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이름으로-끝

백전에 장의차가 도착했을 때, 이미 겨울비는 그쳤다.

우려했던 장의행렬을 가로 막는 사람도 없었다. 고향이 싫다고 떠난 사람들이 망자로 고향에 돌아올 자격이 없다고 지지리도 못 살던 그 땅의 사람들은 상여를 막는다고 했다. 술값도 필요없고 막무가내라고 큰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길에서 장지로 가는 논뚝 길은 미끄러웠고, 멀었다.

장지에 도착하니, 큰아버지가 데려온 지관이, 이미 구덩이가 파지고 석판으로 막음이 된 묘혈 속에서 기어 올라왔다. 산이 어떻고 못이 어떻고 하더니, 에헴! 에헴! 하관해도 문제없고, 자손들이 음덕을 볼 것이요 했다. 그때 오매실에서 웅성웅성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우리들의 침묵에 매질하듯 곡을 했다. 그 속에서 한번인가 본 제수씨가 후다닥 달려 나와 땅을 치며 울었다. 그러자 고모들이 따라 울었다.

엄마~, 어머니~, 할머니~

관이 내려졌다. 그리고 목사가 설교를 했다.

설교가 끝나자 부삽을 든 인부들은 묻지도 않고 삽질을 하여 관에 흙을 퍼부었다.

그러자 잦아들던 울음소리는 커졌고, 나도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때 삼촌이 풀썩 주저앉으며,

어머니~, 어머니~ 하고 소리쳤다.

인부들은 침묵 속에서 작업을 계속 했다.

우리는 묘지 앞으로 나가 저 아래 쪽 못과 길을 보았다.

삼촌이 손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나는 그 곳을 보았다.

“저기가 네 몫이다. 그리고 그 아래가 유현이 자리다,”
“삼촌 자리는 요?”
“그 위가 되겠지.”

나의 묘 자리로 내려갔다. 땅을 밟아 보았다. 빗물이 스민 땅은 물컹거리고, 노랗게 말라붙은 갈대 냄새는 축축했다. 손으로 땅을 만지니 온기가 느껴지는 듯 했다. 마음이 아주 편했다. 흙 냄새를 맡았다. 그러자 할머니가 죽음을 바라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하지만 이 곳에 묻히지 못할 것이었다. 아버지를 당신 뜻대로 화장한다면, 그 땅은 주인을 잃을 것이었다. 아버지의 시신을 불구덩이 몰아놓고, 자식이 땅에 묻힐 수는 없을 것이었다. 나도 불구덩이로 가야 할 것이다. 포근한 땅을 저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새삼 서글펐다.

삼촌이 다가왔다.

“내가 너희한테 미안하다. 아이들도 공부를 해야 한다고 이 곳에 못 데려 왔다. 너희 숙모는 내 가슴에 이렇게 못을 박는구나.”

“작은 아버지!” 처음으로 작은 아버지라고 불렀다.

“아버지께선 큰아버지와 그 자식들에게 떳떳했을까요? 제가 오매실 큰아버지 아들 경호에게 떳떳할 수 있을까요? 식구들이란 다들 조금씩 미안하고 그 앞에서 수치스럽고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걸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작은 아버지는 담배를 피워 물며

“너도 이제 어른이지! 내가 그걸 몰랐다.”

어르신들이 봉분이 오르기 까지 오매실로 가 보자고 했다.

다리를 건너고 아버지가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부임했던 백전국민학교를 지났다. 그러자 장난과 같이 물레방아가 삼십년 전 그대로 거기에서 아직 돌고 있었다. 처음 보는 시멘트 다리가 있었다. 거기가 오매실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어린 시절 오매실로 가기 위해 건넌 개울은 넓었다. 그러나 다리 밑을 흐르는 개울은 겨울이라 그런지 돌돌거리는 실개천에 불과했다. 개울을 지나 언덕에 오르면 있던 실개천은 없었다. 그리고 바로 마을이었다.

할머니를 처음 만나기 위하여 왔던 길을, 할머니를 보내고 산보하듯 나는 걸었다. 다섯살 때 하염없이 걸었던 그 길이, 몇번이나 쉬어 갔던 그 길이, 너무도 가까웠다.

마을은 기억보다 컸다. 할머니 집에서 한참이나 걸었던 과수원은 마을의 골목 끝에 있었다.

고향에 돌아온 듯, 아니 다시는 오지 못할 것 같아서,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을 맞추어보기 위하여 어른들과 떨어진 나는, 천천히 마을 이쪽과 저쪽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때 노인이 골목에서 나와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노인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스쳐지나려 했다. 노인은 나를 불러 세우고 아버지의 이름을 하대하듯 부르며, 아들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지 아버지를 쏙 빼다 박었구먼! 어딜 가도 넘의 자식이라는 소리는 못들을 모냥이네. 똑 지 아버지 젊을 때 모습이네. 난 늬 아버지가 나타난 줄 알었다. 네 할머니 모셔온다는 소식은 진즉 들었다. 한번 뵈러 갈 참이였네.”

누구신가를 물을까 말까 하던 참에

“나는 늬 아버지의 아재비 뻘 되제. 그러니까 너한텐 할애비 뻘 되구.”

그는 뒷짐을 지고 어흠하며 골목으로 사라졌다.

할머니의 묘지에 봉분이 올랐다.

우리는 봉분의 흙을 다지거나 잡티를 치우거나 했다. 그리고 떠나기 위하여 봉분 옆에서 조화와 상자 등을 태우고 있었다.

그때 골목에서 만났던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은 헐레벌떡 뛰어 오더니 아버지 앞에 풀썩 엎어졌다.

“아이구~ 선상님! 이게 무신 일이라요. 자당님께서 돌아가시다니요.”

아버지는 노인을 일으켜 세우고 등을 두드리며,

“학교 다닐 때, 장가 간 큰 녀석이 말은 그렇게 안듣더니… 이렇게 늙어서는… 누가 날 네 선생이라 하겠냐? 아무튼 고맙다.”

시간이 늦었고, 우리는 떠나야 했다. 차는 출발하기 시작했다.

차창 밖으로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고모님들과 큰아버지들이 서 계셨고, 그 옆에 노인이 서서 나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노인의 웃음 속에 빠진 이빨들이 보였다.

그 모습은 아득한 기억 저 밑에서 떠올랐다. 다섯살 난 아이가 노루가 뛰어다니던 가을걷이가 끝난 논을 지나 백전에서 맨 처음 눈을 맞춘 그 사람, 돼지 오줌통에 바람을 불어넣다가 이빨 빠진 잇몸을 드러낸 채 웃던 그 사내, 웃다가 다섯살 꼬마를 향해 주먹을 쥐고 얼러대던 그 사내가 창 밖에서 또 다시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의 모습 속에서 어둠 속에서 드러나던 할머니의 모습이 잠시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제 할머니의 이름으로 나에게 남은 세월은 없을 것이다. 할머니는 잊혀지고 또 무의미해질 것이다. 무의미해질수록 조금씩 사는 것이 편해지거나, 외로워질 것이며, 나의 세월은 누구의 이름 속에 깃들 수 없기에 나의 이름으로도 새길 수 없을 것이었다.

나도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끝>

This Post Has 7 Comments

    1. 여인

      미워했던 할머니를 우정과 같은 마음으로 떠나보낼 수 있었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이 글은 아버지와 함께 하기 위하여 쓴 글인데, 아직 아버지께 올리지는 못했습니다.

  1. 서정적자아

    할머니 방에서 봉투를 함께 붙이는 여인님을 상상해 봅니다.
    오늘 낮에 그런 풍경이 계속 제 마음에 머물러서 따뜻하였습니다.
    목이 없어진 오리가 뛰어다니는 풍경도 엽기적이지 않고요.
    빛바랜 사진 속의 한 장면, 그 사진 속의 소년과 할머니…
    저도 언젠가 외할머니 이야기를 써보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외할머니보다 더 사랑했던 외할아버지 이야기도 써보고 싶습니다.

    1. 여인

      잘 생각하셨습니다.

      저도 이 글을 쓰다보니 제가 미처 알 지 못한 많은 것을 느끼게 되고 가족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2. 흰돌고래

    글을 다 읽고 나니 저희 엄마 아빠의 과거가 궁금해 졌어요. 제가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들..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도 궁금하고요. 왜 그 전엔 그런 이야기를 물어 볼 생각을 못 했나 몰라요. 할아버지 병문안을 몇 번씩 가면서도 쭈뼛쭈뼛 하기만 하고…

    여인님 어릴 적 이야기, 또 할머니 이야기 –
    마음으로 느끼면서 잘 보았어요.

    1. 旅인

      돌고래님은 오랜 고향에서 지내셨지만, 집 안에 큰 격변없이 지낸 세월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족사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되고 차츰 알아가게 될 겁니다.

  3. 旅인

    유리알 유희 08.12.24. 21:14
    네, 유희도 손을 흔듭니다. 할머니의 이름으로! 잊혀지기 전에 소설로 이양했군요. 사는 것이 편해지기를 바랍니다. 조금만 외로우시고요. 어느 날, 홀연히 납시어 레테의 뜰을 풍성하게 해 주신 여인님! 유희가 고맙다는 큰 절 올립니다. ㅎㅎ. 기촉년에도 복된 나날의 영속이기를 빕니다. 건강하세요.
    ┗ 旅인 08.12.24. 21:51
    예 많이 편해졌습니다. 어렸을 땐 제가 삶을 못마땅해 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삶이 저를 못마땅해 한다는 것을 알았는 지도 모릅니다. 좀더 지나면 삶과 어깨동무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을 지 모르지요. 그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립니다. 올 한해 따스하게 반겨주시고 힘이 되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다리우스 08.12.25. 02:38
    대단원의 막을 내려 주셨군요, 한해 동안 좋은 글 올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거듭 성필 하시길 빌고 가내 두루두루 복이 충만 하시라고요~ 좋았습니다, 저는 ^^
    ┗ 旅인 08.12.26. 18:07
    감사합니다. 올 한해 다리우스님의 덕분에 레테에서 좋은 분들과 훌륭한 글들을 혜람할 수 있어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에는 좀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힘을 팍팍 실어주시고, 다리우스님에게도 문향과 서권기가 넘쳐흐르기를 바라오며, 댁내에 행운과 건강이 넘쳐흐르길 기원합니다.

    러시아황녀 08.12.25. 03:21
    잘 읽었습니다. 정이 없어 보이는 할머니를 가장 깊이 이해하고 사랑한 손자의 기억이 아름답습니다..부모님께 걱정을 끼칠만큼 심한 저항의 시기가 이런 필력을 키운 성장기였군요.. 새해에도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뜻하시는 일 모두 이루시고 건강하십시요..
    ┗ 旅인 08.12.26. 18:11
    황녀님께서 힘을 넣어주시니 새해에는 보다 성숙한 글을 쓰기 위하여 노력하겠습니다. 황녀님께서도 내년에는 더욱 강건하시고, 댁내가 늘 안온함과 다복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저도 황녀님의 기개있는 글들을 기다리겠습니다.

    더불어숲 08.12.25. 13:36
    여인님의 소설 잘 읽어보았습니다. 할머니는 성정이 살아있는듯합니다. 좋은 글 늘 감사합니다.
    ┗ 旅인 08.12.26. 18:16
    곱게 보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도 올려주신 <꾼> 잘 읽겠습니다. 내년에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고, 내년에도 댁내 두루 편안하시고, 기쁨과 건강이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truth 08.12.26. 11:31
    가라앉는듯하군요..그 가라앉음은 다양한내용으로 제것이 되는양합니다. 소중히 대하였습니다. 가정에 늘 축복과 은혜가 임하시길 바랍니다.
    ┗ 旅인 08.12.26. 18:18
    각 시간마다 나이가 조금씩 먹어가면서 가졌던 감정들이 앙금처럼 가라앉아 그런가 봅니다. 트루쓰님, 마지막 남은 올해 즐겁게 마무리하시고, 내년에는 가정에 늘 건강과 은총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산골아이 08.12.29. 04:32
    이제사 여인님의 글을 1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었습니다. 강인하게 빨아들이는 흡인력! 아마 여인님이 글을 쓰시는 동기엔 할머니의 영향력이 깊게 자리잡고 있는 듯합니다. 세월과 더블어 이해하게 되는 할머니의 삶과 성정. 단숨에 읽고나니 제 할머니와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감동적인 글 감사합니다. 다음 글을 기대하겠습니다.
    ┗ 旅인 08.12.29. 09:15
    저의 평범한 가족사를 좋게 읽어주셨다니 고맙습니다. 이제 재고도 바닥이 나고 걱정입니다.
    ┗ 산골아이 08.12.30. 01:36
    어머! 왜 그러세요. 깊은 산속 옹달샘이 언제 마르는 거 보셨어요. 아니죠? 기다리겠음.
    ┗ 旅인 08.12.30. 10:35
    도시 무협소설 준비 중인데… 찌질해서 진도가 안나갑니다.

    자유인 08.12.29. 16:18
    잘 읽었습니다.가족이라는 이름의, 그 속에 부대낌과 따뜻함도 느끼고..여인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잘 읽고 감사함을 전합니다.^^
    ┗ 旅인 08.12.30. 10:34
    구질구질한 가족사를 관심깊게 읽어주신 점 감사합니다. 새해에 건강하시고요.

    꺽수 08.12.29. 20:21
    차분하고 냉정하게…이렇게도 감동을 주는 군요. 여인님의 과거사를 감동으로 역어내심에 감탄합니다. 한층 여인님이 곁에 가까이 온듯 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여인님이 여인이었으면 더 좋았을것을^^
    ┗ 旅인 08.12.30. 10:32
    나그네(旅人)라면 저도 좋겠습니다.^^ 꺽수님처럼 좋은 곳도 가보고 그러죠. 꺽수님도 한번 가족사를 엮어보심 어떤지요?

    샤론 09.01.07. 13:40
    오늘 처음 이 글을 읽었습니다..남은 글도 다 읽을 참인데 거꾸로 읽고 있는 거 같습니다… 이렇게 정이 드는가 봅니다..글로서 가까워지는 느낌이 좋습니다..

    샤론 09.01.08. 14:33
    처음부터 다시 읽어서 오늘 여인님의 소설을 끝냈습니다…정말 감동적입니다…예전에 일본소설 봇짱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느낌이 그때와 비슷했습니다..정말 재미있는 소설이었지요…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 旅인 09.01.08. 22:57
    허접한 가족사를 이리 관심을 갖고 읽어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어떤 면에서는 가족사라기 보다 할머니를 빌어 제 초라한 시절들을 그려냈을 뿐입니다.
    ┗ 샤론 09.01.09. 14:47
    어린시절을 되돌아 보는 일도 참 의미있는 일이지요..생각같아서는 돌아보기도 싫은 그 옛날이 자꾸 되새겨지는 것은 왜 인지 …..이 글을 여기서 읽고 그저 두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정말 재미있고 감동적인 글이어서 ….책으로 출간된다면 제가 기념으로 사서 소장하겠습니다…여인님이 여행기록문을 쓸 때에는 좀 어렵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글은 아주 편하게 와 닿더군요…정말 멋진 작품입니다..힘찬 박수를 보내드립니다…짝짝짝~
    ┗ 旅인 09.01.10. 08:11
    다시 한번 감사… 그런데 책을 내면, 분명 샤론님은 사실 것 같은데, 아무래도 패가망신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한 열권은 팔리겠지요?

    샤론 09.01.10. 09:25
    님의 글은 정말 흡인력이 대단했습니다…다음이 계속 궁금해졌으니까요..내가 한번에 읽어 내려간 책은 반드시 좋은결과가 있을거라고 확신합니다…
    ┗ 旅인 09.01.11. 08:40
    고맙습니다.

    엘프 09.06.18. 14:44
    미안하고 떳떳치못하고 수치스러운.. 친족에게 가지는 이 감정이 제 것만은 아니었다는데에 안심을 했습니다. 돼지오줌통을 불던 사내의 수미쌍관이 반가웠네요. 저도 몇년전에 할머니를 먼저 보내드렸는데 싸우다가 정들고, 괴퍅했는데도 왠지 귀여웠던 분이라 아직도 생각만해도 가슴이 먹먹하네요. 저도 언젠가는 차분한 마음으로 할머니를 글로 고정시키고 싶네요. 그분이 잊혀지는게 싫어서요. 할머니 가시고나서는 구심점이 사라져서 친족이라는 틀도 불분명해졌습니다. 아~ 할망구들은 왜이리 귀여우신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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