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이름으로-06

어머니께서는 나에게 부탁하기가 어렵다 하신다. 당신께서 부탁한 심부름을 내가 한번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또 거절할까 싶어 그렇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렇게 자식들을 오해하는 법이다.

혐오에 가깝게 싫어하는 어묵을, 내가 몹시 좋아한다고 생각하시고 늘 내 앞에 밀어 놓곤 하셨다. 하긴 나를 생각하여 앞에 논 어묵을 싫다고 물릴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것이 어머니가 사랑하는 방식이기에…

부탁을 들어드렸을 때, 어머니는 의아해 하신다. 부탁을 들어주어 고맙다고 했고, 다음 부탁 때면 늘 불편해 하시는 것을 보면 효도라는 것은 나란 놈에겐 애전에 그른 셈이다.

분명 국민학교 사학년 이전에는 심부름 같은 것은 안 했다. 중학교를 간 이후로는 틀렸지만, 형제간의 심부름에 대한 대응방식의 차이가 심부름을 안 하는 놈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심부름을 시키면, 누나는 뻔뻔스럽게 “공부하는 것 안보이세요?”라고 신경질을 냈고, 형은 “지금부터 뭘 해야 하는데요.” 아니면 “친구를 만나러 가야 한다” 고 했을 것이다. 그러면 어머니는 나를 건너 뛰어 동생에게 심부름을 하겠냐고 물었다. “저는 어제도 하고 그제도 했잖아요.”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나를 미심쩍은 눈으로 보며 “너 심부름 할래?” 하고 물었다. 그것은 “심부름 안 할꺼지?”라고 묻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심부름을 한다고 치더라도, 그것은 늘 잊혀지고 만다.

만약 내가 “못하겠다” 라고 할 경우는 달랐다.

“왜 못하냐?”고 여지없이 질문이 들어왔고, 나는 뚜렷하게 할 변명거리가 늘 없었다.

그러면 “그냥!”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냥>이라는 낱말이 지닌 부정적인 영향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늘 “그냥!”이라고 했다.

<그냥>은 너무 추상적이어서, 아무도 이해할 수 없고 무뚝뚝하기가 그지 없음에도 나는 <그냥>을 씀으로써 사람들을 그냥 화나게 만들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저 녀석이 심부름 한 번 하는 것을 보면, 소원이 없겠다” 고 하셨다.

어머니의 기억은 늘 이런 법이다. 어제도, 그 날 아침에도, 했던 심부름을, 어머니는 기억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나는 누구보다도 심부름을 잘했다. 심부름을 도맡아 했던 동생도 그런 나를 보면서 ‘형, 이상해. 옛날엔 심부름 같은 건 절대 안 했잖아?’ 하고 물었다. 나는 말했다. “그냥 갔다 오는 것도 괜찮아.”

이처럼 나는 할머니가 부탁하는 일도 아무 말 없이 해주곤 했다. 말 잘 듣는 손자였던 셈이다.

우리와의 동거생활이 안착되고, 식구로서의 위치가 공고해지면서, 할머니는 시골의 고모 집과 친정 쪽 집 안을 들러보기 위하여 떠났다 돌아오곤 했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일년, 사라졌다 나타났다 를 반복하셨다.

그 사이에 우리는 서강으로 이사를 했다. 다시 합정동으로 이사를 했고, 고등학교 일학년이 되었다.

볕이 잘 드는 마당이 있는 이 집을 나는 정말로 좋아했다.

이사를 간 첫 날, 식구들은 모두 자신들의 방을 정했지만, 나에게 할당된 방은 없었다. 그래서 동생의 방에 더부살이를 하기로 했다. 남의 방에 더부살이를 하는 것은 편리했다. 더부살이하는 방에 애착이 없었기에 청소를 하거나 이불을 개거나 하는 일에 몰두하지 않아도 됐다. 그것은 방 주인이나 할 일이었다. 또 아무 방에서나 내 맘대로 지낼 수가 있었다. 그러나 누나, 형, 동생은 늘 자신의 방을 고수했다.

나는 무소유를 통해서 그 집 전체를 누릴 수 있었고, 무욕과 게으름의 자유를 누렸다.

그러던 중 할머니가 올라오신다고 했다.

할머니의 방을 마련해야 했다.

누나는 어떻게 자신의 방을 내 놓을 수 있느냐고 했고, 형과 동생은 자신들의 방을 내놓으면 한 방에 세 형제가 지내야 되는 데 그것은 너무 힘들다고 했다.

방이 없었던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그럼 할머니와 내가 지내면 되지?” 하고 말했다. “원래 내 방이 없었으니까… 할머니 방에 또 더부살이하면 되지 뭐.”

할머니가 올라오셨고, 나는 그 날밤 이불을 들고 할머니의 방으로 갔다.

“니가 왠일이냐?”하고 물으셨다.

“방이 없어서 할머니 방에 얹혀 살려고요.”

언제나 까맣기만 할 것 같던 할머니의 머리도 필순을 바라보며, 흰머리가 더 많아졌다. 오랜 여행 끝에 주름도 늘고 피로해 보였다. 그리고 매섭던 눈길조차 힘을 잃고 부드러워졌다.

“그랴, 이제 이 할미랑 예서 지내자.”하고 자신의 이불을 밀치고 자리를 내 주었다.

그렇게 할머니와 나의 동침은 시작되었다.

This Post Has 2 Comments

  1. 旅인

    다리우스 08.12.22. 18:51
    04 아니고 6번이어야 할 듯 싶습니다.^^; 잘 읽겠습니다. 여인님~
    ┗ 旅인 08.12.23. 00:02
    그렇네요, 감사합니다, 다리우스님.

    유리알 유희 08.12.23. 13:47
    심부름, 그냥….핵심어 잘 새깁니다.
    ┗ 旅인 08.12.23. 16:02
    어렸을 적에 잘못하면 이 나이에도 벌 받습니다. 아직도 어머니께선 섭섭해 하시니…

    꺽수 08.12.27. 09:00
    오늘은 여기까지…글 그냥 재밌고 좋습니다.^^
    ┗ 旅인 08.12.27. 15:22
    으악 그냥! 이다. 그냥이라도 재밋다니 다행입니다.

    샤론 09.01.07. 14:08
    뭔가 반전이 일어날 듯한 예감이 드네요..흡입력이 대단한 소설입니다..
    ┗ 旅인 09.01.08. 22:45
    고맙습니다. 흡인력이 있다니…^^

  2. ree얼리티

    ”그냥”이란 단어는 참 많은 마음을 담고 있네요…
    어리지만 그냥 괜찮은 한 아이가 있었네요.~~
    볼 수는 없지만 그 아이가 저는 보이는 것 같아요.
    남 달랐을 것 같았어요. 소유에 대한 개념이…
    할머니가 얼마나 흐뭇하셨을까요. 저리 말해주는 아이가.~~
    그냥이란 말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 그냥에 마음이 담겨 있으면
    최상의 단어라고 생각해요. 글 덕분에 더 따뜻한 여름밤이 되었네요…따뜻해서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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