 그가 굳이 불필요한 사색으로 삶의 우울을 택한다는 것에 다시 없는 찬사를 보태는 것이다. 그의 지나침은 그의 사색이 문학적이기 조차 하다는 것이다. 그의 사색이 소쉬르의 언어학을 바탕으로 한 구조주의에 영향을 받고 있으며, 미셀 푸코나 데리다 등이 불문학의 토양 속에서 사색을 전개해 나갔다는 면에서도 그의 사색의 문학적 흐름이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다.

3. 추천사

나는 이들의 글을 읽으면서 어렵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또 어려워야 하는 것은 어려워야 마땅하기에, 어렵다는 것에는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 어려운 것은 아무리 쉽게 써도 어려운 것이며, 최소한 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주제들을 이만큼이라도 쉽게, 문학적으로 써 나갈 수 있다는 것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글을 이해하기에는 몇가지 술어와 어느 정도 개론적인 지식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은 틀림없지만, 우리의 무지를 바탕으로 포스트를 읽어가는 즐거움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됩니다. <푸른 목숨>에서 여러분은 그의 지식의 방대성에 현혹될 것이겠으나, <La Strada>에서는 그의 지식의 집요함에 매료될 것입니다.

물론 이들의 블로그에 보면서 일말의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너무도 외국에 경도되어 있으며, 한국적인 것의 냄새가 미약하다는 것, 마치 전혜린의 수필집을 보았을 때 불란서의 어느 해변인 줄 상상했던 그 곳이 만리포였을 때, 느낀 모멸감을 이 두 블로그에서도 느낍니다. 그것은 우리의 문화의 토양 탓에도 기인한다는 것, 우리나라에는 천재성을 표현할 무대장치가 부족함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이들에게 느꼈던 시기심은 저와 같이 보잘 것 없는 자에게는 너무도 부질없는 것이라는 것을 아주 투명하게 인식하면서, 제 블로그를 방문했고 이 포스트를 보신 여러분에게 이 두 블로그를 방문해 보실 것을 권해 드립니다.

놀랄만한 (어떤) 세계를 보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