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이름으로-03

할머니는 뒷동네에 방을 구하여 삼촌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삼촌을 좋아했지만 할머니의 박대가 걱정되어 갈 수가 없었다.

4학년 때였다. 기독교인인 어머니가 더 이상 제사를 모실 수 없다고 했다. 진주와 함양에서 큰 아버님들이 올라오시고, 할머니도 오셔서 며칠인가를 어른들끼리 숙의를 한 후 제사를 진주로 모셔가기로 했다.

큰 아버님들이 떠나시고 난 후 사단이 벌어졌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살아온 세월의 간격 속에 이해로써 매울 수 없는 것이 있었는 지 몰라도 , 아마 그 일이 있은 후 두 분 사이의 사이는 더욱 멀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 갖다 붙여 논 제사인 데, 며느리가 지 멋대로 제사를 폐하냐, 친정이 잘 산다고 우세를 하느냐, 아버지에게는 지 마누라 하나 건사를 못하냐, 하시며 다시는 내가 니들 안 볼 참이다 하고 붙드는 사람들을 허위허위 밀쳐내며 고무신조차 제대로 신지 못하고 집을 떠나셨다. 삼촌은 형수님이 정 제사를 안 모시겠다면 제가 모시죠 라는 말을 남긴 채 할머니의 뒤를 쫓아갔다.

그 후 할머니는 집에 오질 않았다. 할머니가 올 때마다 하는 큰 절도 싫었고, 나를 미워하는 만큼 차라리 안 오시는 것이 편했다.

당시 나에게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주체치 못하는 정염으로부터 쏫아 오르던 격정과 다스려지지 않던 욕구들이 사그러들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웠던 세상이 점차 투명한 질서를 갖기 시작했고, 나는 그제서야 글을 읽기 시작했다.

나에게 있어서 글을 읽는다는 것은, 기존 사회질서에 대한 항복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꾸준히 오점 짜리 받아쓰기 시험지를 어머니에게 갖다 주었다.

오점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 시절의 나는 몰랐다. 백점이 있으므로 오점이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속에 깃든 위계와 다양한 인간의 가치와 질이 그로부터 말미암는다는 것을 몰랐다. 어머니가 “오점을 받아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야단을 쳤을 때, “선생님이 오점을 주었는 데 어쩌란 말이냐?”는 식이었다.

오점짜리 시험지를 꾸준히, 그것도 당당한 표정으로 갖다 드렸을 때, 어머니의 절망은 아득했으리라.

구십점도 오점도 선생이 준 것일 뿐, 아무런 변별적 차이가 없었다. 구십점이든 오점이든 백십점이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담임이 준 것일 뿐이다. 좋아서 받아온 것이 아닌 만큼, 나의 잘못이 아니라, 선생님이 준 오점이었다. 오점을 받아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나에게 물어야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은 어머니가 담임에게 직접 따져야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질문에 늘 짜증이 났다.

후일 어머니의 말로는 그 오점짜리도 담임이 빵점을 줄 수 없어서 준 애교점수였을 뿐이다.

공부를 못하는 것이 창피한 일이란 것을 겨우 알기 시작한 이학년 이학기가 되어서도, 나는 글자와 소리의 상관관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수업이 끝난 후 담임이 숙제를 칠판에 써주면, 나는 그것을 쓰지 못하고 한 글자 씩 그렸다.

때론 오후반이 수업이 시작되어도 그리기가 끝나지 않았다. 오후반에 자리를 빼앗긴 나는, 교단에 공책을 올려놓고 몇몇 아이들(다행이 나처럼 오점을 맞는 놈들이 몇은 있었다)과 함께 숙제 그리기를 열심히 계속했다. 하지만 집으로 가서 정작 어머니가 숙제가 뭐냐고 물었을 때, 당당하게 “몰라!”라고 말했다.

매일 그 모양 그 꼴이라서, 숙제를 안해 온 나를 담임은 더 이상 체벌하지 않았고, 나를 포기한 선생을 그냥 좋은 선생으로 이해했다.

격정의 세월은 길고 지루했다. 모든 일상은 파편과 같았고, 아무런 질서도 없었으며, 나에게 내일같은 것은 없었다.

이학년 가을 밤, 요의를 느끼고 설핏 깨어났다. 열린 미닫이 너머로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말씀을 나누고 계셨다. 두 분의 목소리는 낮았고, 분명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 속에 간간히 한 학년을 낮춰야 한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어머니는 어떻게 해요? 하시며 우셨다.

나도 이불을 뒤집어 쓰고 소리를 죽여가며 울기 시작했다

다행으로 유급되지 않은 채, 삼학년으로 전학했다

전학을 한 학교는 아버지가 재직 중인 서울에서 가장 좋다는 사립학교였다. 아이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글도 못 읽는 지진아라는 소리를 들을 것을 감내하고, 형과 함께 전학시켰던 것이다.

아버지가 어떻게 담임선생에게 말씀을 하셨는 지 몰라도, 전학 후 나의 삶은 비참했다. 밥 먹듯 했던 지각과 결석은 더 이상 용납이 안되었고, 숙제를 해갈 수 있는 능력이 못됨에도 숙제를 해가야 했다. 또 나에게 일어서서 책을 읽으라고 시켰다. 나는 그런 것들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늘 담임에게 맞았다.

울면서 다니던 학교로 돌려보내 달라고 했다. 어머니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의 뺨을 때리셨다. 어머니의 눈에는 맹렬한 불길과 죽음과 같은 서늘함이 이글거리고 있었고, 그것은 아득하게 나를 압도해 왔다.

나는 울기를 그쳤다. 아이들이 떠들고 노는 골목을 지나 아주 먼 곳까지 갔다. 처음가 본 전차의 종점 너머, 또 한참을 걸어갔다. 조금만 더 걸어간다면 길마저 잃어버릴 곳에서, 아득한 세계를 보면서 그 속으로 이제 들어가야 겠다고,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다 하겠다고 중얼거렸는 지도 모른다.

그 후 자신에게 주어진 불행을 조용히 감내하기로 했다

학교로 가서 하염없이 맞았고, 조금씩 우울해졌다. 아이들은 공부를 못하는 나에게 말도 걸지 않았고, 나는 교실의 한쪽 구석에서 창 밖으로 보이는 인왕산을 바라보거나 하늘에 시간들이 지나가는 것들을 헤아리곤 했다. 삼학년이 끝날 때 즈음에는 간신히 글을 읽을 수 있었고, 무난히 사학년으로 올라갔다.

사학년의 어느 날, 학교 복도를 지나갈 때, 도서실의 문이 열려 있었다. 처음으로 도서실의 안을 본 셈이었다.

당시 우리 학교의 도서실은 몹시 좋았다. 개가식으로 책들은 아이들에게 열려있어서 책을 빌릴 필요없이 보고 싶은 책을 뽑아 볼 수 있었고, 거실처럼 꾸며놓아 소파와 테이블이 함께 섞여 있었다.

안을 들여다 보다가 도서실로 들어서고 말았다.

아이들이 집에 갈 생각도 않고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지겨운 책들이 그렇게도 재미있을까 하고 서가를 둘러보았다.

눈에 띄는 책이 한 권 보였다. ‘떠돌이 고아 라스무스’였다.

더 이상 고통스럽고 무의미한 학교를 다닐 필요가 없으며, 집을 떠나 어디론가 사라질 궁리를 하고 있었기에 ‘떠돌이’ 라는 제목 속의 단어는 흥미를 끌었다.

그리하여 생애의 첫 번째 책을 펼쳤다. 그리고 더듬더듬 책을 읽어나갔다.

책을 덮었을 때는 이미 저녁 때를 한참 지나 있었다. 아이들이 떠난 도서실에는 나 혼자있었다.

나는 감격에 겨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만화책도 못 읽던 내가, 책을 읽은 것이다. 그것도 몇시간 만에, 주위에 아이들이 사라지는 것도 모른 채, 마 침 내  책 을  읽 고  말 았 던   것 이 다.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가 꾸며준 서가에서 책을 꺼냈다. 그리고 방과 후면 볕이 드는 마루에 앉아 책들을 읽었다.

하염없이 책을 읽었다. 아버지가 우리를 위하여 마련해 둔 책들이 다 끝나자(안데르센 동화만 빼고), 어른들이 읽는 책까지 마구 읽어댔다. 글을 읽지 못했던 것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그렇게 읽어댔다.

불행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알았다. 감내하지 못할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인생이며, 불행은 도처에 있었다. 그리고 책들이 속삭였다. 너는 불행하지 않으며, 크고 있을 뿐이라고…… 어머니의 불행과 아버지의 불행, 동네 사람들에게 깃든 불행의 모습을 가늠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격정과 욕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 고단한 세상을 건너가는 지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어 하나하나에 깃들 수 있는 무수한 색깔과 슬픔이나 고통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보기보단 세상이 아름답고 사람들의 사는 것 속에 무수한 의미가 교차하고 있음을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더 이상 동네 아이들과 싸우지 않았고, 사고 또한 치지 않았다. 학교 성적도 중간 이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결국 사회의 질서 속으로 깃들기 위하여, 욕구와 혼돈으로서의 <나>이기를 포기했다.

이러한 변화의 와중에 심심하면 나를 괴롭히던 두드러기가 사라져 버렸고, 끝없던 욕심과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이 사라져 버렸다. 대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위장병이 생겼다.

This Post Has 9 Comments

    1. 여인

      성격의 변화보다 이해가 안가는 것은 바라보는 사물들도 안정되고 가라앉기 시작했고, 체질도 변해버렸습니다. 그런 점들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이후 위장병은 지병처럼 자리잡았고요.

  1. 흰돌고래

    그 한 권.. 문학의 힘은 엄청나네요.
    그런데 너무 일찍 철이 들어서 몸이 감당하질 못했나 봐요…

    1. 旅인

      속이 나빠진 것은 이해하겠는데, 두드러기가 뚝 떨어져 나간 것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그 한 권의 책을 지금 다시 읽어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2. 흰돌고래

      두드러기가 뚝 떨어져 나간 것은….
      항상 불만이고 화가 났던 부조화 상태에서,
      많은 것들을 이해하게 된 조화의 상태가 되서 .. 그런게 아닐까요? ^^;;

    3. 흰돌고래

      다시 읽어 본다면….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들까요? 그 처음의 느낌? 고마운 느낌이 들 것 같기도 하구요. ㅎㅎ

    4. 旅인

      인터넷 서점을 보면 책은 있는데… 한번 질러볼까요?

    5. 흰돌고래

      어쩌면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듯한 밋밋한 느낌일 지도 몰라요.
      그래도 눈으로 직접 다시 읽어 보는 것이, 어떤 느낌인가 알아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 질러보세요! ㅎㅎㅎ 여인님이 어떤 느낌일지 저도 궁금해요.

  2. 旅인

    다리우스 08.12.21. 23:15
    책이 아이를 변화시켰군요, 고무적인 장면 잘 읽습니다. 잔잔한 서술로 밀려드는 리얼한 회상체가 압도적으로 독자를 소설안으로 빠져들게 하는 흡인력이 있습니다.
    ┗ 旅인 08.12.22. 09:44
    아니 그것보다 제 신체적인 변화가 먼저 시작되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책을 읽기 전까지의 두드러기는 상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심했고, 동네의 골목이 똑바르지 않고 늘 흔들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골목이 반듯해보이면서 글이 읽혀지기 시작하면서 두드러기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푸코의 감옥의 역사에서 어느 날 홀연히 문둥병 환자가 자취를 감추듯 그렇게 말입니다.
    ┗ 다리우스 08.12.22. 10:51
    아 그랬군요.^^ 헉 푸코의 감옥의 역사?

    꺽수 08.12.21. 23:32
    다음편 기대하고 있습니다. 네 지남철 같아요^^
    ┗ 旅인 08.12.22. 09:44
    곧 올리겠습니다.

    유리알 유희 08.12.22. 11:26
    관습과 종교와의 마찰로 할머니는 잠시 방치 시켜 놓은 채, 나, 내가 책과 친해지는 과정의 리얼함이 좋군요.
    ┗ 旅인 08.12.22. 09:50
    제 국민학교 2학년에서 국민학교 4학년까지는 리얼이라기 보다, 어린아이에겐 견딜 수 없는 세월이었지요.

    아르 08.12.24. 09:57
    사람들이 격정과 욕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 고단한 세상을 건너가는지를 보기 시작했다… 담편으로 넘어갑니다~^^
    ┗ 旅인 08.12.24. 11:25
    그 후 시각이 제 중심에서 조금씩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옮아가기 시작했죠.

    샤론 09.01.07. 13:53
    지금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특히 남자아이들을…
    ┗ 旅인 09.01.08. 22:39
    모두들 어린 시절을 거쳤으면서도, 자신들의 아이들 앞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은 늘 무력하고 아이들을 이해하기란 늘 어렵게 되곤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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