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이름으로-01

이 글은 허접한 가족사 혹은 개인사이다. 그러나 거기에도 무수한 사건과 역사가 중첩되며 또한 끊임없는 왜곡과 미화와 거짓이 덧쓰여지기 마련이다. 그것은 진실된 마음으로 다가가도 결국은 한 가족 개개인의 관점의 차이와 기억하는 가족에 대한 그림자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이 <할머니의 이름으로>라는 글은 언젠가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밥상에 앉아 수저를 들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읽혀지도록 해야 할 그런 글인지도 모른다.

2006.11.14일에 덧붙이다.

한 사람의 인간적 평가는 무수한 오해와 자신 나름대로의 해석에 기인한다. 어떠한 평가도 객관적일 수 없다. 특히 범상한 가족사에 있어서 가족 어느 누구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있을 수 없다. 단지 추억과 회상이 있거나 느낌 등으로 점철될 뿐이다.

할머니와 나는 서로에 대한 미움과 불신으로부터 이해와 사랑으로 점진적으로 이행되어가는 오래된 시간의 과정을 겪어왔다. 그래서 할머니와 나와의 완숙한 우의 속에서 할머니를 기억하며 떠나 보낼 수 있었던 점은 나에게는 크나큰 다행이었다.

내가 하는 모든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비록 할머니의 이야기를 한다 하여도 그것은 나에 의해서 왜곡된 이야기이며 나를 향하여 수렴되는 나의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기억 속에서 맨 처음 할머니를 만난 것은 내 나이 다섯 살 때이다.

나의 기억의 시간은 엄청날 정도로 과거로 소급한다.

기억의 맨 처음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해석되어야 할 것이지만, 동생이 태어나기 바로 직전까지 흘러가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른다. 동생과는 생일이 며칠 차 없는 삼 년 터울이니까, 만 세살 때부터 기억이 시작된다는 것은 명확하다. 확증을 얻기에는 역사적 자료 또는 이정표라는 문제가 제기되는 데, 그것은 동생의 출생이다. 스틸 사진처럼 섬광을 발하며 나타나는 최초의 기억은 방바닥에 누워 장롱 밑의 뭔가를 쳐다보다가, 이유 없이 울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가 어느 때인가는 모른다. 어린 기억의 파편들은 시간의 뚜렷한 계기적 질서를 갖지 못한다. 어떤 기억이 앞이고 뒤인지를 가늠할 수가 없다. 그러나 가장 명확한 가족사적 사건은 내 동생이 태어나 집으로 돌아오는 날, 누군가(아버지였을 것임)에 이끌려 어머니를 마중 나갔다는 것이다. 무섭고 심심해서 울었다던지, 개구리를 갖고 놀았다던지, 골목에서 두꺼비를 본 것 등등의 기억은 시간의 선후가 없이 그 주변을 맴돌 뿐이다.

왜 나의 기억을 이야기하느냐면, 어린 기억 속에는 아버지나 누나, 형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오히려 동생의 출생이 충격적으로 다가왔고, 왕십리에서 적선동으로 이사를 한 후 가족이라는 구성원이 확연해지는 시점에 시골에서 형이 올라왔다. 갑작스런 형의 출현에 나는 당황을 했고, 나보다 작으면서도 형이라고 하는 건방진 녀석을 가만둘 수 없어 늘 형을 괴롭히곤 했다.

할 수 없이 어머니는 대학을 다니던 삼촌 편에 달려 시골로 나를 보냈다.

기나긴 기차여행 끝에 어디엔가에서 내렸다. 버스를 타고 함양으로 들어갔을 때는 모든 거리 속에 이미 밤이 깃든 후였다. 난생 처음 보는 고모 집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 백전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과 들에는 노루가 뛰어다녔다. 백전에 도착했을 때는 무슨 잔치가 있는 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나는 꾀죄죄한 한복 차림에 돼지의 오줌통에 바람을 불고 있는 사내와 눈을 맞추고 있었다.

삼촌은 버스에서 내리자고 했다. 아버지가 처음 선생으로 부임했던 백전초등학교를 지나고, 물레방아를 지나고, 개울을 건너고, 절벽 사이를 지난 후 또 개울을 건넜다. 내가 개울 건너편의 갈대 사이로 보이는 뱀을 보고 있을 때, 삼촌은 여기가 오매실이다 하고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손자가 심심 산골에 도착했을 때, 할머니는 방문도 열지 않고, 어두운 방 한 쪽 구석에서 무표정하게 나를 보고 계셨다.

큰 절 올리라는 삼촌의 말에 넙죽 절하자

무엇 때문에 자는 데려왔느냐 하고 힐난하듯 말씀하시고, 탱! 소리를 내며 곰방대를 놋쇠재떨이에 던지듯이 털었다.

어두운 방이 눈에 익자 할머니가 보였다.

세치하나 없는 머리를 참빗으로 빗어 까맣게 빛나고 있었고, 깡마른 얼굴에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보고 계셨다.

할머니를 한동안 그렇게 쳐다보다가, 나는 삼촌에게 물었다.

삼춘! 저 아줌마 우리 할머니 맞아?

This Post Has One Comment

  1. 旅인

    다리우스 08.12.20. 19:32
    헉 소설이군요, 잘 읽어 보겠습니다.^^
    ┗ 旅인 08.12.21. 02:30
    그냥 가족사의 일부분입니다. 아마 저에 대한 자화상 쯤 될 것 같네요.

    아르 08.12.20. 22:37
    집으로라는 영화가 생각납니다 그냥 할머니라는 말에요 저는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만 있답니다 천천히 추억하듯이 읽어볼께요^^
    ┗ 旅인 08.12.21. 02:32
    저도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많은데, 제가 고등학교 즈음에야 어머니에게 계모였다는 것을 알았죠. 하지만 외손자인 저에게는 그냥 좋은(어떤 면에서는 귀여운) 할머니셨죠. 하지만 여기에 쓰는 저의 할머니는 호로비츠을 위하여 에 나오는 꼬마애의 할머니처럼 살벌한 할머니입니다.

    산골아이 08.12.20. 23:06
    다정다감한 할머니가 아닌가 보네요. 님의 글을 읽으니 호랑이할머니였던 제 할머니가 그리워지네요.
    ┗ 旅인 08.12.21. 02:29
    보통 호랑이 할머니가 아니셨는데, 저한테는 싸늘한 할머니라고나 할까요?

    유리알 유희 08.12.21. 09:43
    여인님! 늘 소설방에 불을 밝혀 주시는군요. 고맙습니다. 오늘은 제가 알바를 가는 날입니다. 다녀와서 찬찬히 잘 읽을게요.
    ┗ 유리알 유희 08.12.21. 23:38
    잘 읽습니다. 무서운 할머니! ㅎㅎ
    ┗ 旅인 08.12.22. 18:36
    늘 재미없는 글을 열심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샤론 09.01.07. 13:43
    두번째 읽은 글 !! 마지막 말이 참 슬프네요..
    ┗ 旅인 09.01.08. 22:36
    아니 왜 슬픈지 모르겠네요? 처음 할머니를 보았을 때, 할머니라고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 샤론 09.01.09. 13:17
    왜 슬프냐구요? 우리 엄마가 자상한 성격이 못되어서 친엄마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보통 할머니처럼 따뜻한 느낌을 갖고 계시지 않으니 내 자신이 생각나서 슬펐지요..항상 따뜻함을 갈구하거든요..
    ┗ 旅인 09.01.10. 08:09
    그러면서도 샤론님이 어머님을 가장 닮으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어머니는 할머니와 달리 몹시 자유분방한 분이셨죠. 늘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고, 동문서답의 대가…^^

    샤론 09.01.10. 09:21
    여인님의 어머니와 저와 거의 흡사하네요..자유 분방하고 엉뚱한 대답의 대가가 저랍니다…집에서도 식구들은 나때문에 항상 웃을일이 생기지요..
    ┗ 旅인 09.01.10. 15:06
    자삭들에게 여유를 줄 수 있어서 좋을 것입니다.

    엘프 09.06.17. 16:39
    녹슨 시절을 기다리다가 아직 못읽은 예전소설을 들춰봅니다. 긴 놋쇠로 된 곰방대에서 나던 냄새를 좋아했어요. 지금도 파이프담배를 구할 수 있었으면 한답니다. 금연중이시겠지만..^^
    ┗ 旅인 09.06.18. 13:24
    가끔은 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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