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은 조금 심심한 채로

사월이다. 그래, 중순쯤 되어야 사월이라고 …… 할 수 있다.

그러나 올해에 다가 온 사월이 자신있게 “나 사월올씨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날들이 며칠이나 되던가? 오늘이야말로 그런 날인데 나는 할 일이 없다. 그러고 보니 삼월이란 것은 아예 없었다.

밖의 햇빛은 죽여줄 정도여서 눈을 감고 몸으로 햇빛을 바라보아야 했다. 사월 오일, 삼사월에 드문 드문 피어야 할 것들이 백화점 개점 시간에 몰려든 손님처럼 일제히 피어나더니 다 져버리고, 달빛에 하얗게 피어올랐던 개나리는 돋아나는 이파리들 밑으로 노랗게 잠수한다. 오늘은 사월십육일일 뿐이다.

목련은 그늘에 심어야 해! 그러면 수줍은 듯 봉오리를 오무리고 봄날을 보내다가 라일락이 필 때쯤 왈칵 자신을 드러내지. 양지 쪽의 목련은 아무도 보지도 않는 데 옷을 벗고 자신을 드러내보인 뒤 그냥 떨어져버려 순 싸구려! 그렇다고 져버린 목련의 모가지로 부터 잎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공기는 너무 차다.

째즈는 유월의 저녁에 들어야 했다. 너무 이르면 떫거나, 아니면 너무 덥거든. 밀폐된 곳이 아닌 열린 곳에 스피커를 내놓고 듣고 싶었다. 그런데 달빛과 째즈가 만나면 색정을 일으키거든. 지하, 마리화나와 담배 연기가 가득한 지하로 내려가 발아한 흑맥주에 용해시켜가며 들어야 한다.

휴일 아침이면 <나의 이름은 미미>를 소리를 이빠이로 올리고 듣고 싶다. 바바라 핸드릭스이건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이건 상관없다. 앰프의 출력이 가속화될수록 가수의 목소리의 떨림의 깊이는 깊어진다. 소프라노의 소리가 올라가 마지막에 멎을 즈음에 나도 숨을 멈춘다. 작은 소리로는 그 슬픔을 당겨올 수 없다. 아내는 나의 소리를 용납하지 못한다. 소리를 낮추고 지하에서 단파방송을 잡는 듯 음악을 듣는다. 그럴 때 결혼 생활은 약간 비참해진다.

기형도의 산문집이란 것이 있는 지? 그의 정체를 오래 전부터 알고 싶었다. 움베르토 에코는 그의 소설에서 언어에 대한 집요한 분석과 조작은 병을 일으킨다고 너부리를 깠다. 기형도 식의 산문은 아름다울 것이다. 모딜리아니의 그림처럼 길어서 선병질적으로 관능적이거나 짐노페디의 염세성으로 표백한 단어들이 더 이상 다른 색깔과 섞이지 못하여 아주 개별적이거나…

기형도는 죽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삶은 살다보면 그저 그런거다.
나는 창문을 열어놓았다. 그리고 저녁은 냉면이라고 한다.
예수가 애급에서 나사렛으로 돌아간 것은 과연

자귀질이나 대패질을 하기 위해서일까?
아님 이미 자신이 크리스토스가 된 것을 알아서?

헬라어로 된 셉추아진트를
더 이상 읽기가 싫어서 일지도 몰라…

그것은 운명이거든

사월이 잔인한 달이 되지 않기 위해선 조금은 심심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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