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이름으로-10

부산에 계신 고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할머니를 모셔야 할 것 같다고, 얼마 사시지 못할 것 같다고, 울먹이며 전화를 했다.

고모댁에 도착해 보니, 할머니는 거의 기력이 없었다. 차로 모시다가 기진하시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마땅한 방도가 없어 그냥 차로 모시기로 했다. 차로 할머니를 옮기자, 고모는 엄마! 이제 가시면 다시 볼 수 있을까 몰라 하고 그렇게 우셨다.

차가 흔들리지 않도록 경부고속도로의 한쪽 차선을 고수하며 정속 주행을 했다.

집으로 모시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등창이 났다.

아내는 할머니에 대한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 할머니는 단지 죽어가는 나약한 노인일 뿐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돌아가신 장인 어른을 생각하며 할머니를 돌봤다.

할머니는 몸을 움직이시지도 못하면서도 깨끗하기를 바랬다. 손주 며느리는 할머니에게 이야기도 하고 머리 손질과 몸을 보살폈다.

할머니가 처음 집으로 들어올 때,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는 지 할머니를 피하던 아들 녀석도 할머니의 곁에서 놀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소식이 알려지자, 친척분들이 살아계실 때 얼굴이나 보겠다고 오고 가시곤 했다. 할머니는 그 분들께 손주며느리를 당신의 “입 안의 혀” 같다고 했다.

그 분들은 아내보다 내 손을 잡으며, “니가 효자 노릇 단단히 한다”며 떠났다.

할머니는 너무 쉽게 돌아가셨다.

직장에서 어머니의 전화를 받는 나는 너무도 담담했다.

“임종은 지켜보셨나요?”
“아니다. 할머니와 잠시 이야기한 후 거실에 나와 한 십분되었나? 현이가 와서 할머니, 할머니 해서 방으로 가보니 그만 돌아가셨더라.”

다행이었다. 할머니의 임종을 두돌된 아들 놈이 지켜본 셈이었다.

전화를 내려놓은 후 한동안 꼼짝 않고 그렇게 있었다.

“야! 이과장 왜 그러고 있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구만.”
“그럼 가야지 왜 그러구 있어?”
“기운이 없네. 가봐야 할 텐데…”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 안은 아무 변화도 없는 토요일 오후 같았다. 창문은 열려있고 짐들은 치워져 황량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시신은 이미 가려져 있었다.

삼촌이 내 손을 꼭 잡았다. 그의 눈에 약간의 물기가 어려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임종을 지켜봤다고 아들 놈을 향해 “저 놈이 내 대신 효도했다.” 고 말했다. 슬프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토록 평범하기에 오히려 공허했다. 허무함에 아들을 안고 중얼거렸다.

“고맙다.”

아들은 무엇을 아는 지 나를 올려다 보다가, 고개를 옆으로 까딱하며 “함미, 콕했다.”하고 말했다.

“그래 할머니가 돌아가셨단다.”

저녁이 되어 아파트 입구에 조등이 걸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적막감에 휩싸여 있던 집으로, 문상객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밤이 되어서야 고모님들이 울음과 함께 오셨다. 그때까지는 누구도 울지 않았다.

누군가 할머니의 수를 물었다.

“아흔 둘이세요.”
“호상이야! 자 이 집에선 떠들어도 되겠구만.”

그렇다. 할머니는 너무나 오랜 세월을 기다려 왔던 것이다. 그토록 가보고 싶어 했던 저 세상으로 구십이년만에 할머니는 가신 것이다.

염을 시작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가시는 얼굴을 보았다. 얼굴은 너무도 편안하여 꼭 즐거운 꿈을 꾸고 있는 듯 했다.

작은 고모가 또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는 살아계실 때는 그리 모질고 무섭더니…… 우리 가슴에 정을 남겨 놓을라꼬 이리 곱게 가시오? 가실려면 다시는 보고 잡지 않게, 무서운 얼굴로 가실 것이지, 엄마는 와 이리 고운 얼굴로 가요?”

자정이 지나고 손님이 줄자, 고모님은 우리를 불렀다.

“오빠! 나도 몰랐는 데, 엄마를 서울로 모셔간 후 방을 치우다 보니 이것들이 나와서 가져 왔수.”

할머니의 통장이었다. 세권 쯤 되었는 데, 그 사이에 조그만 쪽지가 끼워져 있었다. 통장에는 삼백만원쯤 있었다. 쪽지에는 어떤 수의를 입고 싶다고 했고, 남는 돈은 장례에 쓰고 그래도 남는 돈이 있으면, 친정의 조카에게 주었으면 좋겠다고 할머니의 글씨로 쓰여 있었다.

할머니는 숫자를 읽지 못했다. 한글은 깨우쳤으나, 숫자는 읽지 못했다. 전화번호를 써가지고 다니며, 누구에겐가 전화를 걸어달라고 하셨다.

통장 속의 돈은 할머니가 기억하는 것보다 많았을 것이다. 거기에는 이자가 붙었을 테니까.

그러나 마지막 소원 중 하나는 들어드리지 못하게 되었다. 수의는 마련되어 있었고 이미 염을 끝낸 상태였기에 할머니의 유언은 너무 늦었다.

형이 한번 보라고 통장을 내게 건냈다.

무심히 통장을 들여다 보았다. 그러다 입금되는 금액이 일정한 것을 발견했다. 그 숫자는 눈에 익었다. 그 숫자가 어디까지 소급되는 가를 보았다. 그 숫자는 내가 취직한 그때에서 멈춰 섰다.

할머니가 내가 주는 잡비를 받고도 가끔 돈을 더 달라는 이유를, 잡비가 조금 늦으면 왜 안주느냐고 묻곤 하던 이유를, 그때서야 알았다. 할머니는 잡비를 한푼도 축내지 않고 꼬박꼬박 자신의 죽음을 위해서 준비했던 것이다.

당신의 주검이 자식들에 의하여 예비될 것임에도, 몇 푼 안되는 돈을, 손자가 맛있는 것 사드시라고 준 돈을. 쓰지도 않고 저금을 들었다. 그 돈을 저금함으로써 당신께 조금씩 다가서는 죽음을 확인했는 지 모른다.

한번도 할머니가 꿈꾸는 죽음을, 저 세상을 묻지 않았다. 할머니가 꿈꾸는 저 세상을, 그 막연하고 황홀한 그대로, 망자의 넋이 가는 길에 하얀 배꽃이 내려 앉는 그대로, 남겨둘 수 밖에 없었다.

저 세상을 오매불망 그리워 하도록 만든, 이 세상이 슬펐다. 꽃이 지천으로 피고, 또 지고, 하염없이 세월이 흘러갈 이 세상이 처연했다. 마침내 죽음이 노래부르며 신명나게 찾아온 것이 기뻤다. 아니 기뻐해야만 했다.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유리알 유희 08.12.24. 21:05
    함미, 콕! 그것이 죽음이군요. 그렇게 단순하고 명료한 것. 저도 아버지 임종을 하지 못했답니다. 2002년의 아버지! 거기서 끝, 이랍니다. 죽음을 접하니 저쪽 세상이 문득 그리워집니다.
    ┗ 旅인 08.12.24. 21:52
    저는 아직 어머니 아버지께서 강건하셔서 다행이지만, 늘 조마한 마음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샤론 09.01.08. 14:28
    허전합니다..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
    ┗ 旅인 09.01.08. 22:55
    하지만 보내드려야 했습니다. 할머니가 가신 후에 우리 모두 조금씩 자신들이 못한 것들을 생각하곤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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