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표와 그 해 겨울 난로에는

1.

너의 사랑은 모자이크일 뿐이야 하고 그녀는 떠났다. 그래서 눈물은 한 쪽 눈에서만 흘렀다.

2.

창녀는 브래지어를 채우며, 덜 타버린 담배연기로 말했다. 인생을 말하기엔 너무 늙어버린 것이 아닌가요?

3.

이 도시의 후미진 뒷골목을 설명하기 위하여, 어느 날 300번을 보내고 371번 버스를 타야만 했다.

4.

꽃을 이야기하는 계절에 그 이름을 몰라 그만 봄을 놓치고 말았다. 그때 사랑을 놓친 것 마냥 술에 취했어도 정말 정동에서 노래는 부르지 않았단 말이에요. 씨팔! 그것을 죄라고 거울이 말할 때, 무심코 바다 쪽을 보고 있었어. 아이가 깨어진 거울 조각을 들고 다가왔고, 드디어 죽음이 자유에 대하여 말할 차례가 되었다. 우선 이름부터 말하세요. 죽음은 창을 등지고 앉아 백과사전을 편다. 거기에 그의 이름은 없었다.

기억 속에 사랑이 없었기에 신은 그를 천국과 지옥 어느 곳에도 보내지 않았다. 그녀가 <율정리 13Km>라고 쓰인 이정표를 그 해 겨울 난로에 집어넣었고, 5호선의 계단으로 내려가 지하철이 달려드는 플랫폼에 간당거리고 있었다. 그때 여자가 속삭였지. 깊숙한 사랑을 나누어 드릴께요. 속삭임은 지하 삼층처럼 깊었어. 지옥이든 천국이든 어디론가는 가야만 했거든. 불멸이란 저주받은 신의 이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지. 그때 우리는 마장동을 지나고 있었다.

다시 빛이 그녀의 젖가슴을 탕-하고 관통했다. 그리고 그만 진실을 알아버렸다. 추억할 것은 나무와 바다일 뿐 입맞춤은 아니었다고 그녀가 말할 때, 천년의 포옹에 부러져 버린 가슴을 일기에 쓰고 다시 찢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해 여름에는 비가 억수로 왔어, 너무 와서 몸의 피는 흘러넘쳤고 비가 혈관을 채운 것이 분명해. 그 해 가을은 왠지 눈물이 났어.

5.

할 말이 있느냐고 당신이 물었다.

6.

그것은 나와 너의 잘못이 아니라 너무 흔한 것……
너무 흔하여 늘 잊혀지고야 마는 것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다리우스 08.12.04. 15:54
    1장 3절에 애착이 갑니다.~
    ┗ 旅인 08.12.05. 18:50
    다리우스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샤론 08.12.04. 21:12
    분명 우리말인데 어려워서 이해가 갈듯 말듯…죄송합니다..
    ┗ 旅인 08.12.05. 18:51
    사실은요~(비밀인데요~) 이건 글을 쓴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린 것입니다.
    ┗ 샤론 08.12.08. 10:43
    네? 글로 그린 그림말인가요? 아님 그림을 보고 글로 다시 그린건가요?
    ┗ 旅인 08.12.08. 11:27
    글로 그린 그림입니다. 단어마다 문맥마다 고유한 순간적인 느낌과 색이 있는데 그러 느낌을 모자이크 하듯 그린 글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표현을 달리할 뿐이겠지요, 그래서 직감적이며, 비논리적일 수 있습니다.
    ┗ 旅인 08.12.08. 11:32
    특히 사람에게는 공감각적인 능력이 있다고 하더군요. 몇몇의 특수인에게만 있는 능력인데, 아마 보통 사람도 미미하나마 그런 감각능력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공감각은 음악의 도레미파…의 음부를 노란색, 빨간색 등의 시각으로 느낀다던지, 아니면 추상적인 관념을 냄새나 색채로 감지하는 능력인데, 아마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보유하고 있겠지요,
    ┗ 샤론 08.12.08. 13:44
    저는 이런 얘기를 님에게 처음 듣습니다..정말 새로운 것을 알게 되서 기쁩니다..흥미롭기도 하구요.전 개인적으로 그림그리길 좋아해서 예전에 동양화를 좀 그리기도 했었지요.난 이라든지 국화라든지 포도잎이나 송이라든지를 먹으로 그리는거 말입니다.지금은 다 잊혀진 옛이야기가 되버렸지만 그림감상은 잘 몰라도 좋아하지요..
    ┗ 旅인 08.12.08. 14:29
    언제 한번 감상할 기회를 주시지요.

    유리알 유희 08.12.05. 01:23
    그 해 겨울의 난로에는 무엇이 타고 있었을까요. 톱밥 한 줌 뿌리고 싶은 유희랍니다. ㅎㅎㅎ. 한편의 소설보다 더 긴 스토리를 들려 주는 서사시, 즐감입니다. 이정표의 방향이 제시하는 대로 갈 것을. 놓친 사랑이 안타까워 한숨 짓는 유희랍니다. ㅎㅎ
    ┗ 旅인 08.12.05. 18:54
    아마 사평역이었다면 톱밥을 한 줌 뿌렸을 겁니다. 그러면 그 불길을 보면서 역 저 건너편에 내리고 있을 눈과 갈 곳이 없거나 가야할 곳을 찾지 못한 자들이 서성대는 대합실에서 한편의 추운 글을 그릴 수 있을텐데요.

    에우리알레 08.12.05. 08:10
    너무나 흔한 것… 흔하지만 언제나 힘든일이죠. 잘 읽었습니다.
    ┗ 旅인 08.12.05. 18:57
    고맙습니다. 앚혀진다는 것이 행복인지 불행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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